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 안에는 그 흔하던 ‘휴전 반대’ 소요(騷擾) 도 없다. 포로들이 밥때만을 기다리는 무료한 일상으로 또 되돌아온 지 벌써 며칠째다.
내가 겪는 상념의 무게가 다른 이가 모래알을 씹는 억압의 곤혹과 진배없겠지만 아무도 고통을 호소하거나 씹히는 모래알을 탓하면서 하소연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고통을 호소할 수 없는, 고통을 기쁨으로 승화해야 하는, 포로 아닌 포로로 자임한 지 벌써 석 달이 되니 어중간한 우리의 입장을 반길 사람이 이 철조망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답답한 심경에 난 또 나름의 공간 넓히기의 재주(?)를 부린다.
느끼는 이, 나 혼자고 보는 이, 동초뿐이다.
내가 거닐 수 있는 직선거리는 철망을 따라서 쳐진 열 개의 천막 가로길이인 백 발짝 안팎이다. 수용시설의 규모는 뛰놀 엄두를 못 내도록 아주 작고 밀도 높게 수용함으로써 갖가지의 말썽을 빨리 제압하도록 설계하여 작아졌다. 이는 수용소 내에서의 자체 희생자를 줄이기 위해 강구된 최적의 산물이니 한창 피 끓는 나이에 요동치는 몸부림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철조망을 기어오를 수도 없는 노릇, 땅을 파고 굴을 뚫어 탈출을 시도할 수 없는, 이미 길들어서 때만 마냥 기다리는 어중된 포로이니 더욱 답답하다. 사생을 걸고 항거해야 할 때는 벌써 지났다.
오직 전향된 삶의 첫걸음을 언제 떼느냐는 것만 기다릴 뿐이다.
긴 여름을 넘기며 햇무리를 벗어던진 초가을 햇살이 가볍게 철조망 안에 들지만 내 마음은 안개 낀 날처럼 뿌옇다.
난 이 공간을 넓히련다.
기댈 수도, 잡을 수도, 가까이 바라볼 수도 없는 겹 철망의 위세에 눌려 한 발짝 물러선 거리에서, 발자국을 옮겨 본다. 되도록 느리게, 될 수 있는 한 좁게 발을 옮겨나간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가 있는 수용소의 너비는 넓어질 것이다.
아주 작게 아주 천천히 옮아간다.
난 지금 철조망을 멀리 내치며 성기게 하고 있다. 그래서 넓은 공간에서 숨 쉬고 힘껏 팔과 다리를 뻗고 싶다. 눈을 지그시 감고 철망을 따라 조금씩 움직이는 내 시야의 맞은편 가로지기 철망은 아직도 멀게 보인다. 옮긴 발걸음 수가 많으면 많은 만큼 철망 안의 너비도 그만큼 넓어지고, 철망은 내 눈에서 아직 멀리 있을 것이다. 맞은편에 닿으면 뒤돌아서 다시 천천히 옮겨놓는다. 이때 난, 돌아선 것을 잊으려 한다. 그래야만 더 넓어지는 것이니까.
이제 비로써 난 넓은 공간에서 유유히 걷는 것이다. 또 맞은편에 닿으려면 이렇게 한참을 걸어야 한다. 넓디넓은 수용소를 만드는 내 거동에 철망 밖의 동초(動哨)가 이상을 느꼈든지, 같은 걸음으로 나를 따르며 응시하는 내 뒤 꼭지가 간지럽다.
‘뭐꼬?’ ,
‘?’ ,
‘거 왜카노?’ ,
‘?’ ,
동초는 초조하다. 곧 무슨 변고라도 있을 것 같은지 총을 겨누고 소리 죽여 따라오다가 되돌리는 내 느린 발걸음에 그는 멎고, 내 눈과 그의 눈이 겹 철망 가시 사이를 용케도 뚫고 맞부딪친다.
‘아저씨, 아저씨는 철조망이 좁아서 편하지요?’
‘뭐라카노? 좁기는? 바다처럼 넓데이. 미치고 환장하겠구먼!’
동초는 한없이 긴 철조망을 나와 같이 걸어야 하는, 터질 듯한 긴장으로 시간과 공간을 응축시켰다. 안에 있는 포로들이 떠밀려서 넘쳐날 것 같은 환상과 내가 그 단초(端初)라는 착시다. 동초는 신경질적으로 나를 쫓았다.
난 눈을 크게 떴다. 철망은 다시 원위치로 당겨 좁혀졌다.
좁은 하늘을 한껏 넓혔든 해가 어느새 맞은편 높은 산을 넘으려고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저녁밥 때가 되려면 저 해그림자를 뒷산 꼭대기로 넘기고도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한다.
열을 받은 천막 안이 후끈거린다. 답답한 마음에 다시 밖으로 나온다.
해가 산등성이 소나무를 빗살같이 세우더니 아무 소리 없이, 그대로 넘어간다. 금쪽같은 하루가 의미를 찾지 못하는 나를 외면한다. 빗살처럼 뚜렷이 나란하든 등성이 소나무와 역광(逆光)으로 돌출된 산마루는 어둠 속에 자취를 묻었고 노을이 남긴 엷은 빛만이 초저녁 별이 뜰 길을 연다.
철조망 안의 내가 걷는 느리고 좁은 발걸음은 철망 안 공간은 넓어지는데, 같은 걸음으로 나를 따르는 동초의 철조망 너비는 점점 좁아지고 마침내 넘치는 포로를 의식하는 이 괴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철조망이 아니라 그 안팎에 머무는 삶의 반향(反響)이리라.
그대로인 포로의 철조망은 자꾸만 좁아져서 그들은 철망을 넓히려 하고, 그대로인 동초의 철조망은 자꾸만 넓어져서 그들은 철조망을 좁히려 든다.
바로 이것이다. 서로 다른 행위 궤적의 충돌 기점에서 포로와 동초(動哨)가 부딪친 눈빛은 각자의 상사(想思)점을 역전시켜 되돌렸다. 이 접점이 없었다면 난 아직도 수용소를 넓히고 활보할 것이다. 그래서 동초가 내 고통에 또 하나의 짐을 싣는다.
어두움은 어둠 자체로 시야가 좁아지나 철조망과의 거리는 흐리고 멀어져서 무한의 공간으로 나를 인도한다.
어둠은 내 원점이고 비롯된 빛으로 내가 있음을 자각한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