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행열

외통궤적 2008. 7. 18.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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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8.010723 트럭행렬

나는 청주를 출발할 때부터 트럭의 앞자리에 웅크리고 앉았다.

 

보이는 것은 우리가 탄 트럭을 뒤따라오는 트럭의 불빛과 뿌연 먼지뿐이다. 내가 타고 있는 트럭 위의 앞 모서리에 서있는 '국방군'인 아저씨는 키가 작은데다가 뒤집어쓴 철모가 얼굴의 태반을 가려있어서 더욱 작아 보인다. 밑에서 올려다보아도 얼굴이 잘 보이지 않고 광대뼈만 튀어나온 삼십을 바라보는 나이답게 턱수염이 거뭇하게 나 있다.

 

배만한 가죽 구두를 신고는 있었지만 웬지 어울리지 않아서 보는 내가 머리를 돌리고 싶다. 구색이 엉키고 뒤틀려 있어서 하나같이 몸에 맞지 않는 군용장비다. 벗겨질 듯, 흘러내릴 듯, 헐떡거릴듯싶어서 민망하다.

 

 

그 앞에 웅크리고 앉은 나는 광목 천 발싸개 그대로인 채, 천으로 된 운동화를 신고 우리의 산하를 종으로 달려 왔지 않는가. 내가 입은 광목 내의는 황해도 ‘황주’ 교도연대에서 지급 받은 것 그대로이니 이 속옷은 앞에 서있는 국방군의 입성 치레에 비하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입성인데도 하나도 옹색하지 않고 당당한 것은 웬일일까?

 

성품이 외곬이라서? 일단 내가 취한 것은 어떤 것이든 남의 것보다 좋은, 아니 남의 것과 비교 할 수 없는 나만의 것으로 승화시켜서일까? 아무튼 나는 조듬도 부끄럽지가 않았다. 다만 전장에 나가는 병사가 자기를 지킬 무장이 없었다는 데 대해서는 한량없는 서글픔과 내가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실감할 따름이다.

 

 

이 '국방군' 병사는 우리에게 말도 한마디 하지 않는다. 모름지기 그는 우리와의 대화나 눈길을 일부러 회피하도록 미군들로부터 명령받았는지도 모른다. 이 '국방군' 병사는 어쩌면 생애에 가장 아픈 임무를 부여받았는지 도 모른다. 그것은 같은 피부색에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동생들을 죽음의 장으로 끌고 가는 일, 차마 새까만 눈동자를 마주할 수 없어서 일 것이다. 그는 트럭위의 끝 맞은편 모서리에 서있는 다른 국방군 병사와 더불어 각기 입에 자물쇠를 채우고 있다.

 

그들에게 호송 임무는 어울리질 않았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핏줄이기 때문이리라. 천천히 달리는 트럭행렬 뒤로 물러가는 글귀, 보은군에서 만들어 단 연합군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우리가 지나가는 이곳이 충청도 보은임을 알 수 있게 한다.

 

허지만 여기서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더 가는지를 물어 쐐기질할 틈이 우리에겐 없지 않은가! 햇볕은 트럭뒷부분을 향해서 쪼그리고 앉은 우리의 왼뺨을 비추다가 머리 위를 지나 오른쪽 뺨을 비춘지 이미 오래 되었다.

 

우리의 생리기능은 생사의 초긴장상태에서는 먹는 것, 배설하는 것 모두가 일시 정지되어지는 초인적으로도 될 수 있는지, 배고픔도 마려움도 잊고 있다. 딴은 다른 방법이 없으니 아예 위아래의 입 출구가 막혀버렸는지도 모른다.

 

 

쉼 없이 달려간다. 우리는 트럭행열의 흙먼지를 뒤집어썼기에 움직이는 석고상같이  하얗게 채색되어서 눈만 깜박이고 있다. 서있는 국방군의 모습은 색다른 짐승 같다. 그가 내려다보는 우리는 아마도 흰 돼지새끼 같이 보였을 것이다. 돼지만도 못하다. 돼지라면 고함이라도 지를 자유를 향유하고 갈 것 아닌가?

 

 

나는 잠시 하늘을 본다. 노랗게 익은 감이 손에 닿을 듯이 드리워서 우리가 가는 길섶에 끝없이 이어진다. 감나무를 보니 고향의 우리앞집의 감나무가 생각난다. 내가 나올 때 그 감나무에 매달린 푸른 감은 겨우 꽃받침 크기만 했다. 여기는 남쪽이라서 더더욱 늦될 텐데 벌써 노랗게 익었으니 우리 앞집 감은 얼마나 빨갛게 익었을까?

 

 

어느 감나무도 내 입에 드는 것이 아니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내 마음, 죽음을 앞두고 겨우 남의 감이나 감상하는 것, 이것은 아마도 내가 살던 이 땅이 마지막으로 내게 안겨주는 선물이기 때문이리라! 죽음의 의미를 깨달을 때, 이 감은 한없이 소중하고 존귀했다.

 

이 땅에서 열매를 맺는다는 것, 이 얼마나 존귀한 의무인가? 그러나 나는 설익은 뜬 감에도 못 미치는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감은 그렇게 많은 먼지를 뒤집어쓰고도 노랗고 빨간색을 잃지 않고 나보란 듯이 드리우고 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지니고 살아가야 할 자연이 주는 교훈임을 왜들 깨닫지 못하는 것인지! 감나무 가로수가 다 할 때까지 내 목 고개는 숙여지지 않았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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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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