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내 가지를 붙들고 태양을 향해 춤추던 나뭇잎이 물기를 털고 짙게 물들었는데, 어느새 바람결에 펄럭이다 끝내 못 견디고 떨어져 흩날린다.
늦은 가을 어느 날이다.
거제도 ‘96 수용소’의 싸늘한 밤공기를 가르는 철조망 밖의 발전기 소리가 유난히 시끄럽다. 달빛은 탐조(探照)등에 뚫리어 드리운 그림자 없이 허공에만 가득하다. 달은 동녘 산과 하늘을 가르든 그 자리에 서 있건만 오늘은 산머리와 하늘 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 눈도 탐조등 때문에 청맹과니가 되었다. 달은 난파된 ‘거제호’의 조타실을 밝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지, 그대로 고개를 돌린다.
발밑의 조약돌이 탐조등에 도드라져서 그림자만 나란히 길고, 내 그림자는 철망을 넘어서 저쪽 길 건너에 긴 머리를 두고 있다. 내 허리가 잘려서 반동강 철망 안에 있다. 내 다리도 길게 늘어져 있다. 이대로 성큼 밖으로 내디디면 난 자유인이 된다. 실체와 그림자, 혼돈하고 싶은 유혹조차 느낀다. 부질없는 생각으로 시름을 달래보지만 잠을 자지 않고는 꿈길에서나마 고향에 가볼 수가 없으니 고개를 숙여 천막 안으로 든다.
잠자리에 들 무렵, 요란한 호각 소리와 함께 수용소 안은 또 들끓기 시작했다. 오늘도 늘 하는 대로 갑작스러운 이동이다. 이골이 난 우리는 즉각 미련 없는 천막을 등지고 밖에 나와 다섯 줄을 지어 앉는다.
모든 것에 익숙하여 제 일같이 척척해 내는 것은 미군을 적의 위치에서 우군으로 바꾸는 명확한 징후의 하나에 다름이 없지만, 우리의 모든 자발적 행동은 미군의 처지에서는 오히려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또 다른 외진 곳으로 끌고 가려는 심보(?)를 난 벌써 알고 있다.
낯익은 해안에 실려 온 우리는 큰 아가리를 벌리고 삼키는 뱃속으로 꾸역꾸역 밀려서 들어가며 ‘거제도’를 벗어나고 있다. ‘거제도’는 이제 포로들의 낙원(?)이 아니다. ‘거제도’의 수용소는 일렁이는 이념의 파도에 희생된 수많은 포로가 알게 모르게 격랑에 쓸려 흔적 없이 사라지는 반란 선실이다. 용케도 난 여기까지 살아남아서 이 난파선 ‘거제호’를 피한다.
차마 생각조차 하기 싫은 노예, 탈출한다면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일까만 노예의 사슬은 내가 벗을 수 없는, 아직은 꿈일 따름이다. 아프리카대륙을 떠난 노예선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꼴이다. 난 움칠 수도 뛸 수도 날 수도 없는 무거운 족쇄를 차고도 쉬는 숨구멍을 틀어막을 수 없어서, 이렇게 아가리로 들어간다. 그렇지. 이점이 내 마음을 어둡게 하고 빛을 갈망케 하건만, 여명은 아직 나에겐 낌새도 없다.
큰 됫박을 엎어놓은 것 같은 멍텅구리 배 안이다. 사방은 온통 벽뿐이다. 우리 동네에서 오리 길 밖의 바닷가 모래밭에 닻을 내린 고깃배에 올랐든 짧은 기억이 스칠 때, 이 기억을 놓칠세라 금방 자리한 배 바닥에서 난 눈을 감는다.
비록 올랐다가 바로 내린 작은 배, 바다색 짙게 물들이는 샛바람에 두 개 돛을 한껏 부풀려서 내 있는 모래밭을 향해서 점점 커지는 여름 한낮 오후의 그 배를 그린다. 이미 늦가을 맞았지만 내 마음은 두 팔로 하늘을 젓고 두 발로 바다를 딛는 한여름 고향 바다로만 자꾸 가고 싶다. 한 됫박 밀 자루를 작은 함지박에 담아 이고 배에 올라 가자미와 교환하시는 어머니를 따라나서서 잠시 올랐다 내린 것이 고작인, 그 작은 고깃배에 타고 싶다. 그리고 푸른 바다로 나가고 싶다.
산더미만 한 배의 밑창에 들어서 어디로 가는지 얼마쯤 지났는지 밤인지 낮인지 분간을 할 수 없다. 큰 배를 두 번씩이나 타고 다니는 것 또한 나와 무관한 것이다. 나는 내 것이 아니고 나를 잡아 묶은 포수(捕手) 것이니, 배에 싣든, 기차에 싣든, 트럭에 싣든 무슨 상관이랴! 하지만
그래도 생각 마는 옭지 않았으니, 순간마다 어머니를 생각한다. 한순간만이라도 내가 탄 배도 보고 땅도 보고 하늘도 보는 작은 배를 타보고 싶다.
이 배가 배 같지 않아서, 같잖은 엉뚱한 생각에 잠시 또 지루함을 면한다.
잠도 자고 간이통조림으로 끼니도 잇지만, 우리 삶은 정지된 연속이다. 절망의 시간이 연속되는, 그대로 정지된 시간을 배 안에 싣고 간다.
전신을 울리는 기관 소리만 우리가 어디론가 가고 있음을 알게 할 뿐이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