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에 흩어진 우리가 우선할 일은 사주경계(四周警戒) 다음으로 잠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가진 것은 야전삽과 개인용 천막뿐이다. 이인 일조가 돼서 집짓기에 나서기는 했지만 몇 시간 정도 있을 곳이 아니고 장기 주둔할 개인 천막을 치려니 엄두가 나질 않기도 하려니와 어둡기 전에 완성해야 하니 마음 또한 급하기 그지없다.
언덕진 땅을 고르고 구둘 골을 파서 그 위에, 인근에 지천으로 깔리고 쓸모없어진 방어용 철망의 철주(鐵柱)를 뽑아다가 구들장 삼아 깔고, 흙을 덮어 온돌을 만드니 십상이다. 널브러진 삭정이를 뽑아다가 군불을 지피니 영락없는 우리네 고향 집이다.
모락모락 연기가, 뒤뜰 안에 날 부르고
흙냄새 물씬하여, 매질 방에 날 들이네.
코끝에 나무 풀 향기, 감꽃 꿰미 그립고
멋대로 깔린 천막, 이웃집에 찾아가네.
어른들의 소꿉장난이라도 이게 좋고, 전장(戰場)의 야영이라도 구들이 좋고, 총을 든 싸움이라도 향기가 좋다. 난 여기서 고향의 집을 보았고 부모의 사랑을 느꼈고 이웃 친구를 찾았다. 꿈을 꿀 수 있기에,
마냥 이런 생활을 하고 싶은, 강한 충동조차 느꼈다.
꿈은 깨지고, 냉엄한 현실이 아침 안개를 걷고 눈앞에 다가온다. 오늘의 할 일이 태산 같다. 짓고 헐고, 있다가 떠나고, 가다가 자고, 자다가 가는 반복의 생활에도 견딜 수 있는 굳건한 버팀목 구실이 바로 향수(鄕愁)였다. 꿈을 꾸며 현실을 사는, 꿈속의 여행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부대는 꿈의 천막생활을 오래 허용하지 않았다. 그나마 산과 바위와 나무를 익혀가며 더불어 살았는데, 산 중턱쯤 내려오다가 허전하여서 뒤돌아본다. 천막 걷어낸 뒷자리의 구들이 폭격으로 소실된 고향 집터같이 보인다. 내 허리를 녹이고 발을 녹인 집, 고향의 집을 옮겨온, 따스하든 내 집터의 남아있는 흙바닥을 보면서, 우리 부모 형제가 저렇게 터만 남기고 떠나는 쓰라림을 당하지 않았기를 빌며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다. 필경 고향 집은 전화(戰禍)로 불타고 식솔은 태백산맥 줄기의 한 자락에 굴을 파고 들어가 있을 것이다.
아려오는 가슴을 배낭끈으로 조여 삭인다.
그러면서 발걸음을 띠었다.
이번에는 어느 기설(旣設) 부대의 제대로 된 병사(兵舍)를 인계받아 들어갔다. 작은 골짝의 한 면을 줄줄이 이어 지은 병사(兵舍)의 대부분은 실하고 튼튼해 보였다. 비로써 우리 부대가 제대로 자리 잡은 것처럼 비친 것은, 긴 날을 몸뚱이 하나를 내 집으로 여기고 끌고 다닌, 어쩌면 나에겐 당연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나마도 많은 전방부대가 아직 참호(塹壕) 속에서 지내는 것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사치스럽다.
비록 장병들의 손끝으로 지은 집이지만 제대로 터를 닦아서 지었다. 공놀이도 할 수 있고 모여서 국기 게양도 할 수 있는 넓은 마당이 단위 대마다 있어서 좋기도 하려니와 내가 일할 수 있는 자리가 또렷하고 안정적이어서 더욱 좋다.
숨 쉴 사이 없이 볶아치고 닦달해야 하련만 싸움 없는 이즈음의 군인 생활은 지루하기만 하다. 이러는 가운데 해가 거듭되고, 나도 이제 솜털을 벗고 성년의 풍모를 갖출 만치 자랐다. 난 고난 중에도 자라고 있었다. 신비스럽고 넘치는 환희의 나날이다. 편을 갈라서 상품을 걸고 시합하는 일도 잦았다. 순환 배치의 전후방교대인지, 아무튼 한가한 일과가 계속되었다.
‘일보 변동’의 정보가 하달되면 하든 짓 아랑곳없이 중도에 손 놓고 ‘일보’가 작성되며, 이에 몰두하는 것이 내 일과다. 그래서 종일 종이 한 장에 수(數) 몇 자(字) 그려 넣고 놀고먹는다고 하여
‘놀보계’, ‘날보계’, ‘일보계’로 지탄받지만 아무도 맡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일의 무게가 무겁고 곧바로 ‘육군본부의 사령(司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두려워서 아무도 근접하지 않으려는 영역인데도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가 챈 것이니 어쩌면 여기까지 끌고 온 게 요행이다. 그러다가 어느 한 날, 육군이 발칵 뒤집히는 사단이 내게서 비롯됐다.
대대의 ‘당무자(當務者)’가 실수로 변동 사항을 빠뜨렸기에 전군에서 병사하나가 ‘증발(蒸發)?’해 없어진 것이다. 저녁 무렵에 비상전화가 울렸고 내가 차상급기관에 떠넘기지 않고, 육군본부로 홀로 해결하러 나섰다. 올곧게 살자!
그러나 따지자면 줄줄이 있는 선임자와 그 업무 선상에 있는 상급 기관의 관계자가 응당 해결하고 책임져야 하련만 이들은 한결 비겁하게 꽁무니를 빼고 있다. 그 실 두렵기 때문이다. 하급 부대의 한
‘졸개’가 무슨 잘못이 있기에 철옹(鐵甕)성 같은 육군본부에 간다는 말인가? 그렇지만 내가 쓴 일보(日報)에 병력(兵力) 변동에서 한 사람이 누락 되었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으려니와 늘 일에 대한 흐름을 알려는 도전성이 불붙어서, 군소리 없이 홀로 나섰다.
모두 우려의 눈빛으로 연민하고, 위축되지 않는 나에게 오히려 의아해하기까지 한다. 상급 부대로부터 하달되는 변동 사항이기에 책임의 거의 가 그들에게 있음에도 밀고 밀어서 단위부대 ‘날 보계(日報係)? ’까지 왔으니 날 보내는 그들의 심기는 가시방석 위에 앉아서 벌벌 떨고 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상큼하게 처리하고 돌아오는 나를 맞는 대대의 ‘병력계(係)’는 부러운 듯, 미안한 듯, 무안한 듯, 온갖 표정을 감추며 환영하고 우러렀다. 그들은 내가 지독히 혼날 줄 알았으나 희희낙락 당당한 것을 보고 의아했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육본에서 승복했다. 일선 졸병이 흙투성이 된 군복을 차려입고 아무도 넘보지 못하는 육군본부의 상황실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자기를 변호할 수 있을 만치 자랐다. 구르고 받치고, 깎고 다듬으며 자랐다.
이튿날 배구 시합이 신났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