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

외통궤적 2008. 7. 2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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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포로생활은 그지없이 이어졌다. 더군다나 기약 없는 억류생활이니 더욱 그렇게,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다. 너와 내가 따로 없이 하릴없어 이제가 영겁이다.

 

 

전쟁의 부산물인 포로는 전쟁이 끝나야만 처리되는 전쟁찌꺼기다. 그러니 전쟁 중에 집에 간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다. 허지만 만사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마련이나 이 법을 터득하기엔 상황에 어둡고 몸조차 지쳐있다. 기다림엔 무진 인내가 필요하다. 해서 언젠가는 집에 갈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오직 이 생각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 지루하게 해바라기 생활을 참아 낼뿐이다.

 

기어이 끝을 보고야 말리라는, 저버리기에도 고집하기에도 둘 다 뜻대로 힘이 쓰이질 않고, 마음이 있다 해도 뿌옇게 지워지는 억류된 고향길이다. 해가 뜨면 아침인줄 알고 어두우면 밤 인줄 아는 미물, 싹이 돋으면 봄이고 단풍이 들면 가을인줄 알지라도 계절에 매달려 살고 있는 우리가 아니니 무슨 상관이랴!

 

그냥 하루가 열흘같이 길기만 한 나날을 안고 씨름하자니 들치기 배지기를 하고 뺑뺑이를 돌아서 메 처도 넘어지는 것은 나요 세월은 제자리 둥근 것을, 옛 노래 말 따라 수양버들로 동여맨 세월을 풀어서 활시위에 쟁여 힘껏 댕겼다가 놓아, 나 그 끝에 매달려서 고향 길을 나설까나? 무료한 시간을 무슨 수를 쓰든 때워 넘겨야 한다. 만만치 않다. 정지된 시계바늘 위에 의미 없는 해만 뜨고 지곤 한다.

 

 

이런 것은 자유인으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아주 먼 차원의 것, 차라리 마비된 뇌로 과거와 미래를 잊고 오직 지금만이 있는 정지된 죽음의 시간, 그 위에 머물고 싶다.

 

 

포로. 어쩌면 인간이 지니는 지적 능력으로서만 형성 가능하기에 스스로를 말살하는, 섭리의 역행이겠지만 전쟁이라는 최후의 선택으로 인한 불가피한 산물이니 어느 누구도 당하는 입장에 설 수는 없으리라. 해서 사람답지 못하게 살고 있는 포로들에게 또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있는 그대로에서, 무언가 창출해서 인간의 기본적 생존수단을 추구할 수밖에 없게 되나보다.

 

 

나는 이제껏 즐겁기 위하여 무엇을 시도해보질 못했다. 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과 내가 보는 모든 것과 내가 만질 수 있는 모든 것이 즐거움의 대상이고 기쁨의 원천이었던 셈이다. 셈들지 않아서 그랬던지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고 보람 있어서, 눈만 뜨면 네 활개를 치며 팔방을 휘젓고 다니던 나였으니 역시 수용소에서도 아직은 매사가 흥미롭다.갇힌 몸이면 서도 내 마음은 날개를 달고 천하를 돌아다닌다.

 

 

나는 탈출한다. 먼지 하나에서 우주를 끌어오고, 들릴 듯 말듯 한 나뭇잎 소리에서 자연의 신비를 보고 경외(敬畏)한다. 싱그러운 풀 냄새에 콧구멍 벌렁거릴 때면 소슬바람 타고 산하를 날며 내려 보고 소리치다가도 낮이기 땅위를 조용히 거닐 듯 날다가 별안간 땅위의 사람이 개미같이 보일 때까지 높이 솟아서 하늘과 땅 사이에 맴돌다가 기쁨에 가슴 벅차고, 즐거움에 흥얼거리는, 그런 자유인이 되고 있다.

 

아직도 정수리에 쇠똥이 벗겨지지 않아서 그런지 하루가 도무지 짧기만 하다. 나래가 하루에도 몇 번씩 펴지고 접힌다. 조용히 날개를 접고 천막 안에 돌아와 앉는다. 흙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들이키며 골똘히 생각한다.

 

 

우리는 나면서부터 남과 겨루어 이기든 지든 결판을 내야하는 가보다. 경쟁적 관계. 시험, 싸움판, 내기 판, 도박판의 끊임없는 탁류의 소용돌이를 헤엄처서 피안의 풀밭에 닿기까지 피할 수 없는 오염된 물결을 우리는 얼마나 더 들이키며 떠내려가야 하는가?

 

 

이런 탁류 속에서도 이기는 쪽이 느끼는 희열과 지는 쪽 모멸감의 상반된 감정의 골을 메워줄 또 다른 즐거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왜 꼭 이겨서 이루는 산 같은 기쁨에 비하여 패자는 분노의 강이 흐르는 천길 만길 패인 골을 헤매야만 하는지?  중간에 평원을 이루고 이 평원에서 안주할 따로 즐거움은 없는 것일까? 그러니까 이 평원에서 지내는 것들은 가치 없는 존재로 된단 것인지?  모두가 한 통으로 얽혀서 승패의 싸움터를 향해서 달려야만 하는가? 묻고 답하고 묻고 답하고, 이어가는 내 생각이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다.

 

 

오늘도 천막 안은 시끌벅적하다. 가장 단순한 놀이도 역시 가슴을 조이기는 마찬가지고 치열한 싸움 끝에 승자는 쾌재 한다.

 

가로세로 네 줄씩 그어서 그 접점에 서로의 말을 순차로 놓고 마지막 한 칸을 비우고 나서 채워진 말을 한 칸씩만 움직여서 자기 말은 잡을 수는 없지만 상대 말은 잡고 그 자리에 들어앉는다. 자기차례에 움직일 말이 없으면 지는 고누놀이, 임금왕자(字) 한가운데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고 양쪽 가로금에 각자의 말 세 개를 놓고 한 번에 한 칸씩 움직여서 상대가 말을 쓸 수 없도록 가두는 단순승부 고누놀이, 이런 것은 아무데서나 상대만 있으면 종이든 땅바닥이든 상관없이 그리고 그 위에 풀이든 종이든 돌이든 아무것이나 제 말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이때에 죽는 내 말은 그것이 풀잎이건 공깃돌이건 종이쪽지건 가릴 것 없이 그때마다 지구의 무게를 갖는 황금덩어리다. 그래서 풀잎 쪼가리 하나 떼이면 가슴이 메고 피가 용솟음치는 울분과 복수의 주먹이 불끈거린다.

 

내려다보는 객, 구경꾼도 몰입되다가 각기 응원의 패거리가 생기고 급기야 그 패거리끼리 다시 ‘꼬누’ 판을 그리고 한바탕 붙어서 억울했든 지난 ‘꼬누’ 패배를 설욕하고 승리를 노래 부르며 만끽한다.

 

여기에서 진 사람은 연패의 쓴 잔을 마시며 절치부심 복수의 칼을 갈지만 적은 탐탐이 줄을 잇고, 그래서 깊은 골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 이렇게 해서 참여한 사람 모두는 세월을 깎아 먹는다.

 

또 여럿이 모여서 하는 놀이 아닌 도박도 있다. 오륙십 명씩 있는 한 천막에 여러 가지의 판이 벌어진다. 그럴듯하게 그려서 치는 화투, 옛 우리 조상들이 썼던 '쩍쩍이 투전목'이다.

 

이 쩍쩍이에 그려진 글은 이상하게 글자마다 하나같이 꼬리가 달려있다. 꼬리는 거의가 비슷이 닮아서 패를 펴며 조일 때 투전꾼들의 마음을 설레고 흥분하게 한다.

 

같은 숫자끼리 많이 모으거나 차례대로 모으는 것이다. 먼저 모은 사람이 이긴다. 승기(勝氣)가 이루어졌을 때다. 손가락 너비만 한 한 뼘 길이의 한복의 저고리 동정 같은 것 다섯 장이 포개어져서 승자의 손가락사이를 빠져나오며 나는 ‘쩍’ 소리에 둘러앉았단 꾼 모두는 한숨으로 응답하고, 판 위에 놓인 어떤 것이건 승자의 가랑이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말소리는 한마디도 없고 오직 숨소리와 ‘쩍’ 소리와 고요뿐이다.

 

오랜 세월을 비난과 질시 속에서 숨어서 지켜온 나름의 도박 불문율인 셈이다. 여기 참여한 몇은 그래도 이렇게 해서 세월을 또 갉아낸다.

 

 

바둑․장기․골패 모든 것이 그럴듯하게 만든 포로들의 작품이다. 이들의 놀이에서도 승패가 있고 희열과 분노의 아픔이 따르지만 다 같이 세월을 자귀질 하기는 마찬가지다. 여기도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임에 다름없으니 사람의 심성이 그대로 반영된다.

 

 

사흘정도쯤해서 한 갑씩 주는 권연(卷煙)이 갑 채 화폐로 기능하여 한 천막 내에서도 부(?)의 편중이 그대로 드러날 때가 더러 있다. 부의 편재가 급속히 이루어질 때도 있고 며칠씩 계속되며 밀고댕기는 고투가 이어지면서 서서히 한쪽으로 모아지는 때도 있다.

 

이런 과정이 철조망 밖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이곳만의 형태인데 이름 하여 ‘모 잇쬬(또 한 장)’다. 일본에서 유래된 이 놀음이 인간 탐욕을 그대로 드러내고 또 실현시키는 투전이다.

 

 

한 장씩 네 곳에다 엎어 깔고 패를 돌린‘오야:親’ 가 한 장을 엎어 깔아 갖고는 피차의 투시력 또는 감각을 근거로 미리 정한 규칙 즉 상한 범위 내에서 담배를 몇 갑 내놓으며 따먹도록 ‘고:子’에게 내놓는다.

 

‘고’는 넉 장 중 어디에 걸든 상관없고 여럿이 한곳에 뭉쳐가도 되고 각각 따로따로 가도 된다.

 

 

단 ‘오야’가 내놓은 담배 수 범위 안에서 갈라가든 한곳에 모아 걸든 상관없다. 패를 한 장씩 더 받아서 두 장의 수의 합이 10보다 크면 10을 뺀 나머지 수가 많은 쪽이 이긴다. 앞으로 있을 상대 ‘오야’보다 그 수가 많을 상 싶으면 그대로 다음 패로 놓게 하고 적을 것 같으면 한 장을 더 받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때엔 석 장의 수가 반드시 합해져야 한다. 이것은 ‘오야’도 같은데 단지 ‘오야’는 네 패 중 어느 것이든 마음대로 확인할 수 있고 그런 연후에 다시 한 장을 받아서 나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놀음의 특징은 ‘오야’가 처음 내놓은 담배숫자의 네 배수가 되기까지 붙들고 있을 수 있는 것이 문제다. 간 큰(?) ‘오야’는 자기의 전 재산 담배와 그동안 사귄 한 천막 속 친구들 것을 모아서 내놓는다.

 

이때에 끌어 모으는 담배 화폐(?)의 상환 조건은 배로 늘려 준다는 것이고 잃었을 때는 보장이 없다. 이 위험천만한(?)꼬임에 넘어가는 친구는 그 ‘오야’의 실력을 믿고 그대로 모험을 하는 턱이다.

 

이 판이 벌어지면 천막 안의 담배가 온통 꾼들의 손에 드는데, 이렇게 저렇게 늘려주는 조건을 경쟁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영락없이 넘어 간다. 담요를 담보하고, 앞으로 나올 식사를 담보하고, 속옷을 담보하여 결국은 천막 안의 화폐(?)는 꾼들의 손에 넘어가고 이 꾼 끼리 붙어서 부의 제패(制覇)를 가름한다.

 

환호하는 제왕의 패거리와 욕지거리하는 패자의 잔당(?)이 뒤엉켜서 천막이 들썩인다. 화폐는 바닥났고 다음 중앙은행(?)에서 공급될 때까지 심한 궁핍으로 생활한다. 담배황제가 된 꾼 앞에 줄을 지어 애걸하는 진풍경이 며칠씩 계속된다. 천막 안의 작은 사회에의 희비는 사흘 동안 엇갈렸어도 우리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던 물욕과 명예욕과 승부욕이 화투장에서 불살라졌고 이로 인하여 왕관을 쓴 제왕은 천막 안의 모든 포로 위에 군림(?) 할 수 있었다.

 

빈손을 쥔 모두는 비굴한 구걸(?)에 손 오그라들면서도 세월을 깎는 대패질에 겨우 안주한다.

 

나. 이 대패질에 가담하여 깎여 나오는 대패 밥을 말아서 나발을 만들어 불고 있다. 정지된 세월을 나발소리에 실어서 가시철망을 향해서 북녘하늘에 불고 있다. 세월아 달려라! 그래서 끝을 보여 다오.

 

다시 철조망을 탈출하여 하늘을 날고 싶다. 천막 속에선 또다시 시끌벅적한 판이 벌어진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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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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