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밭으로 된 척박한 땅에 솔밭이 군데군데, 낮은 언덕으로 이어지는 벌판이 끝없다. 흰 눈이 바위 옆에 붙어서 얼고 녹고 얼고 녹으면서 돌처럼 굳어져 엉켜 있다. 눈은 지나가는 버스가 뿜어낸 매연과 먼지를 머금어서, 이른 봄 논 가의 개구리알처럼 까만 눈을 박아가며 바위를 닮아간다.
천안을 거쳐서 예산을 둘러 여기까지 기차와 버스로 하루, 종일 왔건만 아직도 ‘태수’네 집은 멀리 북쪽으로 보이는 산 밑까지 걸어서 가야 한다는데, 잠시 길가 바위에 다리를 걸쳐 앉았다.
벌판에서 보이는 북쪽의 하늘 밑엔 하나밖에 없는 산이 올려 보이는데, 큰 산이 없는 주위에 오히려 산이 존귀해 보인다. 뒷산. 정겹게 앉아서, 봄이면 일렁이는 솔밭의 바람을 부르고, 여름이면 넓은 들에 쏟는 장대비를 내려다보고, 가을이면 오곡이 무르익은 황금 들판을 팔 펴고 싸 안고, 겨울이면 하얗게 눈 덮인 들을 쓰다듬으며 앉아있는 뒷산이 보배롭고 귀해 보인다.
산만 바라보고 지낸 몇 년의 세월이 산을 오히려 잊게 했나 보다.
‘태수’는 제 고장 자랑을 귀 아프게 늘어놓지만, 늘 한구석이 빈 내 마음은 보이는 이 전경을 어떻게 하면 내 고향과 닮게 보이도록 칠하고 옮겨 보느냐의 관심거리일 뿐이니 말은 귓전에서 돌다 간다. 내가 우리 고향마을 앞에서 이렇게 쉬고 있는 착각이라도 유도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눈뜨고는 이룩하지 못할 것 같아서 눈을 감고 만다. 이제까지 눈 안에 펼쳐진 그림의 음영(陰影)을 억지로, 억지로 내 고향 산야와 겹쳐보려 몸부림친다. 그러나 산야는 아무리 겹쳐놓아도 우리 고장이 아니다. 다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지붕의 눈 녹는 소리가 들려오다가 처마 밑 고드름 맺는 유리막대가 보이면서 머리가 산 밑으로 기울어짐을 느낀다.
눈을 번쩍 떴다. 파란 대나무가 울 울이 둘러쳐지고, 짙푸른 소나무가 집들을 눈 아래로 굽어보는, 뒷산이 눈에 선하다. ‘태수’는 여전히 팔을 벌려가며 제고장 소개에 정신이 없다.
‘태수’네 부모는 무척 반기지만 웬일인지 난 점점 고독해지고 점점 허전해지기만 했다. 그림자같이 따라다니며 소개받고 소개하는 매일의 친척 방문이 나를 말 없는 고문으로 몰고 갔다. 그렇다고 방구석에 혼자 앉아있을 수도 없다. 예상은 했지만, 시골의 전형은 날 그리움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게 만들고 점점 옥죄이고 있다. 아무에게나 내색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기껏 나를 생각하는 친구더러 일찍 귀대하잘 수도 없으니 난 들러리를 서도 단단히 서 있는 꼴이다. 그는 늘 ‘이북 사람’이라며 별난 사람으로 소개했고, 그때마다 소개받는 그들은 어린 나의 거동이 신기한 듯 고향 소식을 듣고 싶어 하면서 놀라곤 한다. 표류해 온 이국의 난파 선원같이 이리 훑고 저리 닦고 떠보고 시험하고, 딴에는 거침이 없는 내가 또 이상했나 보다. 난 이렇게 해서 ‘태수’네 고을의 원숭이가 되어있었다. 그냥 원숭이가 아니라 거대한 침팬지의 새끼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쩔쩔매고 있었다. 그들은 전쟁을 겪었어도 순진하고 때 묻지 않았다.
‘태수’네 고장 사람들에게서 어머니를 보았고 할머니를 보았고 아버지를 보았다. 이로써 대만족이다. 난 어머니의 손자국이 묻은 상 싶은 밥상을 대할 수 있었고 아버지의 도끼날에 쪼개진 장작 군불을 지핀 것 같은 방에서 다리를 뻗고 긴 기지개를 켤 수 있었다.
상상의 날을 실현하고 있다. ‘태수’네 고향 ‘서산 읍’ 장터에서 내 고향 ‘통천 읍’의 장날도 보았다.
못내 아쉬운 ‘내 고향 나들이’ 흉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