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

외통궤적 2008. 7. 2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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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7.011029 배신자

개별 ‘면회 심사’과정에서 일시 격리 수용됐든 빈 수용소에서 돌아온 저녁 무렵에, 천막마다 뒤지고 다녔으나 그 둘이 있던 천막 안에서는 동창생 친구와 일가 아저씨는 찾을 수가 없다. 혹시 잠깐 밖으로 나갔는가 하여 내가 있는 천막으로 돌아와서 기다리다가 다시 찾아가 보아도 역시 둘은 보이지 않는다.

천막마다 헐렁하게 빈자리가 많은 것으로 보아 꽤 많은 사람이 ‘북’을 선택했나보다. 난 그 두 사람이 있었던 각각의 천막을 돌며 그들이 있었던 자리의 옆 사람들에게 물을 수밖에 없는데, 역시 안 보인다는 말밖에 없다. 이튿날도 하루, 종일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내 눈앞에서 영영 떠나갔다. 그들이 나를 믿었다면 내게 바른말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다! 둘은 내가 조리 있게 설득한다면 필경 남을 사람들이었는데! 둘은 단지 무연고지인 이 땅에 대한 두려움, 이 한 가지 단순한 이유였을 뿐이란 데는 두말할 필요 없다. 하긴, 속고 속이는 판국에서 연명한 그들이기에 나무랄 것도 없지만 어쩌면 나마저 감쪽같이 위장으로 대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내 진심을 외면하고 배신할 수 있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두 사람의 행동에 난 한 인간으로 심히 슬퍼하고 있다.

내가 ‘간다’ 해도, ‘남는다’ 해도 두 사람에게는 아무런 해가 미치지 않는 철저한 신의에 바탕 한 물음에 대하여 위장하여 대답하는 둘의 비인간적 처신에 나의 깊이 없는 사귐을 자탄하고 있다. 둘은 우리가 있는 이 수용소에서의 분위기가 그들의 진의(眞意)를 밝힐 수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 배경은 ‘나’라는 첩자를 보내어서 사흘이라는 공백을 이용해서 어떻게 처치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그렇게 하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볼 때, 매사를 가위바위보 식으로 역 추리한다면 결국 당하는 쪽은 추리를 무섭게 깊이 하는 자가 될 것이란 걸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둘은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 문답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앞날을 밝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싶어서 차라리 난 배신감을 억누르는 연민의 정이 깔린다.

그들은 고향의 부모 형제를 만나기 위해서 ‘북’을 택하였어도 만날 수 없을 것이고, 평생을 꼬리표를 달고 지내는 가엾은 포로의 허물을 벗어 던지지 못할 것이다. 변색(變色)의 명수는 상대의 변색을 보며 되 속아 변색의 의미를 잃고 본색으로 돌아오는 뼈아픈 교훈(敎訓)도 뒤늦게나마 깨달을 것이다. 나를 두고 그들도 같은 말을 할 것인지? 적이 궁금할 따름이다.

당초에 독자적 결단을 내렸으면 끝까지 비밀로 하여, 오히려 두 사람을 내 의지와 상반되게 권했다면 공허할 내 마음이 오히려 기쁨으로 찼을는지는 몰라도 지금보다 더 무거운, 허전함이 아니라 가책으로 무겁게 짓눌릴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내가 취한 두 사람에 대한 권유의 방식은 온전히 진솔함이어서, 두고두고 후회 없을 것이다.

난 이 순간, 그 둘의 행운을 빌 뿐이다.

아쉬움은 멀리 사라지고 있다./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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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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