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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궤적 2008. 7. 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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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관리당국의 최루탄투척으로 진압된 시위는 얼마 후 정신을 차린 포로들의 거듭된 시위를 다시 진압해야하는 순환의 틀이 되어간다. 이 순환과정의 한 고비에서 나는 잠시 쉬고 있는 것이다. 시위는 소강상태로 잦아졌다가 다시 이어진다. 이렇게 날이 밝고 해가 진다.

 

오늘은 여섯 겹의 철조망이 가슴을 에듯이 다가오며 나를 조이고 있다. 오백 명씩 묶은 네 개의 작은 수용소를 담은 바깥의 이중철망은 오늘따라 가로세로 엮음이 더 촘촘하다. 수용소를 통틀어 안고 있는 골짝이 전보다 더 깊고 좁아 보인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이 다가온 쇠 가시가 바늘처럼 뾰족하고 날카롭게 반짝인다.

 

이제 막 실 뿌리를 내리고 터 잡은 연한 풀포기에 말라붙은 최루탄포말이 하얗게 엉켜있다. 못 이겨 비스듬히 누워 내일을 위해 끝을 곧게 위로 뻗어 허리가 구부정하게 휘어있다. 이 풀은 외부의 작용이 없는 한 내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휴전도 철조망도 최루탄도 풀포기에는 아무런 뜻이 없다. 있는 것 그것이 전부요 이유요 당위이다. 이 풀은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다. 비록 철조망 사이에서 햇볕을 쪼일지 못 쬘지 모르지만 태양을 향해 온 힘을 기우려 제 환희의 노래를 구가한다. 철조망 밖의 숲은 여리고 어린 갖가지 풀포기를 살고자하는 그대로 싸안아 검푸른 초록빛을 띄고 나의 혼을 앗고 있다.

 

나는 이제까지 잊고 있던 내 주위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러면서 지극히 제한된 육신의 터전을 둘러보고 있다. 하늘은 극점을 무한의 확대하며 나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무거운 육신은 발바닥에 천근의 무게를 달아서 당기고 있다. 나는 육신을 벗고 싶다. 엄습하는 미래의 불확실성, 자각되는 능력의 한계, 순수만을 물려받은 혈통의 인식, 이런 것들이 내 설자리를 좁히고 있는 것 같아서 발밑을 내려다본다.

 

두 발바닥을 이 땅위에 맞대어 서면 그까짓 떡갈나무 잎 두 장 너비 밖에 안 되는데, 차디찬 맨 땅위에 비옷 한 장 깔고 담요 한 장 말아 누우면 그까짓 소나무 밑줄기 한 그루 너비 박에 안 되는데, 나는 점점 좁아지는 철조망 때문에 눈감은 시간을 늘려야한다. 그리고 넓은 공간을 만들어서 유영(遊泳)하여야한다. 선 채로 눈을 감고 나를 띄운다. 그러나 육신을 지고 살아가는 내가 어찌 눈을 감고 상념(想念)의 헤엄만 치고 부지할 수 있을 것인가? 마땅히 없을 것이니 눈을 뜨고 발을 띤다.

 

‘옳다. 여기에 비록 볼거리는 없지만 내 다람쥐가 되는 한이 있어도 돌리라!’는 생각이 미치는 순간에 어느새 코앞에 은빛의 가시철사 줄이 높다랗게 가로막는다. 철망 가의 접근은 탈출을 의미하는 것, 반사적 경고에 움찔하여 뒤돌아서 그대로 직선으로 걸으니 발길에 걸리는 천막 줄 때문에 그만, 다람쥐 채 바퀴 돌기조차 체념하고 말았다.

 

철망은 각(刻)각으로 조여들고 있다. 나는 또 눈을 감고 수직 상승한다. 그리고 높이 올라 하늬바람과 샛바람을 불러 모아 그 위로 북풍을 흘려 아래로 기어서 내 고향 ‘통천’ 바닷가에 사뿐히 내린다.

 

인문 사회에도, 군사 경제에도 대류(對流)의 원리는 있을 것이다. 우리를 실어 나를 역풍은 언제 어떻게 다가오려나.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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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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