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노래하지만 어쩔 수 없이 철조망만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73 수용소의 포로들은 온순하고 순종적이다. 아마도 이제까지의 억류 생활이 북진통일의 환상으로 곱게 물들어서 멀리 변경까지 밀고 올라간 전선 소식에 귀향길 희망으로 부풀었다가 다시 누른색 ‘누비옷 중공군’의 수용소 내 구령 소리가 높아지면서 그 파랗든 고향길이 뿌연 안개로 뒤덮여 절망하는, 사이를 오가며 시달린 탓에 푹 숨죽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율적으로 차출한 포로들이 각종 작업장을 충당토록 자진 협조하니, 미군의 수용소 내 간섭은 그만큼 줄어드는 반면 우리가 하는 일의 양은 점점 늘어나면서 날마다 작업에만 동원되는 판이다. 철조망 밖의 길닦이에 동원됨은 물론 잇달아 들어올 포로들이 수용될 터에 철조망을 도맡아서 쳐내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인접한 72 수용소의 중공군 포로들의 작업 동원은 애초부터 없는 것 같다. 그들은 포로다운 포로인가?
만 명 단위의 수용소가 큰길을 앞에 두고 나란히 이어 뻗어서 남쪽 골짝을 메워서 언덕 위로 올라간다. 보이는 것은 포로와 경비병뿐이다. 간혹 민가에서 나온 사람들은 울안의 원숭이 보듯 우리를 바라본다. 포로들의 눈에는 정작 그들이 우리보다 더 측은해 보인다. 전쟁을 남의 일로 아는 다른 나라 사람 같이, 이들의 걸음걸이는 한가롭기만 하다. 하긴 별안간 ‘미국 사람’들이 섬으로 들어와서 보리밭을 뭉개니 그들로서는 할 일이 없어서, 말을 잃고 어슬렁거리는지도 모른다.
산과 바다가 있고 개울과 숲이 있어 우리 땅인가? 낮에는 해와 바람이 산책하고 밤엔 별로 천장을 펴고 달이 노니니 이곳이 실 낙원인가? 그 속에 사는 사람들, 바다로 둘려진 요새에서는 철조망 안사람이나 철조망 바깥사람이나 다 같이 갇힌 몸이다. 다만 이를 알아차리는 포로들만이 몸부림칠 뿐이다.
단조로운 수용소 생활에서 철조망 밖을 거닒은 비록 경비병이 따라붙긴 해도 해방감에 가슴이 트인다. 해방감! 이것은 육신이 구속에서 벗어나 가고 싶은 대로 치닫고, 보고 싶은 곳을 볼 수 있고, 만지고 싶은 것을 더듬는 것, 오감의 자극이 정신적 해방감으로까지 이어져서 기분은 뭉게구름 피어오른 청량한 아침 하늘이다.
이것은 이제는 들어가야 하는 철조망 바로 밖에서 잠시 안을 들여다보면서 느끼는, 가엾은 노예의 넋이다.
혹시라도 내 과거에 스친 옷깃의 인연이 살아있는 꿈으로 생생하게 드러나면 잡을까 하여 오늘도 하릴없이 철조망 밖을 바라본다. 작업장으로 가는 포로들의 면면을 놓치지 않고 훑는 나의 양손이 바지 주머니 속에서 돌덩이처럼 굳어지고 손끝은 손바닥을 뚫을 듯하다. 주먹 쥔 손아귀에서 물기를 느끼는 순간 “‘재구’ 아저씨!”란 큰 소리가 튀어나왔고 작업반의 진행 방향을 따라 나도 게걸음을 쳤다. 그는 분명하게 내 이름을 불렀겠지, 만 대답과 함께 난 아저씨가 외치는 소리를 가로막고 되묻는 것이다. 묻는 순서를 놓치지 않으려고 먼저 어디에 어느 수용소 몇 대대 몇 중대 몇 소대인가를 재빨리 묻고 받아 외었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한마디라도 건널세라 귀를 세웠다. 그러나 포로마다 지르는 고함, 소리가 바람을 타고 지나가면서 아저씨의 대답과 뒤섞여서 범벅이 됐다.
어느 수용소인지를 흘리고 말았다. 난 어느새 철조망 모퉁이의 ㄱ자 구석에 오른쪽 어깨를 부닥치고 자상(刺傷)을 입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꿀통(?)’. ‘하니바켓?’ 포로부대는 어느새 중공군이 수용된 72 수용소 앞을 지나서 바다가 있는 북쪽으로 저만치 가고 있다. 난 아저씨가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지켜보며 재간꾼 아저씨의 ‘꿀통’ 나르기를 굳이 외면하고 싶었다.
분명 그는 나를 알아보았고 나도 금방 그를 알아보았음에 내 마음은 고립무원의 졸개가 원군을 얻은 것처럼 기뻤다. 나도 이렇게 억류의 신세로 세월을 매 놓고 있는데 우리 동네의 집안 아저씨가 같은 신세로 외로운 섬 한가운데서 ‘꿀통(?):똥통’이나 나르고 있다니 도저히 반길 수 없는 일인데도 왜 나는 그를 보는 순간 나의 행(幸)인 양 환호하는가? 내 이기적 욕심이 당연히 슬픔이 돼야 할 위치에서 오히려 기쁨으로 달뜰 수 있는 것은 웬일일까?
돌아와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역(異域) 섬에 갇힌 내가 심적 위안을 받고자 애절히 몸부림치는 행동을 의식하며 고향을 떠날 때 다졌던 것, 내가 당초에 돌출한 모든 내 행동에 대하여 감당할 용기를 잃은, 씻을 수 없는 치욕의 심리로 전락함을 깨달았을 때 어깨가 무너져 내리는 좌절을 맛보았다.
‘꿀통(?)’을 메는 아저씨, 메지 않는 모든 포로, 또 억류하는 ‘유엔군’과 ‘한국군’, 모두는 향기로운 ‘꿀’을 배 속에 가득 채우고 마치 갓 핀 목련이 백의(白衣)의 우아함과 천사의 길을 여는 방향(芳香)이라도 뿜는 것처럼 당당히 활보하면서도 아저씨와 같이 내 안에 있는 ‘꿀(?)’ 향이 지금 메고 가는 ‘꿀통’의 향기와 가름 없이 묵묵히 걸음을 내딛는, 탈을 벗고 원초적 순수 삶에 대해서 까마득한 태고의 삶을 눈앞에 끌어들이고 한참을 눈뜨기를 주저했다.
아저씨는 이제 내게서 가장 가까이 있는 공간의 형상이요 또한 천년의 시간을 단축한 일가의 가느다란 엽록체의 줄기, 실이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