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곡리

외통궤적 2008. 8. 1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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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포천 일동’, 7×××부대는 신설부대 탓인지 무던히도 참아(?)가며 자주 옮겨 다닌다. 신접살림 셋방 옮기듯이 이 집 저 집을 빌려 쓰기도 하고 더러는 드나드는 날이 맞지 않아서 며칠씩 야영을 하며 지낸다. 사정을 모르는 우리는 훈련인줄만 알뿐이다.

 

맞다. 이런 것이 전장의 특수상황으로 전개될지도 모르니 마땅히 참고 밟아야 하리라. 뿐만 아니라 짐 싸고 옮기는 일이 모두 부대이동, 이름 하여 기동훈련일 테니 역경을 헤치는 수단을 체질화시키는 별다른 특수훈련이거니 생각하여서, 그런 대로 불만이 있을 수 없다.

 

훤히 트인 시야가 조금은 대처(大處)로 나온 듯 번화하다. 널따란 길 위엔 언제나 흰 먼지가 덮여서 먼 언덕에 자리한 우리부대까지 날아든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수신호 교통정리를 하는 헌병 조무래기가 늘 내 마음에 걸린다. 그들은 그 일이 신나서 하겠지만 내 눈에는 도무지 못마땅해 보인다. 달려들어서 손을 잡아끌어 내리고 싶은 충동을, 어느 부대든지 그 부대 앞을 지날 때마다 느낀다.

 

그들의 호흡기는 진폐(塵肺)로 곤죽이 되어 넘쳤을 성싶다. 그런 가운데서도 보람을 찾는 그들의 호기(豪氣)가 부럽기만 하다. 그런 우리 한국군부대를 지나고 미군부대 앞을 지나다 보면 살수(撒水)차가 연신 물을 뿌리거나 아예 기름을 들어부어 먼지 한 톨 없는 맑고 상쾌한 병영을 만들고 있으니 바라보는 내 눈썹에 하얗게 얹힌 먼지라도 여기서 털어 버리고 싶도록 얄밉고 역겹다. 같은 줄기의 도로를 쓰면서 얼룩지고 차별 진 토막길을 만드는 인접부대 한ㆍ미의 단절된 대화가 또한 나를 섭섭하게 하고 있다.

 

분명 우리는 도움을 받고 있지만 삶과 죽음을 같이하는 전장의 전우가 아닌가? 나하곤 아무런 상관이 없건만 그래도 섭섭한 것은 무명의 병사가 느끼는 순수한 감정이기에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전의를 잃게 하는 것은 아닌지? 나만의 느낌이길 바랄 뿐이다. 미루어,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한 양국 병사의 병영생활일 것이다. 오월동주(吳越同舟)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부질없는 생각인데, 이는 출장을 다녀오는 길목에서 느끼는 작은 앙금가루다.

 

 

나는 늘 별도의 행동으로 귀를 곤두세우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매달려있는 주판을 털어 버릴 수 없어서, 달고 살아야하고 지정된 시간에 받고 지정된 시간에 변동시키고 기록하여 내야하는 일이 신경 쓰여서, 아주 딴 자리를 마련하고서 잠자리를 그리로 옮기곤 한다.

 

해서 늘 지정된 자리에 가고 없어서 병영에서는 늘 열외였다. 그러니 부대 이동 때마다 챙겨야하는 물목이 남보다 많고 복잡함에도 군소리 없이 하고 있다. 이것이 훈련의 일환(一環)이라고 생각하여서 무릅쓰고 따라간다.

 

 

꼬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부대의 대 이동이 또 시작됐다. 우리는 ‘경기 연천 전곡’, 임진강이 굽어 흐르는 언덕을 끼고 있는 산, 나무라곤 모조리 무릎을 밑돌도록 잘라버려 사계(射界)청소를 깨끗이 해버린 민둥산위에 뿌려졌다.

 

이 지형(地形)이 남향인 것을 보면 ‘인민군’이 청소했을 것이다. 어딜 가나 흙과 씨름하고 사는 군인이기에 여기 ‘전곡리’의 야산에 깔린 우리는 오늘저녁부터 흙을 깔고 흙을 덮고 자야하는 대적(對敵)없는 전선에 포진되고 있다.

 

각자는 살 궁리를 해야 한다. 나뭇잎이 피었어도 아침저녁으론 온기가 그리운 이른 봄이다. 머지않아서 어둠이 깔릴 것이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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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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