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2

외통궤적 2008. 7. 1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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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를 떠나서 진종일 남쪽으로 내려와 낙동강 부교를 건너는 때에 비로써 반도의 남단 낙동강에 닿았음을 알았다.

 

 

배고픔을 느낀다는 것, 임금이나 할 짓이지 우리로선 어림도 없는 꿈같은 것이다. 진종일 물 한 모금도 못 얻어먹고 죽은 듯이 끌려가는 우리의 처지가 죽음보다는 나은 것이기에 이렇게 말이 없다.

 

 

어둠은 우리가 타고 가는 트럭들의 불빛을 조이며 차의 진행을 저항하듯 무겁게 가라앉았다. 보아하니 낙동강 가에 닿은 것 같다. 머뭇거리는 자동차의 사이사이로 흘겨보는 밖은 온통 미군과 국방군의 떠벌이는 소리뿐이다.
 

낙동강. 그 어느 때 배운 ‘이태준’의 ‘낙동강’을 떠올리며 갈대숲을 찾았으나 차속에 앉아있는 내게는 지나온 뒷길만 불빛에 보일 뿐이니 어둠 속에 묻혀버린 그 옛날의 ‘낙동강의 갈대’는 볼 길이 없다.

 

작가가 읊은 가을철에 날던 그 ‘기러기’날던 곳, 그 길을 우리는 거꾸로 오니 북으로 가는 기러기의 하늘 그림인들 어찌 그립지 않으랴!

 

 

죽는 순간의 인간 심성은 순수해 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이는 것, 모든 것이 아름답고 경이롭다. 모든 것, 우리를 겨눈 총부리조차도 이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고 한낱 구멍 뚫린 쇠,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 가 올려다보는 저 '국방군'은 어떤 연유로 여기까지 와서 내 앞에 당당하게 버티고 있을까? 왜 나는 이들의 총부리 앞에 무릎을 꿇고 저주스런 목숨을 구걸하려 굴욕을 당하는 것일까?

 

생사여탈. 이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하는 것인가! 그렇지. 내가 내 생명을 줄일 수는 없을 터이니 나는 제외하고 남?  남이 바로 앞에 서있는 저 군인이라면 왜 저 군인이 나를 죽여야 하는 것인가?  이미 귀가 따갑도록 들은 ‘인민의 해방’은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한 것인가? 해방자의 처지가 이렇다면 상대는 억압자란 말인가? 해방 자와 억압자, 우리가 구속됨은 이 해방 자와 억압자의 필연적 만남인가?

 

 

나는 지금의 역 상태를 원했건만 이루질 못하고 죽음으로 치닫는 극한의 낭떠러지에 가고 있다. 내가 해방되는 길은 생을 마감하는 그 날이라야 될 것이란 생각에 이르니 만사가 자유롭게 되고 앞에 서있는 국방군 아저씨도 어쩐지 측은해 보이기까지 한다.

 

 

천리를 달려온 우리의 몰골은 귀축(鬼畜)과 같다. 그러나 이 차안에 타고 있는 젊은 애들의 생각은 무한한 사색의 푸른 하늘을 둥실 둥실 날아가서 제가 가고자하는 곳, 어디에 머물러서 이 지긋 지긋한 죽음의 행로를 내려다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많은 영혼, 영혼들…이 세상에 나서 비록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몸이 됐지만 두루 돌아다니며 새로운 환경에 부닥치고 있지 않은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다 해도 내 망막에 비치는 피사체들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절대적 존재로 있지 않은가? 이런 것을 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마감한다면 억울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 대로 실컷 끌고 다니면서 어디든지 내가보지 못한 곳, 무슨 소리든지 내가 아직까지 듣지 못한 소리, 이것들은 내 뜻과 상관없이 내 눈을 통해서 망막에 새기고 내 귓구멍을 통해서 심금을 울린다는 것은 지극한 행(幸)인 것이다.  곧 고통은 삶의 희열이다. 나는 희열에 춤추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춤출 지경에 이르려면 아직 내 의식이 훨씬 못 미치니 이것또한 나를 서글프게 한다. 눈을 지그시 감고 보이는 것 없는 나만의 내 세상으로 다시 옮겨간다.

 

달리던 트럭이 멈추었다. 와글와글 시끄럽더니 내리라는 경상도 사투리의 국방군 아저씨의 총 짓이 나를, 나만의 세상에서 끌어낸다. 모두는 대구역에서 내려서 레일 위의 기차화물차에 빽빽이 들어 채워졌다.

 

입추 立錐 의 여지없이 들어선 우리를 양쪽으로 갈라서 안쪽을 향하게 하고 가운데 문 양쪽에 한 명씩의 흑인병사들이 우리를 막무가내로 안으로 밀어 넣는다.

달리는 열차에서 우리가 문 쪽으로 뒤 걸음 치고 몰린다면, 우리 중 몇은 희생된다 해도 그들이 차 밖으로 밀려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점이 염려되는지, 우리를 온갖 수단으로 양쪽 안으로 밀어 넣고 캄캄한 화차 구석 벽을 향하도록 총부리와 총칼을 대고 협박한다.

 

우리에게 칼질하여 상처를 냄으로써 그들의 최후의지를 보인다. 우리 모두 고개나 손이나 발도 전혀 움직일 수 없도록 힌다. 마치  숯가마의 장작 배기듯이 서로 엉켜 붙어 서서 숨쉬기조차 힘들게 됐다. 죽음보다는 나은 것인가! 또 다른 형극(荊棘)의 길이 시작된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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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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