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2

외통궤적 2008. 8. 10.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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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7.011230 휴가Ⅱ

돌밭으로 된 척박한 땅에 솔밭이 군데군데, 낮은 언덕으로 이어지는 벌판이 끝없다. 흰 눈이 바위 옆에 붙어서 얼고 녹고 얼고 녹으면서 돌처럼 굳어 엉켜 있다. 눈은 지나가는 버스가 뿜어낸 매연과 먼지를 머금어서, 이른 봄 논가의 개구리 알처럼 까만 눈을 박아가며 바위를 닮아간다.

 

 

천안을 거쳐서 예산을 둘러 여기까지 기차와 버스로 하루 종일 걸렸건만 아직도 ‘태수’네 집은 멀리 북쪽으로 보이는 산 밑까지 걸어서 가야한다는데, 잠시 길가 바위에 다리를 걸쳐 앉았다.

 

 

벌판에서 보이는 북쪽의 하늘밑엔 하나밖에 없는 큰 산이  우뚝 서 있다. 주위에 산이 없으니 오히려  그 산마저 존귀해 보인다. 정겹게 다정히 앉아서, 봄이면 일렁이는 솔밭의 바람을 부르고 여름이면 넓은 들에 뿌리는 장대같은 비를 내려 보고 가을이면 오곡이 무르익은 황금들판을 팔 펴 싸안고 겨울이면 눈 덮인 하얀 들을 쓰다듬으며 앉아있는 뒷산이 보배롭고 귀해 보인다.  산만 바라보고 지낸 몇 년의 세월이 산을 오히려 잊게 했나보다.

 

‘태수’는 제 고장 자랑을 귀 아프게 늘어놓지만 늘 한구석이 빈 내 마음은 보이는 이 전경을 어떻게 하면 내 고향과 닮게 보이도록 칠하고 옮겨 보느냐의 관심거리일 뿐이니 그의 말은 귓전에서 돌다 간다.

 

내가 우리 고향마을 앞에서 이렇게 쉬고 있는 착각이라도 유도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눈을 뜨고는 이룩하지 못할 것 같아서 눈을 감고 만다. 이제까지 눈 안에 펼쳐진 그림의 음영(陰影)을 억지로, 억지로 내 고향 산야와 겹쳐보려 몸부림친다. 그러나 산야는 아무리 겹쳐놓아도 우리고장이 아니다. 다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지붕의 눈 녹는 소리가 들려오다가 처마 밑 고드름 맺은 유리막대가 보이면서 머리가 산 밑으로 기울어짐을 느낀다.

 

 

눈을 번쩍 떴다. 파란 대나무가 울과 울에 둘러쳐지고, 짓 푸른 소나무가 이 집들을 눈 아래로 굽어보는, 뒷산이 눈에 가득 차 들어온다. ‘태수’는 여전히 팔을 벌려가며 제고장 소개에 정신이 없다.

 

 

‘태수’네 부모는 무척 반기지만 나는 웬일인지  점점 고독해지고, 점점 허전해지기만 한다. 그림자같이 따라다니며 소개받고 소개하는 매일의 친척방문이 나를 말없는 고문으로 몰고 갔다. 그렇다고 방구석에 혼자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예상은 했지만 시골의 전형은 나를 그리움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들고 점점 옥죄이고 있다. 아무에게나 내색할 수도 없다.  기껏 나를 생각하는 친구더러 일찍 귀대하잘 수도 없으니 나는 들러리를 서도 단단히 서있는 꼴이다.

 

그는 늘 이북사람이라며 별난 사람으로 소개했고, 그때마다 소개받는 그들은 어린 나의 거동이 신기한 듯 고향소식을 듣고 싶어 하면서 놀라곤 한다. 표류해 온 이국의 난파 선원같이 이리 훑고 저리 닦고 떠보고 시험하고, 그들딴은 거침이 없이 읊어(?)데는 내가 또 이상했나 보다. 나는 이렇게 해서 ‘태수’네 고을의 원숭이가 되어있었다. 그냥 원숭이가 아니라 거대한 침팬지의 새끼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쩔쩔매고 있었다. 그들은 전쟁을 겪었어도 순진하고 때 묻지 않았다.

 

 

‘태수’네 고장 사람들에게서 아버지를 보았고 어머니를  보았고 할머니를  보았다. 이로써 대 만족이다. 나는 어머니의 손자국이 묻었을성싶은 밥상을 대할 수 있었고 아버지의 도끼날에 쪼개진 장작 군불을 지핀 것 같은 방에서 다리를 뻗고 긴 기지개를 켤 수 있었다.

상상의 날을 실현하고 있다. ‘서산읍’ 장터에서 ‘통천읍’의 장날도 보았다. 그러나 못내 아쉬운 나의 고향 나들이 흉내였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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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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