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천막 밖에서 숨넘어가는 호각(號角) 소리가 잇달아 울린다. 멀리에서 혹은 가까이에서, 사방에서 귀가 따갑게 끊임없이 울린다. 아쉬운 아침 숟가락을 놓은 내 뱃속 것마저 훑어 내릴 것처럼 요란스럽게 길고 길게 이어지더니 머리를 불쑥 들어 민 노란 콧수염 낯익은 미군 병사는 늘 하던 짓대로 팔을 앞으로 크게 저으면서 ‘렛쓰 고!’를 외치며 어서 나가잔다.
정문 안 넓은 마당에 쪼그리고 앉은 포로들이 한 층을 깔아 놓은 듯 촘촘히 꽉 채워 검푸르다. 둘러선 미군들의 호령에 겁먹고 두리번거리며 조여 맞붙어서 한 덩어리로 앉아있다.
난 한 무리의 가에 붙어 쪼그리고 앉았다. 오금이 으스러질 것처럼 조여든다. 몸부림치다가 내 눈에 뜨인 것은 천막으로 가려진 산 같이 솟아 있는 물건 더미다. 진홍색 천 조각이 포장 밑을 뚫고 나와 오월의 아침햇살에 노랗게 눈부시다. 이상한 예감이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겹으로 친 철조망 사이에 ‘윤형 철조망’이 기어가듯 엎드려 있고 세 겹의 철조망 넘어 통로에는 수없이 많은 경비병이 한 발짝 간격으로 서서 총구를 우리에게 들이대고 있다.
난 의심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어떤 곳으로 이송하려는 것은 아닌지? 그곳에서 최후를 맞게 하려는 것은 아닌지? 아니지, 이제까지 잘 먹이고 입히든 우리를 갑자기 죽이다니?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 ‘73수용소’ 포로들도 못 믿어서? 폭동이라도 일어날 조짐이 있어서? 천막 속을 뒤지려고? 언제나 우리 ‘73수용소’가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모범(?) 포로들의 집단이니 저들이 무슨 일을 하기에 앞서, 이 ‘73수용소’부터 시작하여 반항의 기(氣)를 꺾는 전시적 효과를 노리는?
숨 막히는 일순의 공포다. 사위(四圍)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인이 틀림없이 에워쌌을 것이다. 우리가 있던 천막들 사이사이에서 들려오는 미군들의 고함에 모두가 새파랗게 질려있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에워싼 총부리에서 불을 뿜는다면 어떻게 되나?
북쪽에 인접한 중공군수용소에서는 여느 날과 같이 그들의 제식훈련을 정연한 질서로 행하고 있다. 또 남쪽에 연달아 있는 포로수용소는 그들 철조망 안을 압도하는 사상적 정서에 맞게 한국군의 군가를 부르며 나름의 행사를 벌이는가 하면 또 다른 수용소에서는 ‘인민군’ 군가를 높이 부르면서 행렬을 가다듬는다. 그들은 일상적 일과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는 생사의 순간을 맞고 있다. 예측 안 되는 앞일에 ‘일각이 여삼추’다. 난 내 나름의 방식으로 상황을 타개하려 몸을 낮추고 죽은 듯이 숨죽이고 귀를 세운다. 여차하면 생사를 운명에 걸고 내달을 판이다.
빈 천막들을 확인한 끝에 호각 소리는 멎었다. 한 사람씩 앞으로 내보내고 다음 목에서 주머니 것을 몽땅 털어 땅에다 놓아야 하고 그다음 목에서는 입은 옷을 홀랑 벗어서 한쪽에 던지게 한 다음, 산 같은 더미에서 주홍색 반바지를 입고, 다른 더미에서 반소매 윗도리를 입고는 검사된 소지품을 갖고 천막으로 돌아가란다. 스물 남짓 줄에 앞앞이 미군들이 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입는다. 총칼의 위협 앞에 우익(右翼)을 자처하든 무리도, 편 가르지 않는 미군의 포로 대우에 숨어 안주하는 좌익의 무리도 함께 떤다.
공산당 대회장의 붉은 장막처럼 천하를 뒤덮는 이 아침에, 무엇이 좌요 무엇이 우 인지 가늠할 수 없는 허탈, 그것이 지배할 뿐이다.
아직은 낌새를 아무도 모른다.
한바탕 회오리가 지난 빈 마당에는 벗어 놓은 녹색 P.W 군복이 다른 자리에 산봉우리를 이루고, 수용소 안은 때아닌 가을이 되어있다. 움직이는 단풍이 가득하여 천지가 붉게 물들었다. 피의 대가다. 모든 포로의 ‘행동거지’가 낱낱이 드러나고, 포로들의 야외작업은 그대로 주홍색의 표적이 되고 있다. 단 한 명이 있어도 도드라져 보이니 은신의 여지가 없는 철조망 안팎 포로들이다. 붉은색조차 기피(忌避)하는 극한적 우경(右傾)인 남쪽 땅, 좌우 대립 속에서 극좌의 상징적 색인 주홍, 이 붉은 옷을 입고 탈출하기는 죽음을 자초할 뿐이다. 총알받이 표적에 걸맞은, 움직이는 표적이 될 뿐이다. 해서 이 옷은 P.W 글씨가 따로 필요 없었는지 말끔한 여름 난방 옷이 되긴 했어도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나를 내려다보아야만 하는, 몸 전체에 샅샅이 박아 낸 붉은 낙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기죽는 옷이다.
이렇게 해서 포로의 탈출을 단순하게 막을 수 있었다.
이튿날은 우리 수용소의 남쪽, ‘74 수용소’에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 수용소도 당하는 날, 그대로 당한다. 다음날 하루는 우리, 모두가 치욕을 맛보는 긴 하루였다.
이렇게 우리 몸을 붉게 칠한 날은 겨우 이틀뿐이었다. 진종일 붉게 타는 ‘73수용소’ 안에서는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상기된 맞은편을 보며 무언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우리는 밤새도록 온 천막을 연계한 비밀 회합을 통해서 우리의 정서와 배치되는 붉은 옷을 벗어버리기로 했다. 밤에 우리의 움직임은 오해를 부를 수 있어 대낮에 행동하기로 했다.
무저항 의사 표시로. 사흘째 되는 날 낮에 각자가 입은 붉은 옷을 벗어서 정문 앞마당에 쌓아놓기로 했다. 그런데, 붉은 옷을 벗고 갈아입을 옷이 없으니 어떻게 하랴! 수건을 기저귀로 차거나 치마로 두르는 외에는 방도가 없다. 받은 수건 한 장이 세수할 때와 목욕할 때는 수건이 되지만 함께 옷 구실도 하게 되니 이건 만능 수건이다. 다른 방도가 없으니 벗고 다니거나, 차고 다니거나, 아니면 두르고 다닐 뿐이다.
오전 한나절, 사이 ‘73수용소’ 안은 붉은 일색의 섬유 옷 가을에서 황색 일색의 ‘가죽옷’ 초가을로 거꾸로 바뀌었다. 자연은 오뉴월 초록빛인데 거제도의 한구석엔 주홍색 늦가을 옷을 짧게 사흘 입고 곤두박질 처서 초가을 황색으로 되돌아 입으니, 섭리의 거스름을 강산의 정기가 용납하랴! 필연코 순리로 되돌리리라!
갑자기 벌거벗은 원시사회가 되어 버렸다. 동녘의 섬 주민들과 ‘함흥’ 피난민들은 기괴한 나체촌을 무료 관람하려고 넓지 않은 길바닥을 종일 메워 북적인다. 누군가가 걸치고 있어야만 상대적으로 부끄럽겠는데, 어딜 보아도 벗은 사람이요 누굴 보아도 인간 원형의 가죽옷이니 곧 일상적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다.
당국의 어려움은 적지 않을 것이다. 수시로 있는 작업장에 나체로 나가겠다고 정문 안에 줄 서 있는 포로들을 보는 미군의 심기는 오죽하랴! 넘치는 분뇨를 처리하는데 다른 수용소 포로로 잠시 데려다 일을 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놓아두자니 수용소 안은 분뇨로 넘칠 것이고, 당국도 어쩔 수 없이 벗은 채로 분뇨통을 멘 행렬을 이끌고 대로를 활보하게 했으니, 욕은 어디로 갈 것인지. 수용소 안은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공놀이도 하고 제식훈련도 하고 취사와 급식도 한다. 가관인 것은, 제식훈련 때다. 수건을 신체의 하부에 적절히 고정할 수단이 없으니 그까짓 수건은 아예 던져버리고 대오를 맞추어서 훈련하는 모습, 호각 소리에 맞추어서 돌출부가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 사이를 오가며 때리는 이 순간,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은 앞으로 영영 보지 못할 진귀한 구경감이다.
우리가 붉은 옷을 벗은 다음 날 인접한 ‘74 수용소’에서도 벗어 던지고, 그다음 날은 그 위 ‘75 수용소’가 벗어 던졌다. 이렇게 해서 거제도는 북회귀선에서 가장 가까운 남쪽의 원시 공동체, 나체촌이 되었다.
우리는 먹을 걱정, 입을 걱정, 놀 걱정이 전혀 없는 섬나라 원시 부족이 되어 죽을 날만 손꼽는 기막힌 배달(倍達)의 유랑(流浪)민이 되고 있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