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옹색하게 생활하는 줄 몰랐는데, 몸이 나으면 우리 고장에 와서 선생질이나 해! 우리 고장은 들어올 선생이 없어서 늘 자리가 비어있대!’ 맞는 말인지 틀리는 말인지 모르기는 하지만 일단은 가 볼 만한 일인가 하여서 궁리해 보겠다며 큰길가의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주는 내 손을 다시 꼭 잡는다.
‘신성범’은 어제 제대를 앞둔 마지막 휴가의 귀대 길에 날 보고 싶어서 미로를 더듬어서 여기까지 찾아왔다면서 무척 반가워했다. 날 보려고 찾아온 그에게 내가 보여준 모습이 너무나 처참했든지, 그는 발길을 떼지 못하고 얼굴을 붉힌다.
‘신형 난 홀몸이라서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아직 내가 가 볼 곳은 얼마든지 있고 그 중 어딘가에 날 필요로 하는 데가 있을 것이야! 걱정하지 마라!’
그는 한 달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다시 면사무소에 다닌다며 한 달 후엔 꼭 자기와 만나서 학교에서 일하도록 해 보자는 것이다.
마치 공비의 출몰이 잦아서 양민이 학살된 그 현장에,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무서운 곳에, 날 집어넣음으로써 면 직원으로서의 할 일을 하고자 하는 열성으로까지 비치는 대목에서야 내가 ‘신성범’을 외면하고 고집부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 보자고 반승낙하고 말았다. 난 여길 떠난다면 이번에는 서울로 가서 무엇이든지 해 보고 여의찮으면 우리 고향 가까운 강원도 속초나 양양 쪽으로 가려고 한다는 속내까지 보이며 깊은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신성범’은 날 믿고 있었다. 그는 자기 고장에 날 데리고 휴가까지 한번 다녀온 터다.
어제저녁에 느닷없이 들른 그는 날 적이 당황하게 했다. 그러나 이 어려운 처지에도 날 찾는 동료가 있음을 반기는 노부부, 그 이유가 바로 날 믿는 동료의 신뢰성인 것이다. 이 진정한 우정이 단칸방의 노부부에게 하룻밤의 희생을 무릅쓰고 결심케 했는지도 모른다.
난 우리 집이라는 개념을 떨친 일이 없다. 그것은 내가 자청해서 화투를 만들어서 보탬이 되는 짓을 했기도 하려니와 진정 내가 이 집에 머물면서 무슨 보탬으로 이 노부부에게 신임이 될까를 걱정하는 빛을 두 분은 보아왔기 때문이다.
‘신성범’은 극구 사양이지만 이 집의 노부부는 나를 보아서 문전박대를 할 수 없게끔 벌써 인정이 쌓였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잡고 말았다. 그래서 좁은 단칸방에 넷이, 밤 세 게 되었다.
이슥한 겨울밤에 울려오는 생존 절규의 소리, ‘영덕 대게’까지 사서 우리를 축하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그랬거니와 동료 ‘신성범’은 퍽 당황하는 기색이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으니 그냥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지만, 내가 처한 현실이 이러니 어떻게 다른 방도를 찾을 수 없어서 그냥 주저앉고 마는 것이다.
기대와 긍지로 가득 찼던 군 동료들에게 보여선 안 될 치부(恥部)를 보이는 것 같아서, 역시 쥐구멍을 찾을 지경이다. 전우들의 깊은 상처가 없길 바라면서 여러 가지로 변명한다. 하지만 모두가 귀납적 실상임을 어찌하랴!
난 또 예의 자기변명과 자기 위안에 빠져든다. 한때 일이고 지속적일 수 없는, 가변(可變)의 미래가 넓게 펼쳐지고 있노라고! 내가 있는 이 시공은 일순도 머물지 않는다고!
매서운 바람이 볼을 때리고 지나갔다. 대구역행 시내버스 창가에 부연 입김이 서리고, '신성범'은 그 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난 좋은 징후로 해석했다. 그는 만사 OK를 암시했는지도 모른다.
원만한 전우 '신성범', 뒷날 봅시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