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의 방문

외통궤적 2008. 8. 1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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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9.020107 전우의 방문

'이렇게 옹색하게 생활하는 줄 몰랐는데, 몸이 나으면 우리고장에 와서 선생질이나 해! 우리고장은 들어 올 선생이 없어서 늘 자리가 비어있대!’맞는 말인지 틀리는 말인지 모르지만 일단은 가 볼만한 일인가 하여서 궁리해 보겠다며 큰길가의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주는 내 손을 다시 꼭 잡는다.

 

‘신성범’은 어제 제대를 앞둔 마지막 휴가의 귀대 길에 나를 보고 싶어서 미로를 더듬어서 여기까지 찾아 왔다면서 무척 반가워했다. 나를 보려고 찾아온 그에게 내가 보여준 모습이 너무나 처참했던지, 그는 발길을 떼지 못하고 얼굴을 붉힌다.

 

‘신형 나는 홀몸이라서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아직 내가 가 볼 곳은 얼마든지 있고 그 중 어딘가에 나를 필요로 하는 데가 있을 것이야! 걱정 말아!’ 그는 한 달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다시 면사무소에 다닌다며 한 달 후엔 꼭 자기와 만나서 학교에서 일하도록 해 보자는 것이다.

 

마치 공비의 출몰이 잦아서 양민이 학살된 그 현장에,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무서운 곳에, 나를 집어넣음으로써 면 직원으로서의 할 일을 하고자하는 열성으로까지 비치는 대목에서야, 내가 ‘신성범’을 외면하고 고집부릴 일 만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해보자고 반승낙하고 말았다.나는 여기를 떠난다면 이번에는 서울로 가서 무엇이든지 해보고 여의치 않으면 우리 고향 가까운 강원도 속초나 양양 쪽으로 가려고 한다는 속내까지 보이며 깊은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신 범성’은 나를 믿고 있었다. 그는 자기 고장에 나를 데리고 휴가까지 한 번 다녀온 터다. 어제저녁에 느닷없이 들른 그는 나를 적이 당황하게 했다. 그러나 이 어려운 처지에도 나를 찾는 동료가 있음을 반기는 노부부, 그 이유가 바로 나를 믿는 동료의 신뢰성인 것이다.

 

이 진정한 우정이 단칸방의 노부부에게 하룻밤의 희생을 무릅쓰기로 결심케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집이라는 개념을 떨친 일이 없다. 그것은 내가 자청해서 화투를 만들어서 보탬이 되는 짓을 했기도 하려니와 진정 내가 이 집에 머물면서 무슨 보탬으로 이 노부부의 위안을 줄까 걱정하는 빛을 부부는 보아왔기 때문이다.

 

‘신성범’은 극구 사양했지만 이 집의 노부부는 나를 보아서 문전박대를 할 수 없게끔 벌써 인정이 쌓였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잡고 말았다. 그래서 좁은 단칸방에 넷이서 하룻밤을 새게 되었다.

이슥한 겨울밤에 울려오는 생존절규의 소리, ‘영덕 대게’까지 사서 우리를 축하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그랬거니와 동료 ‘신 범성’은 퍽 당황하는 기색이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입장이니 그냥 이렇게 있을 밖에 없었다. 부끄럽고 미안하지만, 내가 처한 현실이 이러니 어떻게 다른 방도를 찾을 수 없어서 그냥 주저앉고 마는 것이다.

 

기대와 긍지로 가득 찼던 동료들에게 보여서는 안 될 치부(恥部)를 보이는 것 같아서, 역시 쥐구멍을 찾을 지경이다. 전우들의 깊은 상처가 없길 바라면서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지만 모두가 귀납적 실상인 것을 어찌하랴!  나는 또 예의 자기변명과 자기위안에 빠져든다. 한 때의 일이고 지속적일 수 없는, 가변(可變)의 미래가 넓게 펼쳐지고 있노라고!  내가 있는 이 시공은 일순도 머물지 않는다고!

 

매서운 바람이 볼을 때리고 지나갔다. 대구역행 시내버스 창가에 부연 입김이 서리고, '신성범'은 그 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나는 좋은 징후로 해석했다. 그는 만사 OK를 암시했는지도 모른다.  원만한 전우 '신성범', 내 이 얼굴 상처가 아무는 뒷날 봅시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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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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