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생

외통궤적 2008. 7. 1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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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거제리’에 만들어진 포로수용소 생활이 시작 된지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편안치 못했던 배설의 생리적문제가 고스란히 해결되었다. 반으로 잘린 드럼통이 변기가 된다. 이 변기에 철사 끈을 달아서 몇 십 개씩 늘어놓고 그 위에다 구멍 뚫린 판자를 깔아서 간단히 큰 볼 일을 보도록 해놓았다.

 

작은 볼일은 거적을 쳐서 가리고 옅은 구덩이를 파서 보게 한다. 그곳을 흘러서 다시 속에 돌을 채워 넣은 깊은 구덩이 속에 흘러들게 하는데, 이런 일련의 일들이 간단 간단히 이루어진다. 워낙 인종이 많으니까 줄을 지어 산을 맴돌면서 주어 나른 돌이 잠깐사이에 구덩이하나를 채운다.

 

‘사람이 역사’를 한다더니 이런 걸 두고 하는 말 같다. 가득 찬 분뇨 퉁은 매일 일정시간에 포로들로 하여금 둘이서 짝지어 한 통식 메도록 하고 '국방군'의 호위 하에 외진 곳에 내다버리는 작업이 하루에 한 번씩 이루어진다.

 

 

무릇 입으로 들어가는 것 말고 몸 밖으로 나오는 어느 것 하나 다른 이에게 보이질 않으려는 원초적 수치심의 인간본성을 깡그리 무시한다. 모든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 이런 광경을 억지로 볼 수밖에 없는, 노천에 적나나하게 드러내어 볼일을 보게 한다. 숨겨지고 가려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의도는 없다 하드래도 당하는 우리들의 수치심은 비할 데 없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렇게 다중이 모이는 장소일수록 용무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수치심을 참아가며 생리적 걱정을 해소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그 모습을 진지하게 지켜본다는 것이다.

 

동물원의 짐승들도 그들만의 배설장소를 정하여서 남이 볼세라 가리고 숨어서 해결하건만 하물며 우리는 사람이 아닌가! 알고 보니 이들은 서로 알리고 찾는 공통의 의식합치가 은연중에 이루어져서 몰려들어 물끄러미 앉아서 용변 보는 자태를 감상이라도 하듯이 눈을 떼지 않는다.즉 만남의 장소다. 

 

당하는 쪽도 하등의 거부감을 나타내질 않는다. 그들 또한 용변을 마치면 허리춤을 움켜쥐고서 변기통에 올라 앉는 다른 이를 바라볼 터이니까. 그러니까 모든 포로가 하루 한번은 이 통 위에 올라앉을 터인즉 몇 날이고 이 변기통들만 지킨다면 적어도 이 변소를 사용하는 일정 권역내의 모든 사람을 훑어서 볼 수 있으니 혹 내가 아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천리타향 옥에 갇힌 울타리 안에서 크나큰 보람과 위안이 될 것이다.

 

우선 얘기 꾸리의 실마리가 뽑혀 나와서 줄줄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실타래를 만들 것이고 상대를 매개로 하여 소식 모르던 친지의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좋다. 서로의 고통을 호소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원군이 생겨서 좋을 성싶다. 그러니 왜 여기에 모여들지 않겠나 싶다. 당연한 회동(會同)장인 것 같다.

그래서 재판 받는 피고석에 앉았다고 하는 것일까? 아무튼 이 일을 깨치고 나서 나도 모든 사람의 용변자태를 일일이 재판(?)했다. 그러나 내가 판결할(?), 내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먹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없는 포로들은 소일거리를 찾아서 온갖 놀이를 개발하고 판을 벌여서 웃고 싸운다. 윷놀이 판, 장기판, 꼰 판, 투전판, 땅따먹기 판, 구슬치기 판, 팔씨름 판, 한쪽다리 올려 잡고 닭싸움하기, 날이 갈수록 가지수도 늘어나고 판도 커져서 사람들이 꾄다. 이런 곳도 만남의 장소가 되어서 이따금씩 주위가 떠나갈 듯이 내지르는 고함소리에 놀라곤 한다.

 

나는 오늘도 천막 문을 저치고 무심히, 그저 발 가는 대로 새 사실을 접하려고 낯선 천막사이를 비집고 가다가 넓은 언덕 밑에 이르게 됐다. 이곳 고인 물웅덩이에서 빨래하는 두 사람은 주위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들의 할 짓만 계속하고 있다. 그중 한 아이는 흰 빨래를 들고 짜고 있었다. 들어 올린 빨래로부터 흐르는 물이 떨어지면서 흙탕물이 퉁겨 오른다. 그의 바짓가랑이를 적시고 흐르면서 발밑의 진흙을 파서 웅덩이로 몰아간다.

 

웅덩이 물은 진흙을 풀어놓은 것처럼 누렇게 되어 바닥이 안 보인다. 그러나 그는 이물로 이제까지 몇 달 동안 배었든 땀을 비누도 없이 씻으려는 마음을 간직한 애다.

 

 

시골 학교의 동창 ‘전 교민’임을 알아차린 것은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언덕 위를 바라볼 때였다. 그의 유난히 큰 두 눈을 보고 달려내려 갔다. ‘교민아!’ ‘외통 아!’ 둘은 부둥켜 않았다. ‘교민’의 빨래는 다시 웅덩이 속으로 떨어졌고 흙탕물은 무릎 위까지 적시도록 퉁겼다.

 

‘넌 어떻게 된 거냐?’ ‘천천히 얘기하자.’ 이렇게 우선은 얘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내가 ‘교민’보다 먼저 잡혀서 지급받은 의복이 온전히 갖추어졌기 때문에 ‘교민’이가 하는 짓이 아무소용 없는 일임을 알려주고 하루 이틀만 기다리면 온전히 갖추어줄 것이란 것을 알려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 ‘인민군’복을 그대로 입고 있다. 그렇게 풍부하다는 물자와 수송수단도 이토록 쏟아 붓는 투망에 걸린 고기에겐 미쳐 요리할 시간이 없었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다. 싸움이 아니라 사람과 미물이 겨루는 기정된 수순에 불과한 토끼몰이 놀음이다. ‘교민’은 눈이 크고 흰자가 많아 겁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 착한 시골 소년이다.

 

내가 이렇게 땅 끝 흙탕웅덩이에서 그를 만난 것은 주인을 위해서 순종할 줄밖에 모르는 소의 눈처럼 티 없는 그의 눈이 나를 끌어 당겼는지도 모른다. 그의 눈이 아니었던들 어떻게 만날 수 있었겠는지! 나는 이제 어려운 일, 답답한 일, 즐거운 일, 이 모든 것을 ‘교민’이와 함께 나누련다. 고향 그림자가 한 발짝 다가 와 내 외로움을 달랜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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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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