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1

외통궤적 2008. 8. 18.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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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흰나비 노랑나비가 논두렁을 넘나들더니 어느새 언덕 밑 숲속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쌍으로 날아와 남색 제비꽃 위에 떨어질 듯 말듯 펄럭이면서, 앉는가 싶더니 다시 숲속으로 사라진다. 나비가 지나간 자리, 물골을 열고 흐르는 물소리와 송곳처럼 뾰족하고 짧은 물새 울음이 아울러져 적막 속의 봄을 일구고 있다. 위 논배미 물이 순리에 어김없이, 못자리 아래 배미로 내리꽂히며 가늘게 빠져나온 쑥 순은 흔들어 방아 찧는다. 쑥 순은 나비와 새가 함께 일구는 봄을 장단 맞추어 줍고 있다.

일가 젊은이는 갈아엎은 흙덩이가 아직 물 위에 절반이나 올라와 있는 논배미에 발 벗고 들어서서, 소를 몰고 써레질한다. 내가 도울 일은 없다며 한사코 만류하는 그의 저의는 내가 농촌에 머무를 사람이 아님을 직감한 듯 여러 가지 일들을 물어오고 있다. 내 형제가 몇이며 농사는 어떻게 지으며 거기 마을의 풍경은 어떠냐며 거침없이 물어온다.

그의 마음속엔 닫혀있는 자기 세상의 울을 넘어서, 결코 풍운아일 수 없는 유랑자의 몰골을 한 나를 통하여서라도 바깥세상을 엿보고 넓히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지상의 모든 생물은 봄을 캐어 줍고 있다.

이름 모를 물새가 파도 타듯 도랑물 위를 나르면서 봄을 낚아채고 있다.

나는 나를 필요 한 곳 여부를 타진하기 위해서 ‘신원면’의 ‘신성범’ 친구와 작별하고 ‘감악산’을 넘어온 어제의 다짐을 되새긴다. 난 여기에서 땅파기를 할 수는 없다. 땅을 파는 일이야 앞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테고,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전국을 헤매더라도 맞는 일을 하고 싶다. 되도록! 한데, 한데 여기서 내 발목이 잡힌다.

여기까지 온 것은 ‘홍’ 형제의 소개와 촉매로 이곳 ‘이천서가’ 일가의 관심까지 이끌어서 비롯됐다. ‘앞으로 있을 민의원의원에 출마하려는 일가의 일을 도와서 잘 되면 그로 하여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난 망설였고, 그 기간이 얼마인가를 타진했다.

앞으로 일 년 후에 있을 것이고 그동안은 출마예정자가 운영하는 양조장의 일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그 절충을 여기 집안사람 ‘서무웅’씨가 맡기로 하고 그 회신을 기다리면서 이 집에서 묵고 있다. 난 앞으로 며칠이 걸릴지 모르긴 하지만 소식 여부에 따라서는 또다시 서울로 향해야 한다.

내가 이렇게, 하얀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려다 지우고, 선을 치려다 지우고, 더러는 글을 쓰려다가 지우는 심사는 나 스스로 어찌할 수 없다. 손에 잡힐만한 칠이 없어서,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칠하고 흙을 묻혀 그리려니 제대로 윤곽을 그릴 수 없다. 손에 잡히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할 것이 아닌가 하여 괴롭다. 그루터기조차 없기 때문이다. 강력한 의지와 체력적 바침이라도 있으면 이렇게 옹색한 세월을 보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또 한 번 무력한 나의 사고무친(四顧無親)을 절감한다. 그러기에 난 모든 걸 감내해야 하는, 차고 무거운 돌처럼 미련하여 이지적 행동조차 외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다려 보자! 그리고 참자!

골짜기가 울린다. 내려다보이는 깊은 골짜기 저쪽 아랫마을에서 봄의 기운을 만끽한 황소가 골짝을 울리며 봄을 퍼뜨리고 있다.

내 앞에도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나도 봄을 캐어 아지랑이를 잡아보자!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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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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