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환영하는 행사는 조촐했다. 배 아가리를 빠져나오는 우리, 곧 ‘명태(明太)’에 찬바람이 달려들어 얼리고 말리고 있다. 훈기라곤 찾아볼 수 없다. 바다는 먹빛으로 출렁이고 선창(船艙)은 온통 회색으로 물들어서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이따금 지나가는 트럭이 우리를 비켜지나갈 뿐이다. 사람의 발자취가 끊긴 선창엔 갈매기도 한산하다. 여기에 우리, 명태가 쏟아져 들어오니 선창은 대번에 훈기를 뿜고 열을 내어 부두로 바뀐다.
이제 전선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시간이 남는 듯, 저녁 무렵에 위문공연장엘 갔다. 극장엔 배에서 내린 마른‘명태’, 아니다. ‘북어’로 가득하다. 처음 구경하는 ‘이남(以南)’의 극장은 말대로 전쟁을 모르는 다른 나라 같다.
잠시 내가 군인임을 잊게 했다.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려는 여가수는 가슴을 쥐어짜며 호소하고 있다.
“임께서 가는 길은 영광의 길이었기에,
이 몸은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었소.
(…)
바람 불고 비 오는 어두운 밤길에도
홀로 가는 이 가슴에 즐거움이 넘칩니다.”
들고 또 들어도 나와는 맞추어지지 않는 가사다. 임이 없으니, 노래는 내 심금은커녕 옷깃에도 스치지 못하고 ‘홀로’ 흘러갈 뿐이다. 그러면서도 애써서 노랫말의 실감 떠 올리고 싶다.
내가 떠날 때의 어설픔, 이별 없는 증발(蒸發), 아무도 없는 이별, 이별이 아닌 이별, 나도 모르게 이별이 된 이별을 생각하여 곱씹고 되뇌어서 혼자 삭이고 한숨짓는다. 임과의 이별이 단장(斷腸)이라면 육친과의 이별은 질식(窒息)의 몸부림이다. 난 질식할 것 같다. 여기 많은 병사는 머지않아서 육친과 상봉할 것이지만 난 소식조차 모른다. 한가지, 많은 병사가 나와 같은 처지이고 그들 또한 고향 소식을 알 수 없는 ‘이북’ 출신이라는 점이 위안 아닌 위로가 된다. 이렇게 위로받으려 해도 따로 절통한 통한의 매듭이 풀리지 않고 날 옥죄이고 있다. 여전히, 하늘을 보고 빛나는 해를 보고 나무와 풀포기만 보고 홀로, 아무 말 없이 증발해 버린 내 통한의 이별이 그 매듭이다. 이것을 풀기 전엔 난 눈을 감을 수 없다.
위문공연은 내겐 위문이 아니라 고통의 시간을 연장했을 뿐이다. 특수한 환경의 우리를 ‘이해’하는 프로그램은 아직 없다.
춘천, 밤새도록 기차로 올라와서 새벽녘에 바라보는 춘천의 산야가 검게 우리 앞에 다가왔다. 여기는 내 고향의 일부이니 친근감 넘치는 우리 도청소재지이련만 난생처음 보는 ‘춘천’의 전경은 시린 바람과 얼어붙은 강과 말라버린 넓은 벌판뿐이다. 강 건너 남쪽엔 고향 동네의 ‘매봉산’같이 오르기 좋을 높이의 동산들이 에워 벌판에 솟아내 흐르는 북한강을 지켜보며 사방에 두른 산줄기에 이곳 춘천의 외로움을 호소하듯 서 있다.
멀리 내륙으로 들어와 겹겹이 산으로 둘려서, 굽이굽이 강으로 휘감은 춘천은 그 이름대로 봄을 연상케 하지만 어찌해서 이렇게 삭막한지! 내 마음이 삭막하여 따뜻한 ‘봄의 내(春川)’가 얼어붙은 빙판을 이뤘을까? 늘 외로운 춘천, 늘 버리고 가는 춘천, 나와 닮은 것은 아닐까? 너무나 멀어서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남을 끌어들이지도 못하는 타고난 지세 때문이리라! 내 고향과 함께 타고난 성정(性情), 타고난 지세, 늘 소외되고 먼 곳, 이것이 나와 춘천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초대면임에도 친근하여 내 마음을 아늑히 감싸는 이름, 춘천이니라!
북한강을 건너서 북쪽으로 치운 보충대에 머물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전방으로 팔려(?)나가는 소용돌이를 맞고, 벌써 내 짝 ‘이춘성’은 어디론가 팔려 가버렸다. 마음을 트고 얘기할 상대를 잃은 난 빨리 있을 곳, 부대에 배속되길 기다리며 며칠을 견뎠다.
뜻밖에, 정말 뜻밖에 만난 고향 친구 ‘류기일’은 날 놀라게 했다. 그도 ‘포로’ 생활했다는 것이다. 그는 고향에서 온 일가 아저씨 되는 이가 운수업을 한다느니, 자기는 그래서 고향 친척과 교신이 된다느니 하면서 사뭇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만 늘어놓으니 난 기가 죽어 점점 상대적 고독에 잠기고, 부러운 곁가지가 차라리 밉상스럽게 되고 있다. 난 속물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육친의 눈길 한 번이라도 마주치고 싶고 입김 한 번이라도 쏘이고 싶은 처지에선 어찌할 수 없는 인간적 소치이니 이 마음을 또한 억제할 까닭이 없다. 그래서 이래저래 속상하고 무력해진다. 그래서 난 또 다진다. 집을 떠날 때도 혼자였으니 지금 혼자인 것이 당연하지! 무슨 상관이랴! 아귀차게 다질 뿐이다. 원군을 얻었지만 여기선 곧 헤어질 곳, 다음 만날 날을 기약하고 긴 이야기의 끝을 맺지 못하고 각자 점호를 받으려 자기 소속 부대로 돌아가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는 여전히 풍만했다. 여유 있어 보였고 그의 앞길이 열리는 듯했다.
병영에 부는 바람, 소리가 송곳같이 날카롭다. 바람은 귀속에 꽂히고 코끝을 얼린다. 곧 옆구리가 당기고 조여든다.
수은주는 뚝 떨어져서 있을 것이다.
내 기분도 납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는다.
이제 친구는 내 곁에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