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청주 출발 때부터 트럭의 앞자리에 웅크리고 앉았다. 보이는 것은 우리가 탄 차를 뒤따라오는 차의 불빛과 뿌연 먼지뿐이다. 트럭 위의 앞 모서리에 서 있는 ‘국방군’인 아저씨는 키가 작은 데다가 뒤집어쓴 철모가 얼굴의 태반을 가려서 더욱 작아 보인다. 밑에서 올려다보아도 얼굴이 잘 보이지 않고 광대뼈만 튀어나온 삼십을 바라보는 나이답게 턱수염이 거뭇하게 나 있다. 배만 한 가죽 구두를 신고는 있으나 왠지 어울리지 않아서 보는 내가 머리를 돌리고 싶다. 구색이 엉키고 뒤틀려 있어서 하나같이 몸에 걸맞지 않은 군장이다. 벗겨질 듯, 흘러내릴 듯, 헐떡거릴 듯싶어서 민망하다.
그 앞에 웅크리고 앉은 나는 광목천 발싸개 그대로인 채, 천으로 된 운동화를 신고 우리의 산하를 종으로 달려왔지 않는가. 내가 입은 광목 내의는 황해도 ‘황주’ ‘교도연대’에서 지급된 것 그대로이니 이 속옷은 앞에 서 있는 ‘국방군’의 입성 치레에 비하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입성인데도 하나도 옹색하지 않고 당당한 것은 웬일일까?
성품이 외곬이라서? 일단 내가 취한 것은 어떤 것이든 남의 것보다 좋은, 아니 남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물건으로 승화시켜서일까?
아무튼 난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다만 전장에 나가는 병사가 자기를 지킬 무장이 없었다는 데 대해서는 한량없는 서글픔과 내가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실감할 따름이다.
이 ‘국방군’ 병사는 우리에게 말도 한마디 하질 않는다. 모름지기 그는 우리와의 대화나, 눈길을 일부러 회피하도록 미군들로부터 명령받았는지도 모른다.
이 ‘국방군’ 병사는 어쩌면 생애에 가장 아픈 임무를 부여받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같은 피부색에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동생’들을 죽음의 장으로 끌고 가는 일, 차마 새까만 눈동자를 마주할 수 없어서 일 것이다.
그는 트럭 위의 끝 맞은편 모서리에 서 있는 다른 ‘국방군’ 병사와 더불어 각기 입에 자물쇠를 채우고 있다. 그들에게 호송 임무는 어울리질 않았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핏줄이기 때문이리라.
천천히 달리는 트럭 행렬 뒤로 물러가는 글귀, ‘보은군’에서 만들어 단 연합군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우리가 지나가는 이곳이 ‘충청도의 보은’임을 알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여기서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더 가는지를 물어 쐐기질할 틈이 우리에겐 없지 않은가? 햇볕은 트럭 뒷부분을 향해서 쪼그리고 앉은 우리의 왼뺨을 비추다가 머리 위를 지나 오른쪽 뺨을 비춘 지 이미 오래되었다.
우리의 생리기능은 생사의 초긴장 상태에서는 먹는 것, 배설하는 것 모두가 일시 정지는 초인적으로도 될 수 있는지, 배고픔도 마려움도 잊고 있다. 딴은 다른 방법이 없으니 아예 위아래의 입 출구가 막혀버렸는지도 모른다.
쉼 없이 달려간다.
우리는 움직이는 석고상같이 하얗게 채색되어서 눈만 깜박이고 있다. 서 있는 국방군의 모습은 색다른 짐승 같다. 그가 내려다보는 우리는 아마도 흰 돼지 새끼같이 보였을 것이다. 돼지만도 못하다. 돼지라면 고함이라도 지를 자유를 향유하고 갈 것 아닌가?
난 잠시 하늘을 본다.
노랗게 익은 감이 손에 닿을 듯이 드리워서 우리가 가는 길섶에 끝없이 이어진다. 감나무를 보니 고향의 우리 앞집의 감나무가 생각난다. 내가 나올 때 그 감나무에 매달린 푸른 감은 겨우 꽃받침 크기만 했다. 여기는 남쪽이라서 더더욱 늦될 텐데 벌써 노랗게 익었으니 우리 앞집 감은 얼마나 빨갛게 익었을까?
어느 감나무도 내 입에 드는 것이 아니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내 마음, 죽음을 앞두고 겨우 남의 감이나 감상하는 것, 이것은 아마도 내가 살든 이 땅이 마지막으로 내게 안겨 주는 선물이리라!
죽음의 의미를 깨달을 때, 이 감은 한없이 소중하고 존귀했다. 이 땅에서 열매를 맺는다는 것, 이 얼마나 존귀한 의무인가? 그러나 난 설익은 뜬 감에도 못 미치는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감은 그렇게 많은 먼지를 뒤집어쓰고도 노랗고 빨간색을 잃지 않고 나보란 듯이 드리우고 있다. 이것이 우리 모두 지니고 살아야 할 자연이 주는 교훈임을 왜들 깨닫지 못하는 것인지!
감나무 가로수가 다 할 때까지 차마 내 목 고개를 아래로 숙이지 못했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