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빵

외통궤적 2008. 8. 1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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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8.020106 국화빵

또다시 영일 없는 나날, 보이지 않는 올무가 몸을 조이고 있다. 갈수록 매 말라가는 의지의 샘을 의식하며 애타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상처 난 깃을 접어 웅크리고, 솔 딱지 가득한 면상을 차마 들지 못해 수그리면서도 시간만은 반드시 지켜가며 집을 나가고 들어와야 하는 내 마음은 온통 성 난 파도와 같다. 나 자신에 대한 들끓는 울분을 억제하지 못하겠다. 내가 왜 이럴까?  회의조차 몰아친다.

 

 

북풍이 기름종이집의 지붕을 온통 들썩이며 문짝을 후려친다. 겨울의 무서운 칼날이 얼굴을 할퀴고 있다. 우물가의 물길이 얼어서 거울같이 반짝이고 반들거린다.  제방아래 개울이 꽁꽁 얼어서 온갖 잡동사니의 전시장이 되어버린 지난 며칠간, 나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양지바를 골목을 서성이고 있다.

 

아침 해가 유난히 따스하다. 골목을 지나는 발자국소리가 카랑카랑하게  하늘높이 퍼지고 있다.  꽁꽁 닫힌 가게 덧문이 얼어붙은 듯이 열리지 않는데, 그 한쪽 끝의 구석진 공간이 트여 덧문이 열려있다.

 

거기 둥그런 연탄화덕위로 기다란 상체를 숙이고 열심히 양손을 움직이는 젊어 보이는 아저씨, 그는 이 시간에 내가 만날 수 있는 단 하나의 상대이다. 그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숱 많은 앞머리를 이마를 되도록 넓히려는 듯이 한껏 위로세우고 있다. 그의 얼굴은 핏기하나 없이 노랗다. 누르다 못해서 검고 어두운 그림자조차 드리우고 있다. 그는 아마도 처자식을 거느린 가장의 형편에서 지극히 어려운 생활을 하는 것 같은 인상을 내게 던져주고 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지나는 사람하나 없는 그 길 가 그 자리에 그의 일터를 마련하고 불철주야를 뭉개고 있는, 어쩌면 나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저 사람의 사정은 대체 어떤 사연이 있을까싶은 궁금증도 동하고 있다. 나는 천천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어설프게 얼굴을 가리는 시늉까지 하면서 ‘아이고 이거 국화빵을 구우시는 솜씨가 대단하십니다!’ 고 초대면 인사를 했다. 그는 힐끔 날 바라보더니 생색을 알아본 듯이, ‘예…’ 하고는 다시 자기 일에 몰두한다.  그는 아마도 내가 빵이라도 사줄 것으로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곧 자기의 위치로 되돌리고, 자기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처럼 냉담하고 있다.

 

그의 손이 재빨리 움직이면서 꼬챙이는 뻔질나게 국화빵 한가운데의 꽃씨 주머니를 드나들고 있다. 다가가서 화덕에 손을 녹이는척하면서 슬며시 그의 옆으로 붙어 섰다. 그리고 또 내 일방으로 내 뱉었다.

 

‘나는 이 동네 저기 사는데, 형 씨네 집은 여기요?’ 놀리기 싫은 그의 입을 자꾸 움직여 보려는 내 심보는 그렇게 해서 내가 소일할 자리를 뚫어보고 싶은 심산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신변을 철갑으로 두르고 굳게 자물쇠를 잠그고 있는지, 입을 열지 않는다. 그는 아무도 사러오지 않는 이 장사를 내게 들켜버린 것처럼 당황하는 눈빛을 보이면서 초조하다.

 

이번에는 내가 조금 사주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에 주머니에 얼마간의 돈이 있으면 이 숨막히는 장면을 절묘하게 넘길 수 있을 텐데! 결국 나는 ‘많이 파’시라는 헛소리 인사만 하고 되돌아섰다. 화투를 팔아서 몇 배의 이문을 남겼을 때 조금 떼어놓았더라면 이런 때 요긴(?)히 쓸 것을 그랬나싶은, 아쉬움도 새롭다. 막급한 후회다.

사람이란 접촉할수록 교감되는 것인지, 저녁을 먹은 후에도 또다시 발길이 그리로 끌린다. 그도 이번에는 반기는 눈치다. 허기는 자기하고 이야기 나눌 사람이 하루 종일 기다려도 있기나 하겠나싶고, 그 실상이 그런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내 소개를 하고는 그가 이렇게 된 사연을 까놓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는 의외로 그 금 쪽(?)같은 국화 빵 두개를 봉지에서 빼내 주면서 입을 열고 있다.

 

그는 경찰관생활을 하다가 그만, 사건에 연루되어서 옷을 벗게 되었고 이후 식솔의 생계를 꾸릴 방도가 없어 이런 궁색한 일을 하면서, 풀칠이라도 해 볼 요량으로 시작했지만 그냥 허송할 뿐이라고 설명하며 목을 메이고 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사람이 여기 있나싶어서, 가슴이 짜릿하다.

 

 

‘영덕 대게요…, 방게요….’ 길고 느리게 굵고 투박하게 들려온다. 깨질 것 같이 언 청명한 겨울밤, 하늘에 긴 여운을 날리며 골목골목을 기듯이 흐르는 삶의 울부짖음이 울려 퍼진다. ‘찹쌀떡. …찹쌀떡…’영덕대계에 화답하는 고사리 손의 목소리, 꼬마의 목소리가 엄마를 부르는 절규(絶叫)로 들려오며 또 내 가슴을 저민다.모두가 전쟁의 산물이다. 나는 별을 세고 있다. 내 동생들을 그린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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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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