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

외통궤적 2008. 7. 2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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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울안에 갇힌 우리들에게도 흔들리지 않던 생각이 각자의 신념에 따라  변하고, 전세(戰勢)가 달라지니 철조망을 둘러 싼 기류도 소용돌이치고 환경도 변해간다. 그래서 또 내 마음도 변하고, 굳게 다져졌든 사관(史觀)도 동요한다. 모두 자유의 물이 스미면서 진해지거나 엷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자란 숲을 벗어나면서 비로써 숲을 볼 수 있었고 숲 밖의 것들에 눈이 뜨이고 귀가 열렸다. 숲으로 들어오는 지하수와 그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되고 빛과 필요한 매개물이 아우러져서 숲이 지탱됨을 눈뜨게 됨으로서, 딱하게도 내 앞날에 대해서 작은 고민을 하게 된다.

 

 

부러움은, 내가 살던 작은 숲이랄 수 있는 북쪽 사회를 이미 벗어나서 비록 두각(頭角)여부를 내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드넓은 밀림을 활개치고 다닐 동료 선배들의 용기와 지혜이다. 그들은 자기가 빨아드릴 물과 양분과 햇빛을 적절히 받을 다른 토양으로 스스로를 이식한 접목이었다.

 

 

부러움만큼 내가 지향 할 길을 가늠하며 뿜어내는 작은 파장이 있어서, 어디에 있는 무엇이든 상관없이 내 파장에 아우르는 것에 교감되어 되돌아오리라는, 막연한 기대로 마음을 달래본다.

 

10,000명에 이르는 73포로수용소의 억류생활자는 전체 포로들의 극히 일부이지만 이웃을 조망하며 서로가 조심스럽게 어울림으로 아직 이렇다 할 불상사는 없다.  이것을 다행으로 여겨 자위하면서도 머지않아 선택의 기로가 다가올 것 같은 고요에, 오히려 나는 침울하다. 오늘밤 누가 잠든 나를 깨워서 집단으로 위협하며 심문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집단이 우익포로이든 좌익포로이든 가릴 것 없이 난감한 내 처지가 될 것 같아서, 속이 타 들어가는 것이다. 그들은 진실 된 내면 일 수도 있고 위장․가식일 수도 있으니 그들에게 걸맞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지혜는 없을 것 같아서, 또한 하루가 열흘 같다.

 

 

내 존재가 미미하니 파급의 수위가 체감(遞減)될 것이로되 내게 닿는 심리적 충격은 엄청날 것이고 또한 내 투시력부재의 인간한계에 어쩔 수 없어 다가오는 위험에 손쓸 길이 없다. 날뛰는 다른 이는 누구를 막론하고 한결 더하리라.

 

 

이제까지 마음을 터 섞고 비비든 천막 안의 화기는 사라지고 찬 기운만 감도는,  드러나지 않는 살벌한 싸움판이 되었다. 살면서 부닥치는 즐거움이나 기쁜 일들, 자랑거리나 슬펐든 일들, 더러는 순애(殉愛)의 발가벗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고향에서의 지난 이야기와 허풍을 진지하게 듣거나 눈 꼬리를 짜며 한 자리 다른 사람의 공감을 구해가며 실소하는, 사람의 사는 모습을 보여주던 때가 어제 같은데 이젠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피차의 전력(前歷)을 숨기려 애쓰는 가엾은 군상으로, 이렇게 변화의 조짐이 역력하다.

 

 

무엇 때문에 이 많은 사람이 자기의 미래에 대하여 노심초사하는 것일까? 왜 그렇게 만들고 있을까? 어린 내가 생각하는 것이 철없고 장난 같아서,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듣는 바, 탈출한 포로가 이북으로 가서 방송을 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리는 것으로 보아서는 엄청난 소용돌이가 수용소 안팎을 휘감아 도는 것을 느낀다. 탈출한 그는 필시 이대로 영영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판단으로 목숨을 건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이다. 내 발등의 불이다. 나는 지금 무슨 행동이 필요한 것인가? 천부적 순응의 기질과 적응력을 갖는 나를 아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을 안 하는 것뿐이다. 죽을 때 서슴없이 따라 죽을 것이고 살면 난들 제외될 특별한 운명이 아닌 바에는 그대로 쥐 죽은 듯이 있는 수뿐이다.

 

 

어렴풋이 짐작은 간다. 통일의 길은 남의 이야기처럼 아득해지고 이제까지 없던 전쟁포로에 대한 ‘제네바 협정’ 문을 운동장 한 귀퉁이에 비치하는가 하면 간간이 극렬 극우 수용소에서 휴전반대의 구호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리곤 하는데, 이것 모두 무슨 뜻이고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나름의 어려운 풀이를 하는 판이다.

 

 

옳거니. 자유의 종이 울려서 우리 땅의 동서남북을 구석구석 메아리치고 이상의 풍요가 샘솟아 물고를 타고 퍼져서 무성한 숲을 이룬다면 오직 그 숲을 가꾸고 열매를 거두는 일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모두 하나같이 내 고향 숲으로 돌아갈 꿈만 꾸던 선잠에서 깨어, 이제 다시 뿌리를 내리고 관목으로 자랄 토양에 접목되느냐 아니면 뿌리조차 내리기 힘든 매 마른 자갈밭에서 떡잎조차 부지하기 어렵고 벌레에 갉히고 야수에 뜯기면서 살아가야 하느냐, 하는 양자 택일의 문 앞에서는 머뭇거릴 여지조차 없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불확실한 자기 색(色)으로 우물거리다가, 살아서 북쪽의 숲으로 내동댕이쳐진다면 어떻게 되나?  그러니 최소한의 자기변호가 있어야 살아날 수 있다는 숙명적 막다름에서 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그것은 명분을 쌓아서 차후에 떳떳해지자는 자구의 몸부림이다. 아니라면 달리 비틀어봐야 뚜렷한 풀이가 없다.

 

‘수용소 안에서나마 나는 반미 투쟁을 했노라!’ ‘나는 조국의 앞날을 위해서 죽을 수 없었노라!’ 이런 것이 평온하던 수용소에 폭풍전야의 고요를 만들었고 일부수용소에서는 소용돌이와 거친 피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들은 북진통일을 내심 경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버린 부모를 다시 버려야하는 날이 올 것 같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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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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