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보리포기밖에 없든 거제도 골짝, 지금은 수용소 안에서도 불편함이 없을 만치 익숙해져 있다. 보이는 어떤 것이건 갈고 문질러서 필요한 물건으로 만들어 쓰고, 남으면 서로 거래하거나 어울려서 사용한다. 감쪽같이 숨어 못하는 짓이 없다. ‘도루코’ 면도날을 주어다 나무 꼬챙이에 끼워서 면도 해주는 이발소를 차리는가 하면, 비옷 한 귀퉁이를 네모나게 찢어낸 조각에다 밥을 담아 짓이겨서 찰떡을 만들어 먹거나, 팔기도 한다. 이 ‘멥쌀 떡’에는 이따금 공급하는 생선 통조림의 기름이 발려지고 더러는 그대로 불에 굽기도 해서 갖가지 음식이 만들어지고, 또한 과자가 만들어진다. 여러 가지 형상을 만드는가 하면 예술적 조각품을 만들고 전시까지 한다. 그것들은 상품화해서 수용소 내의 공용화폐인 담배로 환가(換價) 된다. 이 담배는 모든 물건의 거래단위로 되고 매매 수단이 된다.
사금파리를 돌에 메쳐서 잘게 동강 내고 그중에서 날이 선 조각을 골라 그 사금파리로 수퇘지 거세의 외과수술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한 발짝 더 발전(?)시켜서 상처 부위에 된장을 찍어 바르는 동네 분들의 순박한 응급처치를 내 어린 나이에 보았다. 동네 떠나가라 귀가 찢어질 소리, 이 몸서리가 무디고 무디어져서 이젠 생 ‘도루코’ 면도날을 나무 꼬챙이에 끼워서 손에 쥔 불안전한 손끝에다가 내 목덜미를 들이대고도 평안할 수 있는 동료 포로에 대한 믿음으로 자랐다.
이 믿음은 어디에서 연유했을까? 죽음과 삶의 분계선을 넘고 이제 삶의 덤을 무슨 염치로 움츠리고 손 젓겠는지, 오히려 갖가지 고난으로 살아온 이들 동질의 포로들을 믿고 같은 감정을 교류하고 싶은 예리한 면도날의 극치(極値)의 시험대를 기꺼이 넘고자 하는 것이다.
사금파리와 면도날이 엇갈려서 피부에 닿는 듯하다.
더러는 밥으로 떡을 만들어 먹기보다는 자기의 예술성을 나타내려고 심취한다. 이들은 어느 영어(囹圄)의 몸이 밥풀을 이겨 만든 열쇠로 탈출의 짜릿함을 꾀하지는 못해도 혼을 사르고 날아서 마침내는 포로 염원(念願), 보이는 형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외부의 작업장에서 온갖 것들을 주어다가 조형물을 만들고 연장을 만든다. 감춰진 대장간도 생긴다. 그러면서 수용소 안은 점점 활기에 차서 각자의 취향에 맞는 생활에 빠져들고 있다. 여기 73 수용소의 몇 달이 인류의 역사를 일군 긴 세월을 단축한 듯, 초단기적으로 자유, 사회화되는, 만 명의 무리를 지켜보는 미군 당국으로서도 도저히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당대의 문화 수준에 접근하려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원시적 생활 조건만을 아무리 고집스레 주어지게 하더라도 이미 알고 있는 수준의 개발 능력을 잠자게 할 수는 없는 것이리라. 그러기에 비록 외형상으로는 조잡하거나 거칠어도 여기에 부여하는 의미를 드높여서 만족하는 지혜 또한 현대의 몫이라면 이끌리는 현대의 견인력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난 생각해 본다. 무인도에 현대인을 아무리 오래 가두어도 현대인의 생활을 할 것이다. 그 양상이 조금은 다를지언정 사고와 동작과 연계된 사회를 끌어가는 중심적 흐름은 역시 현대의 시각과 바탕에서 급속히 그 환경은 변화되리라는 것이다.
수용소는 오랜 인류 역사 시공(時空)의 최 단축 판이 되었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