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통궤적 2008. 7. 22.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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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7.011012 짝

만상은 짝지어 존재하여 짝이 가까이서 마주 보고 있기도 하고 다른 한쪽에 숨어 있기도 하며 전혀 우리가 알아차릴 수 없도록 아주 멀리 떨어져서 있기도 한데,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있음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깊은 이유가 있어서 일 것이다. 신비하기 그지없는 짝, 음양의 이치를 통달한 이가 있을성싶기도 하지만 아직 난 미치지 못하고, 막연히 경외하고 신비로운 이 현상에 탄복할 따름이다.

미물인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의식으론 헤아릴 수 없는 무한의 크기인 우주에 이르기까지 정확히 짝지어 하나가 되고 이룬 하나가 다시 다른 것과 짝지어 이룩되는 생성의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모름지기 내 오만의 탓으로 돌려도 할 말은 없을 듯하다.

난 생각 해본다. 설혹 우리가 간파하는 하나의 독립된 어떤 개체가 짝을 이루지 않았더라도 필시 우리가 아직 알아내지 못한 무엇이 내재 되어 짝의 구실을 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유(思惟)의 시발이 높낮이의 파장과 장단의 간단(間斷)으로 이룩되었다는 것을 또한 미련하게 고집하고 싶은 대목에서 포기할 수 없는 끈질긴 생각의 끈이 되어서 그렇다.

더러는 말하리라. 인체의 요철(凹凸) 부분의 짝이 어디 있느냐고 할지 몰라도 내 생각으론 보완(補完)과 입출(入出)과 균형(均衡)적 갖가지 유형의 조건을 생각해서 나름의 짝이 생성창조 되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더 나아가 이런 것도 수렴할 수 없는 특출한 ‘홀’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필시 바깥의 다른 한 사람에게서 그의 짝을 찾아야 할 것이란 생각으로 가득하다. 이것이 사랑의 외형적 표시요 증거다. 그래서 우리는 생존할 수 있는 틀을 갖추고 있다.

이런 존재 본연을 비끼려 하면 밀려드는 외부의 충격을 막아낼 수도 없으려니와 더욱 우글거리는 인간 군상 속에서의 고독의 성을 허물기란 당치않은 바람이다. 배 안의 짝은 어머니일 테고 세상 밖에 나와서는 형제자매간의 짝, 학교 친구의 짝, 성을 알았을 때는 이성, 사회에 진출하면 나름의 가까운 짝을 만들어서 살아간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호탕한 사람이라도 그의 내면에 그와 함께 자리하고 있는 사회적 짝은 단 한 사람뿐임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끼리끼리란 말의 깊은 뜻을 씹어본다면 이 단 한 사람의 짝을 시발로 옆으로 아래로 위로 퍼져서 하나의 집단을 만들어 가는 것이리라.

나 또한 예외일 수가 없다. 비슷한 모습의 사람은 서로가 다른 사람보다 한 번이라도 더 쳐다보게 되고 마음도 쓰게 되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이웃하게 되고 피차 마음을 열어서 결국은 단짝이 되어 보람을 더하며 안온해진다.

그동안에 이웃해서 있던 짝은 대단위의 이동 때마다 헤어지지 않으려고 온갖 꾀를 내 보지만 뜻대로 되진 않았다. 문밖을 나갈 때마다, 이동할 때마다 다섯 줄을 세워서 가로로 떼기도 하고 세로로 가르기도 한다. 또, 한번 이동할 때마다 몇 번씩 줄서기를 하는데 그때마다 손을 잡고 움직여 봐도 세로로 떼느냐 가로로 떼느냐를 점칠 수도 없어 당해낼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굳은 약속으로 손 붙잡고 몸부림 처도 결국엔 있던 수용소의 정문을 나설 때까지만 지켜지는, 깨지는 약속이다. 그래서 다음 수용소에서는 또 새로운 짝을 만들어야 한다. 아니, 피차의 필요로 해서 이룩되는 것이다.

지금 난 평안남도 ‘화순’ 친구와 짝이 되어 그와 된 말, 안된 말을 지껄이다 보면 금방금방 때가 오고 날이 간다. 그의 이름은 ‘이병순’ 나보다 몇 달 늦어서 한 살 아래인 턱이지만 행적은 비슷해서 말도 통하고 의기투합하여 내기도 스스럼없고 말싸움도 며칠씩 끌고 가는 고집 또한 갖춘, 작은 고추 같은 꼬마다. 늘 나를 시골뜨기로 놀리고 난 그를 땅콩으로 놀린다. 그러면 팔씨름하자 하다가 그것도 지면 씨름을 하자 하다가 그도 안 되면 이번에는 장기판을 들고 와서 장기를 두잔다. 그런데 두어보지 않은 장기를 내가 이길 재주가 없어서 한동안 시달리기도 했다. 그에게 며칠간 좋은 기분을 안겨 주었지만, 차츰 백중의 싸움이 벌어지고 드디어 거꾸로 짝이 지는 때가 많아지면 안절부절 하다가도, 이기면 쾌재로 소리치며 천막의 천장을 주먹으로 힘껏 올려 치면 온 집(?)안이 풀럭거리고 천막 안의 동료 포로들은 무슨 변고라도 있지 않나 하여 우리 쪽에 고개를 돌린다.

이번엔 내가 다시 두기를 원해서 이기면 또 두고, 내가 질 판세가 되면 몇 마리의 말을 그대로 둔 채 시간을 끈다. 생각한다는 데 대해서야 그도 할 말이 없다. 그는 또 일어섰다 앉았다, 하지만 내 작전인지라, 난 아랑곳하지 않고 느긋하게 이번에는 화장실에 다녀온다. 장기 말은 그대로 있다. 그러면 얼마간은 또 참고 있다가 궁둥이를 들썩이며 나를 쳐다보지만 난 열심히 장기판을 들여다보는 척하지, 만 그 실, 그의 얼굴을 흘겨보고 내 나름으로 즐기고 있다. 참다못한 ‘병순’이는 화를 내며 만장의 동료들에게 호소한다. 장기를 ‘두지 않으면 진 것 아니요!?’ ‘장기는 궁 안에 들어가서 나라님을 잡아 와야 이기는 것이오!’ 수염이 하얀 포로로 된, ‘아닌 포로 영감’님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건넨 말씀에 ‘병순’이의 얼굴은 일그러진다. 순간 장기판이 내동댕이쳐졌다. ‘장기판은 엎는 사람이 지는 거요!’ ‘포로 아닌 할아버지’ 포로가 고함쳤다.

‘병순’이는 천막 문을 펼치고 나갔다.

한참 뒤 다시 들어온 ‘병순’이는 ‘그래 내가, 졌다. 끈기 한번 끈질기다.’ 다시 우리는 어깨를 얼싸안고 모포 깔린 흙바닥을 굴었다.

아침 내내 골똘히 생각하든 내 머리에 장기판을 그렸다. 모두가 둘씩 짝지어 있고 양쪽 졸개 하나와 임금들만 짝이 없는데, 판 위의 임금, 둘이니 짝 되고, 짝 못 진 졸개 하나도 건너편의 졸과 짝을 지으면 장기판은 신통하게도 그 속에서 짝을 이룬 하나의 놀이판, 하나의 사회가 되어있다.

시간은 혼자 갉아내는 것보다 둘이 밀어내는 것이 보다 빨리, 그리고 멀리 떠밀어 내치는 것 같아서 이 또한 짝이 있어야 하는 이치인 것 같아, 이를 알게 된 오늘이 지루한 포로 생활에서나마 살 이유인 듯, 그나마 위로된다./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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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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