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협정은 점점 기정사실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전방에 배치될 기회를 뺏기고 제 2 방어선의 구축에만 일념 하는데, 좀처럼 젊은 혈기를 내 뿜을 신나는 한바탕이 전개되질 않는다. 고작해야 기동훈련이고 공격 훈련을 반복할 뿐이다.
사회생활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내가 각지에서 온 집집의 자손과 어울린다는 것은 퍽 뜻있는 생활임을 자각하게 한다. 일찍이 여행다운 여행을 해보지 못하고 엉거주춤, 천둥소리에 개 뛰어들 듯 들어온 한국군 생활이지만 나로선 좋은 경험을 하고 있어 이나마 다행이다. 소용돌이에 빠진 이 땅 젊은이가 나뿐이라서 스스로 만족한다고 하기에는 염치없지만 적어도 난 이 소용돌이를 어렴풋이나마 깨치고 매사를 흘리지 않는 버릇까지 붙어 있다. 내가 아직 집에 있다면 책으로나 알아차리고 있었을 전국의 방언을 짧은 동안에 알아들어 삭이고 전국의 풍물을 본 듯이 꿰고 전국의 타령과 가락을 귀로 들을 수 있었겠는가! 모름지기 굳이 들어보려면 돈푼깨나 없애가며 시간을 까먹었어야 했을 것을 난 요행으로 살아서 만끽하지 않는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한 울안에 모인 각급 장병은 각가지 층의 갖가지 성정(性情)을 지니고 갖가지 환경에서 자란 젊은이들이다. 이 친구들과 교감하고 있는 내가 만약 사회에서 같은 경험을 하려면 그 돌아다닌 거리가 수만 리인들 못다 하지 않겠는가, 싶어서 군대 생활이 내게는 좋은 보기와 체험의 장이 되겠기에 실속을 차린다.
특별히 특수교육을 다녀오지 않았음에도 곧잘 이들과 어울려서 제법 상사의 구미에 맞게 기안하고 작성하여 그들의 요구에 부응했다. 구태여 후원을 받을 필요도, 애걸할 이유도 없다. 게다가 아첨할 비위조차 없으니 난 바위 위에서 돋는 가시덩굴의 싹이 되어있다. 그러니, 날 밀어내고 들어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내 힘으로 얻은 제자리이기 때문이다. 많은 선후배가 돈의 힘으로, 아름의 힘으로 한직과 수월하게 복무하려고 눈 부릅뜨고 날뛴다지만, 난 여기서도 예외일 수밖에 없다. 나뿐만은 아니리라. ‘포로’ 출신 한국군은 나와 같이 주어진 일에서 무언가를 유익하게 찾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장기 복무를 원하지 않는다. 장기 복무로는 앞길이 자명하게 보장하기엔 나의 이제까지의 전력(前歷)으로 보아 용납하지 않을 테고, 또 세월을 죽이는 호구(糊口)의 수단으로는 내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될 수 있으면 홀로 서길 은연중 기대하나 그것도 지금의 나로선 실현이 희박한, 꿈일 뿐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것은 ‘휴전’이 불확실한 정전이라지만 어쩌면 평화의 가능성이 내포된 말뜻도 있는 것 같고, 북으로 가는 길이 막혀버린 마당에선 더는 호구의 목적으로만 안주할 수 없다는 이중적 잣대로 스스로 재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해가 저물면서 이관되는 문서를 챙긴다. 내 많은 필적을 담은 문서가 다른 각지, 각 단위부대 작성자의 필적과 함께 잠자며 비교되려니 생각하니 여기서도 깨알같이 박은 숫자가 낱낱의 개성(個性)을 드러내며 미래를 보증하고 과거를 검증하는 틀이 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긴장된 하루를 보낸다.
‘사창리’의 포성은 이제 옛 그 소리와 달리 한결 가볍게 들린다.
휴전이 주는 심리적 안도가 포성(砲聲)조차 달리 매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