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으로 얼룩진 훈병(訓兵) 생활은 포로수용소를 거치며 놀고먹던 습관이 든 나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죽음을 무릅쓰고 적과 싸워야 하는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과정임을 알고 버티고 있다.
허약한 내가 그나마 훈련 과정을 따라 붙일 수 있음은 더는 어찌할 수 없는 극한의 경지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가 싶다.
하긴, 고립무원의 고도(孤島)에 흘러든 내가 손을 아무리 저은들, 아무리 목이 터지라고 외친들, 보고 들을 사람이 없으니 홀로 서지 않으면 그 자리가 바로 내가 묻히는 자리라고, 생각에 생각을 다져서 이렇게 버티는지 모른다.
모든 훈병(訓兵)과 함께 나도 마른 명태, 북어같이 말라 드는 넉 달째로 접어들었다. 눈빛만이 반짝일 뿐, 사지가 비틀어질 것 같은, 부지깽이가 되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있다. 잘 받는 훈련으로 자기를 가늠할 따름인 전시(戰時)의 병사들이니까!
들려오든 휴전 소식도 지금 나에겐 아무 소용이 없는 먼 나라 이야기 같다. 지금 내 앞엔 나를 노리며 포진해 있는 적이 우글거린다. 보이는 적, 보이지 않는 심리적 적(敵)이 들어차 있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적과의 싸움에서 이기려고 늘 매복해 있는 상태다. 훈련소는 나날이 새로운 적과 싸우는 변화하는 전선이다.
오늘도 소리높이 군가를 부르며 훈련장으로 나간다.
밭뙈기 경계마다 둘러싸인 돌담 사이로 하얀 갈꽃이 흔들린다. 끊이지 않는 돌담과 이어지는 갈꽃은 벌써 가을을 가져왔지만, 난 눈여겨볼 짬을 잃고 땅만 바라보고 낮은 웅덩이만 찾고 있었나 보다.
낮은 곳이 나를 살리는 가장 참된 참호, 내 보호 장구인 것을 새삼 깨닫는 이즈음이다. 잘나고 못나고 높고 낮고 배우고 못 배우고 잘살고 못살고는 다 헛된 것이다. 생명의 보존은 우주의 가치를 능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낮은 곳은 곧 생명이다.
바람을 막고 햇볕을 받아 모으는 돌담 양지쪽은 겨울을 이기려는 새싹도 함께 움트고 있다.
여기 제주는 가을이 오면서 함께 봄도 오는 신묘한 땅이다.
훈련장을 오가며 보이는 집들이 비어있듯이 조용하다. 갈대로 이은 지붕에 망처럼 엮은 동아줄이 바람의 세기를 말하는 글자 없는 광고 같다. 마을마다 빠짐없이 돌담 성벽과 망루가 보여 그때의 절규가 들릴 것 같아 숙연하다. 성벽 같은 담, 망루들은 아마도 혼란기 제주 사건의 잔해(殘骸)인 듯싶은데, 여기에 움직이는 내가 있어서 시(時)와 공(空)을 절묘하게 엮는다.
오전 훈련을 마치고 쉴 참이다.
병사의 손이 고물거리며 밥통의 따스한 온기에 닿을 때쯤 온몸을 녹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을 텐데, 공손히 양손으로 받쳐 드는 군인의 의지를 난 눈으로 읽고 있다. 짝은 오늘도 나의 그림자가 되어있다.
<이춘성>은 예외 없이 나와 마주 앉아서 돌아오는 밥그릇을 기다리고 있다. 목소리가 쉰 듯이 낮고 피부는 너무 희어서 죽은 깨가 드러나고, 넓적한 얼굴의 하악골이 이즈음 유난히 불거져 나와 있다.
조교의 구령에 맞추어서 식전감사를 하고 둘씩 짝지어서 한 밥그릇에 수저를 일제히 들이댄다. 따지자면 빨리 먹고 더디 먹는 차이 때문에 많이 먹고 적게 먹는 불균형이 있을 수 있다. 한 밥그릇을 둘이 먹는 배식(配食)은 앞 앞의 심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심리의 전장(戰場)이 되는. 우리네 훈련병의 큰 고통 중의 하나다. 적건 많건 각 한 그릇씩 주면 제 것만 해결하면 더는 보이는 것이 없어서, 체념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수저를 놓을 텐데, 둘이 한 그릇 밥을 먹노라면 밥에다가 색칠해서 가를 수도 없고 바나나같이 굽은 밥그릇 둘레에 자국을 내서 표시할 수도 없으니 부득이 눈대중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
자기 쪽에서부터 헐어 나가는데, 한 가운데에 이르면 밥이 수직으로 버텨있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서 넘어가면 아무래도 밥이 쏠린 쪽이 수저를 먼저 놓게 된다. 그것은 자기 쪽으로 쏟아진 밥이라고 해서 자기가 많이 먹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먼저 놓게 되는데, 이때는 아무리 타일러도 막무가내다. 그것은 설명하기 어려운 지극히 아름다운 작은 마음씨다.
<이춘성>은 나보다 빨리 먹는 식성이어서 늘 나보다 한 수저 적게 먹는다. 이것도 아무리 설명해도 들어주질 않는다. 그는 나보다 왕성한 식욕이었지만 언제나 나보다 적게 먹었으니 내가 늘 미안하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편안한 접점, 우리의 짝으로써 안주(安住)하는 공통 분모란 걸 둘은 암묵적으로 시인하는 것 같다. 그래서 또 편안하다. 둘은 말이 없어도 이심전심으로 다 통한다.
안 되는 일이 없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훈련병들은 입대할 때 집에서 가져온 돈으로 요원들의 묵인 아래 고구마를 쉴 새 없이 사 먹는다. 늘 작은 단위의 훈련장에는 소쿠리를 끼고 따라다니는 고구마 장수가 있게 마련인데, <춘성>이나 내나 그들을 일부러 외면하는 처지다. 사 먹지 못하는 괴로움을 당하지 않으려는 의지(意志)로, 당기는 목구멍을 침으로 달래면서도 일부러 초연(超然)한 척하지만, 이 시절 배고프지 않은 훈련병은 하나도 없으니 우리는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른 무감각의 극치를 극적으로 감당하는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단 한 번, 짝 <춘성>이 옆의 동료로부터 반 토막의 고구마를 얻어서 또 그 반 토막을 내게 건네주는데, 난 주저 없이 낚아채어 받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참으로 긴 세월 먹어보지 못한 고구마를, 훈련소에서 그렇게 많은 훈병이 훈련 중 수시로 사 먹는 그 고구마를, 입에 넣어 봄으로써 인고(忍苦)로 부푼 목젖을 달랬다.
당기며 기꺼워하는 목젖의 소리가 들리는 제주도의 고구마를 맛볼 기회를 처음으로 얻었다.
평생 잊지 못할 고구마의 맛, 고구마의 한이 그리움으로 새겨질 것이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