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호

외통궤적 2008. 8. 1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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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3.011218 참호

아침을 먹은 병사들이 작은 마당에 줄지어 섰다. 그들의 어깨에는 총 대신에 엉성한 지게가 매달려 있다. 군용멜빵과 적당히 자른 각재를 지게 다리로, 다리의 반 토막 길이의 지게 손을 교묘히 붙여서 만든 간이 지게다. 누구랄 것 없이 어깨가 벌어지고 우직해 보이는 ‘신참(新參)’들인데, 옷이 말하듯 이들의 산(山) 생활이 하루 이틀인 것 같지 않게 보인다. 이들은 곧 정문을 향해서 나무꾼행세로 흐트러져 내려가고 있다. 누가 그들에게 오와 열을 맞추어서 걷게 한다면 오히려 더 볼거리가 되지 않나 싶은데, 그들도 그렇게 흩어져 가는 것이 오히려 저들에게 걸맞은 걸음이라고 생각하는지 거리낌 없이 잡담이며 장난치며 내려가고 있다.

이런 무리를 선임자들이 본다면 지위에 따라서 그 행동이 달랐을 것이다. 그들의 행적을 아는 사람은 아무리 졸병이지만 그들을 피해서 우회할 것이고, 나처럼 실내에서 바라보는 자는 눈길을 딴 곳에 돌릴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저 상태로 정문을 통과하게 할 수 없을 테니까! 하물며 그들 한 발 뒤로는 칼날같이 주름잡은 군복을 입고, 파리가 앉다 미끄러질 만치 반질반질하게 닦은 군화를 신고, 저들 끼리끼리 신청해서 타냈을 약장(約章)을 빛(?)나게 가슴에 달고, 각종 구실을 붙여서 외출하려고 구령 맞추어 활개 치며 내려가는 제비 같은 일단의 병사를 한 눈으로 바라봄에 있어서는 보는 지휘관이나 상급자는 차라리 고개를 돌려 외면할 것이다.

지게꾼, 이미 그들은 군인의 신분을 포기하고 시간 보내기로 근무하는 자세가 역력하다. 광경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야릇하다.

‘장병 후생’ 명목으로 나무하는 군인을 고개 돌려 외면하는 지휘부, ‘장교 부식비’마련을 위하여 장기 외출증을 남발해서 그들 몫의 군량(軍糧)을 빼내는 좀 짓, 내가 이해 못 하는 많은 부분에서 가는 한숨으로 새어 나온다. 전후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전시다. 우리의 생명을 담보하려 정교히 구축되어 산재한 참호와 유개진지(有蓋陣地)의 아름드리 각재와 철골 재(材)는 단지 방어를 맡았던 유엔군ㆍ영국군의 것이고 지금은 우리의 방어계획의 틀에 포함되지 않았다 해서, 마구잡이로 없애버리는, 어딘가 못 미친 것 같은 생각들, 그 방어선 상에 쳐졌든 이중삼중의 철망과 철재(鐵材)를 모조리 걷어서 어디론가 함께 싣고 가는 도깨비들, 난 이해할 수 없다.

설혹 지금 당장은 그것들이 쓸모가 없다 하드래도 우리의 역(域)내에 있는 각종의 견고(堅固) 군사시설이니 오히려 보존의 의무가 있다고 생각되는 내 생각에 비추어 그들의 행동은 말 그대로 매국적(?) 행동인 것 같아서 차라리 내가 모르고 있을 것을, 이 작은 몸의 오감이 포착하는 슬픈 일들을 혼자 삭이기엔 너무나 억울하다. 그들의 끝없는 허기(?)를 달래려고 다른 병사들의 배를 조이게 하고 생명의 보존 수단을 스스로 헐어 없애는 뒤집힌 군의 단면을 난 똑똑히 보고 있다.

그러면서 반문한다. 만약 내가 그 줄에 끼어있다면 난 항변하고 거역했겠는가? 흙탕물 속에서 흙물을 뒤집어쓰지 않으려면 그 흙탕물을 나와야 함을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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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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