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천지

외통궤적 2008. 7. 2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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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2.011023 별천지

벌거벗고 있는데도 미군들은 어째서 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수용소관리미군은 커다란 혼선을 맞고 있는 것 같다.

중공군 포로수용소와 좌익포로들이 주도권을 장악한 78수용소에는 붉은 옷을 실은 트럭이 진입할 수조차 없을 만치 무법천지가 되어있는데도 오히려 밖의 미군들은 철조망 안 포로들이 굶어죽을까 염려하는 듯 기중기(起重機;크레인)로 비상식량을 넣어준다. 지급된 녹색의류를 저들 마음대로 뜯어서 나름의 ‘인민군’이나 ‘중공군’의 위계에 걸 맞는 복장으로 만들어 입는 꼴을 앉아서 들여다보고만 있다.

별도로 손쓰지 못하는 형편이니 정작 붉은 옷을 입어야 할 그들은 이토록 앞가슴과 등 뒤에 ‘포로(p․w)’의 표식조차 없어도 털끝 하나 건들이지 못하고 있을뿐이다. 이런 일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 심란하다.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물구나무서서 세상을 봐야 바로 보인다더니, 좌익진영과 우익진영의 수용소가 그 안에 올라간 깃발로 해서 알아볼 수 있으련만 당국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꾸로 손쉬운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언제나 시험적 수용소로 자리 매겨져서, 늘 그곳에 담겨져 있는 포로, 우리의 심기 흔들어놓는다.

 

미군들에게는 좌우의 개념이 별도로 없다. 미군들은 다 같은 전범자들일 뿐이다. 그래서 희생되는 포로의 성분(?)에는 아랑곳없이 단지 그 희생자 수에만 신경을 쓰며 오히려 그들의 사기를 올려주고 있으니 내 눈에 비친 포로수용소는 내가 가늠 할 수 없는 별천지인 셈이다. 옛날 장터에서 요지경통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이 눈이 부시고 어지럽기만 하다.

 

어느 수용소에서는 수용소장인 미군 중장이 포로들과 협상을 벌이려 들어갔다가 무장한 포로들에게 오히려 포로가 되는 세계 전쟁사에 없는 이중포로(?)가 되는 기현상에 접하면서, 세상사의 새로운 단면을 망막에 투사하여 새길 뿐이다.

 

전쟁의 와중에 녹색군복에 길들은 내 눈이 다른 색에 민감히 반응하고 반사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벗어 던진 붉은 옷을 처음 보았을 때도 그렇고 철조망 밖 주민의 흰옷을 보았을 때도 익숙하질 않고 이재는 낯설다.

 

나도 저런 족속이었지만 결국 녹색에 눈알이 그렇게 물들었나보다. 더군다나 시시각각으로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에서 눈동자는 녹색의 움직임을 샅샅이 훑어들여 쌓고 쌓아 덕지덕지 층 저서, 또한 딴 색을 거부하는지도 모른다. 또 우리가 목숨을 부지하는 이곳 수용소는 군사시설이라서 말할 나위 없이 초록으로 덮여있고 계절 또한 유월이니 비길 데 없이 푸르다.

 

단지 하늘을 뚫을 듯이 높이 선 깃대에 갖가지 깃발이 나부끼는 별천지가 이상 하리 만치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내게 비추어진 수용소의 일상이 예사롭지 않다. 무언가 잘못되어서, 통제 불능의 상태로 되는 것 같아 불안하다.

 

그나마 조용히 있다가 일그러진 과거와 씻을 수 없는 오욕을 숙명으로 받아 고향에 돌아가서 옛이야기로 묻어 두면 될 것을 이 자리에서 명예를 회복한다며 몸부림치는 그들 좌편향포로들의 행위를 또한 나는 이해 할 수가 없다.

 

제아무리 반미구호를 외친다 해도, 제아무리 항쟁의 몸부림을 친다 해도 우리들은 거함 거제도의 선창 밑에서 사중 오중의 철조망에 갇힌 전리품인 것을 잊고 있지나 않는 것인지! 또 그 당사자는, 자결하지 못하고 목숨을 부지한 포로인 것을 어떻게 면하려고 몸부림치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더군다나 어리둥절하다. 이러다간 무슨 변고가 닥칠 것만 같다.

 

소용돌이는 이제까지 자란 시골뜨기 심성을 흔들어댄다. 내 안에서 조금씩 자라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쭈그러진 젖무덤을 더듬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려는 마음조차도 파장에 일렁이어 묻힌다.

 

소용돌이는 바닷바람풍기는 푸른 고향들판의 논두렁길도 앗고 허무는 현실로 다가와서, 납작하게 엎드려있는 나를 소스라치게 한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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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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