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1

외통궤적 2008. 8. 1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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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악산’의 동쪽은 높다.  어지럽도록 높은 산, 마루턱을 넘어 귀신의 집(신원:神院)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내 발걸음이 끌리도록 무겁다. 그리고 더디다. 아무리 봄바람을 들이키고 먼 곳을 훑어도 아직 피어오르지 않는 계절의 아지랑이다.

 

나는 아지랑이가 피는 희망의 언덕을 넘고 싶다. 갈 길을 선명하게 인도받고 싶다. 그러나 잡힐 것 같은 아지랑이는 얼른거리고 있을 뿐, 어림없는 허상으로 되고, 번번이 발길만 시궁창에 헛디딘다.

 

잡히질 않는다. 막다른 벽도 보이지 않지만 시원한 길도 뚫리지 않는 아지랑이 같은 앞날, 그 앞날을 보장하기 위해서 떠나올 때 건너 받은 명함의 이름 석 자가 이렇게 나를 고독하게 한다. 그러면서 아지랑이 같은 내 머리 속에 회오리가 일고 있다. 나는 소나무 그루터기를 등받이로 걸터앉아서 나를 훑어본다.

나는 지금 혼자서 어딘가를 가고 있다. 뒤에서 바라보는 사람도,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길을 홀로 걸어가고 있다.  제대수첩 사이에 꼭 끼워 두었든 명함을 꺼내들고 다시 한 번 보며 괜스레 한숨짓는다. 형인 ‘홍형표’가 동생인 ‘홍기표’에게 보내는 명함 뒤에 적은 짤막한 글이 강풍을 일으키며 나를 사막 위에 내동댕이친다.

 

이미 나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사막 속에 와있는 착각마저 일으키게 한다. ‘관생(冠省), 수고하네. 나도 잘 있네. 여기 서북(西北)출신을 소개하니 힘껏 돕게. 그럼.’ 이것이 형이 동생에게 보내는 명함뒷면의 짧은 서신이다.

 

나는 이 서신의 내용보다 앞면의 이름의 항렬(行列)을 보고 열병을 앓고 있다. 형제의 정을 간접 확인하며 하염없이 북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불현듯 내 어린 동생이 그리워진다.  다급할 때 의논하고 즐거울 때 같이 기뻐하고 슬플 때 함께 눈물 흘리는 형제애가 지구의 무게만큼 무겁고 값지게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 땅에 혈육이 없는 나를 의식하는 순간, 나는 먼지처럼 가벼워지며 바람에 날려 사막 한가운데 떨어진다.  망연자실하고 있다. 그들 형제의 삶이 비록 구차하고 옹색하지만 하늘을 안을 만큼 마음을 넓히고 땅을 쓰다듬을 만큼 어질게 살아가는 삶의 흔적이 여기 내 손바닥 위에 놓인 명함에 그려져서 내 눈을 부시게 하고 있다.

 

형의 나이가 중년을 넘은 듯 느리고 어눌한 행동이지만 자상했든 기억, ‘신성범’의 소개로 한번 만났던 형은 무척 푸근해 보였다. ‘세상을 사노라면 뇌꼴스러운 사람도 보게 되고 구역질나는 사람도 만나게 되지만 일일이 신경 쓰지 말 고 사’시라는 그의 당부가 새겨지고 있다.

 

슬하(膝下)를 떠난 형제가 각기 따로 자립하여 살면서 주고받는 정표가 유달라서 발길을 멈추게 한다면 앞으로 이 땅의 많은 정상적 가정과 접하며 살게 될 때 나는 어떻게 버텨 나갈 것인가?  자괴감마저 인다.

 ‘늘 나와 함께 계시는 할머니’의 손길에 떠밀려서 다시 일어나 터벅터벅 내려간다. 나무숲이 등 뒤로 사라지더니 논바닥넓이보다 둑이 더 넓은 다락논의 논둑길에 접어든다.  풀길이 없어지면서 흙을 밟는다. 발길에 밟혀서 반들거리는 박힌 돌에 채이면서도 ‘굴러드는 돌’이 어지쯤 박혀볼까 하여, 그 자리를 찾아서 열심히 걸어가고 있다.동네로 접어들면서, ‘굴러온 돌’ 이 ‘박힌 돌’과 어떻게 어울려야 할 것인지 골똘하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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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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