당장 죽느냐, 숨을 한 번 더 쉬고 죽느냐, 시시각각으로 내 의구심이 커지더니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걸음에 출렁이든 만상이 그대로 뿌옇게 흐려졌다. 눈에 보이는 풀 한 포기, 나뭇잎 하나가 따로따로 의미를 갖고 가까이 다가와 작별의 손을 흔들고 있다. 모든 게 일순에 지나가는 것, 보이는 모두가 축소되어 점점 작아지고 드디어 한 점으로 되드니 그 속에 내가 빨려 들어가 나 또한 한 점으로 용해되어 함께 사라지는, 죽음의 순간을 체험하고 있다.
그것은 죽음보다 참기 어려운 끈질기게 눌어붙은 생의 애착 그것이다.
군용트럭 뒤에 서서 우리를 향해 흰 이빨을 드러내어 무어라 지껄이더니 우리의 진행을 총으로 가로막으며 앞사람부터 그 자리에 세운다. 순간, 이 자리가 죽는 자리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그러나 반응은 없다.
서 있는 트럭 위에는 흰 ‘중의적삼’으로 위장한 인민군이 태반이다. 나머지는 전투복을 그대로 입은 인민군이다. 이들도 하나같이 손을 머리 위에 얹고 쪼그리고 앉아서 고개 숙여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트럭 위에도 두 명의 흑인이, 트럭 위 앞뒤에서 총구를 아래로 내려, 쪼그리고 앉아 있는 비무장 핫바지 무리에다 겨누고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손을 뒤로하여 포승으로 결박당하고도 두 사람을 한 줄로 고기 두름 엮듯이 엮이고 말았다. 그리곤 트럭 앞에 다가가게 했다. 이것은 우리의 최후를 암시하게 하는 징후였다. 눈을 감고 겸허하게 최후를 맞으려 한 내게, 또 딱딱한 쇠붙이의 돌출부가 옆구리를 자극했다. 트럭에 오르라는 시늉 같다. 그러나 결박된 손을 쓸 수는 없다. 트럭 뒤에 드리운 적재함 개폐문의 발 디딤 고리에 겨우 한쪽 발을 올려놓고 아무리 힘을 쓰려고 해도 힘이 쓰이질 않길래 그대로 한쪽 발을 올려놓고 서 있으려니, 이를 지켜보던 거구의 흑인 병사가 총을 다른 흑인 병사에게 맡기고 우리 둘의 허리춤을 움켜쥐고는 번쩍 들어서 트럭 위에 올려 실었다. 둘은 비틀거리며 짐짝처럼 처박혔다.
몸을 추스르고 앉기가 무섭게 총부리가 내 머리에 닿았다. '!@#$%^&*?'.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다. 내리누르는 총부리에 목 관절뼈가 나긋이 접치며 얼굴이 바닥을 향했다. 한동안 압박이 계속됐다. 그제야 바닥을 보라는 것으로 알아차리고 더 숙이니 부리는 슬며시 머리에서 떨어져 올라갔는지 자극이 없다.
이래서 삶은 또 연장된다.
죽음으로 가는 한 관문을 통과한 우리는 새로운 죽음의 구덩이를 찾아가는 저승길에 오른 것이다. 손과 발, 입과 눈, 귀와 코, 모든 운동기능과 감각기능이 없어야 할 것, 죽으러 가는 행로의 길섶에 둘 것들이다. 이미 우리는 이 기능을 상실한 상태로 숨만 쉬는 살아있는 주검이다.
해는 지고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요란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 틈을 비집고 트럭은 움직인다. 거꾸로 내려가는 것 같은데, 방향을 알 길이 없다. 뚫린 귀로 들려오는 쇠뭉치 굉음이 우리가 가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소리로 가늠해 볼 뿐이다.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쓰며 한참을 갔다.
죽음의 길이 이렇게 험한지, 숨 막히는 시간 시간의 연속이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