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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1.010827 수용소3 거제도73수용소

2641.010827 수용소3 거제도73수용소

틀에 박힌 생각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우리 땅 남쪽이 바다와 맞닿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 내게 바다가 보였기 때문에 이곳이 남쪽이라 여겼고 우리가 남쪽으로 상륙한 것으로 잘못 알아, 방위를 가리는 데만 한동안 헤맸다. 이 착각은 내가 있는 이곳이 우리나라의 남쪽이라고 확신함으로써 더 틀에 고정되고 빈틈이 없게 짜졌는가보다.

 

우리가 들어온 바다는 남쪽바다가 아니라 북쪽이었음을 알고 나서 비로써 내가 갇혀있는 수용소정문을 서향정문으로 쳐주는 나다. 섬에서 살아보지 못한 나기에, 섬이 바다로 둘러싸였다는 특성을 몰랐기에, 이 착각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특성을 알고 몸에 배일 때까지는 방위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꼴이다. 나는 이렇게 고정된 생각을 바꾸는 데는 늘 무뎠다.

 

이것은 무리를 따라 다니는 데는 별 지장이 없지만 순간적 판단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때때로 더디게 적응하면서 일어나는 작은 오류로 매사를 더듬게 되고 그때마다 내가 시라소니 같아서 혼자 실없는 웃음을 짓곤 한다.

 

 

이번에도 그렇다. 방위를 안다는 것은 자기행동의 바탕이 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의 생존, 바로 그것임을 알게 되니 미물보다 못한 존재로까지 밀려서 서글프다. 또한 이 방위 찾기는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알아야하는 본능적 변별력이라고 여기니까 지극히 한심한 내가 되어서, 아! 이런 것들이 나를 이렇게 갇히게끔 한 원인(遠因)이 되는구나 하고 땅이 꺼지도록 한숨짓는다.

 

 

우리천막은 산을 등지고서, 내 눈길을 제법멀리 끌고 가야 맞은편 산 밑에 닿는, 작은 들이 내려다보이는 보리밭 위에 푸른 보리를 뭉개고 펴졌다.

 

등 뒤에서 해가 뜨는 게 영 거슬린다. 그러나 내가 거슬러서 무슨 소용이랴! 천막을 북향으로 치든 동향으로 치든 오직 ‘지이아이(미군병사)’ 마음인 것을 어찌하랴.

 

포로들의 이골 난 천막 치기는 이제 수용소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일이 됐다. 줄과 간격만 정해 주면 바로 천 쪼가리 집이 되고, 여기다가 비옷을 깔고 침낭을 뒤집어쓰면 잠자리가 마련된다. 그러니 일찍이 잡힌 나 같은 선착자(先捉者?)는 하루같이 천막만 치고 돌아다닌다.

 

내가 있을 자리를 터 닦는 일은 말할 것 없고 옮겨가서 자리를 잡고 방위나마 겨우 익힐 만하면 또 끌려가는, 일단의 수용소 개척자(?)가 된 셈이다.

 

 

텐트 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고 호흡만 맞으면 쉽게 되는 일이다. 헌데 어지간하게 세웠다가도 어느 한쪽에서라도 균형 잡아 힘을 쓰지 않으면 그대로 쓰러지고 마는, 둘러선 사람들의 심성이 시험되는 시험장이다.

 

텐트의 다른 쪽을 쥔 건너편 상대가 보이지 않으니 호흡을 맞춘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아 힘쓰는 순간이 지속적으로 같지 않으면 넘어지는 것이다. 바람이라도 불면 어려운 작업이 된다. 그것은 힘으로만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텐트 치는 일, 이 간단하면서도 진리에 가까운 이치를 억류된 몸이 깨쳐서 아무리 발버둥 친들 한낱 수용소의 천막을 치는데 그칠 것이니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나라의 천막, 지구가족의 천막을 각기 두뇌의 세포들이 수용소의 천막 치듯 한다면 가히 지구를 가릴 천막인들 왜 못 치겠는가! 싶다.

 

그들은 동서남북을 가리지 못해서 머뭇거리지도 않을 것이고 자기의 힘이 건너편에 미칠 영향도 충분하게 꿰뚫고 있을 터이고 나라와 지구의 기후조건도 계산할 능력이 있으니 함께 들어가 살 수 있는 세계의 집을 능히 지을 수 있으련만 고작 아무 힘이 없는 말단세포를 가둘 천막만, 그것도 포로들을 시켜서 세우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내가 치는 이 텐트의 한 자락을 붙들고 역동의 힘을 주어 해가 지도록 한 채의 천막도 못 치게 하고픈 충동도 인다. 허나 내 성품이 생각으로 그치는, 고운 감자알이 되고자 이것도 마음속에 불사르고 말뿐이다.

 

 

‘칠십 삼 포로수용소’는 만 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인간 채집 통으로 변하여서 개미집 같다. 내가 들어있는 이 수용소는 시설확충 보루(堡壘)로써 넓게 터 잡고 새날을 밝히고 있다.

 

 

낌새가 점점 수상 적다. 고향 길에 나서려니 하는 막연한 기대는 이웃 ‘칠 십 이 수용소’에 나날이 늘어나는 중공군 포로의 숫자만큼 반비례로 줄어들고 그들의 시끄러운 제식훈련의 구령소리의 크기만큼 자자들고 있다.

 

이들은 아직 보급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원색입성을 보면서, 또 당당한 훈련모습을 보면서 이들이야말로 비록 전장에서 죽지는 못했지만 전범자로 뒤바뀐 자신들의 처지가 조금도 부끄럽지 않아, 마치 전범자의 권리를 주창하는 양, 그들 군의 군율에 따라 행동하는 양태가 내게 말할 수 없는 갈등과 파문을 일게 한다.

 

 

이들은 적군에 잡혔다. 그러나 우리는 동포에게 잡힌 꼴이다. 무엇이 어떻고 무엇이 무엇인가를 가릴 명분도 잃고 그 가닥도 잡을 수가 없다. 그들의 깃발을 올려다보면서, 나는 차츰 생기를 잃고 만다.

 

 

그 날이 그 날 같은 뜻 없는 날을 보내고 있다. 오직 자기네의 입성을 고집할 뿐 아무리 좋은 옷과 물건을 주어도 입고 쓰지 않는 그들, 중공군의 빛바랜 국방색 누비옷이 내가 입고 있는 미군의 군복과 비교되면서, 내 마음의 엷은 연질 표피가 두텁게 덧씌워 굳어가고 있다.

 

우리는 중공군의 강성으로 해서 더욱 초라해졌다. 그리고 귀향길도 점점 멀어졌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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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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