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입는 것이 우선인지 쌀가게와 옷 가게가 한 집 건너마다 있어서 보는 이의 피로를 덜어주리만치, 조화롭게 얼룩무늬를 띄고 있다.
여느 날처럼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한길 바닥에 물을 뿌리려는 가게주인들의 몸이 활기에 넘쳐있고 오늘 팔 물건을 진열하며 매만지는 손놀림 또한 재다.
모두가 간밤의 꿈을 오늘 하루에 이룩하려는 듯하다.
나 또한 그들의 생업 대열에 끼여서 작은 꿈을 가꾸려 길가에 물을 뿌리며 오늘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내 꿈 중에는 그동안 생긴 돈으로 모처럼 구두를 맞추러 갈, 하찮은 꿈도 섞여 있다. 빛바랜 흰색 운동화의 얼룩이 아무리 빨아도 지워지지 않고 진해져만 가는데도, 이렇게 해지도록 여러 켤레 채 고집스레 신어 왔으니, 이번에도 덤덤하다. 하긴 매번 마찬가지로 마지막까지 하얀 색채로 있는 신을 신어본 적이 없다. 첫물일 때 말고는 늘 충충하여 마음이 상쾌하지 않다.
내가 아무리 치장해도 남들은 나를 깊이 알지 못하고는 가까워질 수 없고 나 또한 나의 주위를 잘 알면서도 그 명목을 남이 나를 보는 시각을 배려하여 존중하려 하고, 더욱이 내가 몸 붙이고 있는 곳의 격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품위는 갖춰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이즈음 걸맞지 않게도 나의 짝 구하기에 애쓰는 이들의 입장도 조금은 생각해야겠기에, 내 마음은 몸치장을 허락하고 몸은 이에 따라 움직인다.
그 실, 내실(內實)이 차 있다면 그까짓 옷이나 신이나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으련만, 내가 허(虛)하여 자신이 없어서, 물욕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여서 한편으로는 언짢다.
하지만 여기서 사귄 토박이 친구들과 어울림이 잦으면서 그들의 체면을 외면할 수가 없는 것도 한 구실로 늘려서, 명분을 다지고 있다. 해서 오늘은 마음을 야물게 먹고 거리에 나선다.
구색 맞히기로 심은 가로수가 이빨 빠진 잇몸처럼 흉하다. 그래도 거리의 명색을 유지하려는 듯, 저자로 내려가는 좁은 길에는 예외 없이 빽빽이 버티고 서있어서 오히려 행인의 발길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곳곳의 네거리마다는 가로수가 빠짐없이 제자리에 서서 잘 자라고 있다.
눈에 뜨인 네거리의 단층 검은 기와지붕 위에 가로수가 그늘을 지워 짙게 물들여 가게 안의 검은 구두 색과 어울리고, 지붕의 기와 물결과 가게 안의 구두 진열이 잘 아우르고, 낮은 진열장의 돌출이 생생한 가로수와 함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집과 가게는 검은 일색의 작은 네모 상자를 연상케 한다. 귀퉁이 집, 가로수, 진열장, 검은 물결, 안팎의 조화가 문자를 생략한 커다란 광고물을 방불키에 충분하다.
산다는 것은 변하는 것인가? 한때 내 눈에 비친 해방 후의 변혁기를 생각한다. 해방과 함께 갑자기 밀어닥치는 변화, 남자들은 머리를 기르지 않은 이가 없고 손질할 형편이야 되건 말건 마리에 기름을 바르지 않는 이가 없던, 대유행이었다.
그런데 휴전상태인 지금의 거리엔 양복점과 구둣방과 양장점이 네거리의 가각(街角)을 꼭꼭 메워 박혀있다.
나조차도 양복을 맞추고 구두를 맞추려는 행각이 바로 반증으로, 역으로 말하고 있다.
먹는 것 못지않게 눈을 높이고 보니 이즈음에는 나를 치장하고 사는 방법 중에 이런 것도 있는 것이 새겨지며 보는 눈, 듣는 귀, 먹는 입, 생각하는 마음, 할 것 없이 끊임없는 변화를 이루는 것이 사는 것인가 싶어서 내 마음 산란해진다.
그러면서 지난 시절 고모님이 지어주신 양복바지와 아버지가 집에 사람을 들여서 맞추어 주신 목이 긴 학생용 구두가 생각나더니 불현듯 여기까지 오게 되면서 내가 신었던 갖가지 신발이 스친다.
결코, 평탄치 않았던 내 과거에서 내 발을 감쌌던 신발이 한 줄로 꿰어지더니 다시 유형별로 갈리어서 차례로 떠오른다. 수용소에서 남들이 볼이 좁아 신을 수 없는 군화를 난 발에 맞게 신었고 한국군에서 제대할 때 황갈색의 짝 짝이 단화를 지금도 신원면의 ‘신성범’ 친구 집에 보관하고 있는 터다.
볼 좁고 긴 구두형이 우리 시장에는 드물어서 만들기도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기우는 태생으로 얻은 쓸데없는 걱정이련만 털어 버릴 수 없는 잔챙이 세포를 잔뜩 담고 있나 싶어서 또한 쓴웃음이 절로 난다.
이제 난 구두를 맞추었다. 며칠 후면 단 섶 양복에 끈 구멍이 주르륵 달린 새까만 구두를 신고 나도 끌끌한 친구들과 어울려서 적으나마 겉으로 보기에는 손색이 없을 것이란 생각으로 흐뭇하다.
그날 저녁에, 물 건너의 박 씨네 아들 박 기사가 날 찾아와서 “의원께서 ‘맞으면 신도록’ 했으니 맞나 신어보아라.”는데, 신으나 마나 볼은 넓어서 남고 길이는 짧아서 발가락이 마칠 것이 보지 않고도 알겠기 ‘제 감사를 전해주시오’ 했다.
이 구두에 대해서 얼마나 다짐을 받고 보내왔든지 그 친구 말이 또 ‘맞나 안 맞나 신어 보’라기에 내가 다시 똑바로 말하였다. ‘맞습니다. 맞을 겁니다! 작으면 골을 치면 될 것이고 크면 신창을 깔면 될’ 것이니 딱 맞는다고 전해달라는 똑 부러진 대답을 그에게 주었다.
그가 말하기 전에 이미 의원의 마음을 읽고, 받아들였다. 바쁜 와중에도 나를 생각했고, 거기에 내 신발을 익히 보아 두었을 의원의 나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생각하여서 기꺼이, 어떤 토도 조건도 없이 받아 안음으로써 마음을 채워드리고 싶었다. 그 신은 당선되기 직전 대도시에서 맞춘 최신유행의 끈 없는 검은 구두였다.
남달리 구두에 관한 사연이 많은 내게 또 하나의 사연이 더해지는 것이 어쩌면 넓지 않은 내 활동과 사고의 범위를 웅변하는 것 같아서 난 다른 이 못지않게 기쁘다.
우선 의원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하고 보람을 느낄 일이다. 모두 목 빠지게 기다리는 의원의 반응을 내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얇고 긴 발, 결코 보통의 발이 아닌 내 발에 구두를 맞추듯 내 몸에도 맞는 옷을 입히고 또 내 마음에 맞는 일자리가 마련된다면 난 이 거리에서 꾸는 가게주인들의 많은 꿈 중에서 보람찬 꿈을 최초로 실현한 젊은이가 될 것이라는 엄청난 착각에 빠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은 발을 보호하는 장구이면서도 발의 생리와는 상반되는 모양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발바닥에서 얻어지는 땅의 기운, 자극을 받음으로써 원활(圓滑)한 우리 몸 구조를 저버리고 모양에만 치우치는 것이어서 발병과 더불어서 몸의 대사를 차단하는 역리(逆理)조차 하는지도 모른다.
쇳조각, 유리 조각, 각종 오물이 인류사와 더불어 나타나면서 우리의 발(足)병과 몸의 질병은 정비례로 더해졌으리라는 확신에 차 있다. 우리 자연훼손의 업보이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내는 것이다.
발이 자극받아야 건강하게 살아가게 되어있는데도 우리는 발을 그대로 땅을 디딜 수 없는 만들고 살아가고 있으니, 그 증거가 바로 내 발이다. 난 양쪽 발 안쪽 바닥에 같은 위치에 같은 크기의 찰과상(擦過傷)을 입고 있다. 내가 그러니 다른 이는 오죽 하랴 싶다. 신을 신지 않고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우리의 주위 환경이니 어찌하랴!
우리의 신발이 우리 몸을 쥐어짜는 형국을 이미 옛날 중국 여자의 전족(纏足)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성장과 건강에 어떤 형태든지 위해가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어릴 때 당한 일이라 지금은 잊을 만도 한데 새록새록 생각나는 것, 이것은 발 벗고 활보하던 그때 발에 닿는 땅바닥의 촉감을 잊을 수 없어서일 게다.
신을 지음에 있어서 신 꼴이 사람의 발과 마찬가지로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달라야 할 텐데, 즉 사람의 발본을 사람마다 떠서 그것을 꼴로 하여 지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음은 이미 있는 꼴에 맞는 발인 사람은 별 탈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많은 사람의 발은 어느 면에선 전족(纏足)처럼 역효과의 신발 구실을 하겠기에, 이점이 또 내 신경을 쓰게 하는 대목이다.
신에다 골을 넣고 쐐기를 박아 늘이거나 신창을 깔아서 발에 맞춘다는 것, 왠지 억지 같아서 얻어 입은 옷인 것을 면할 길이 없으리라.
언젠가는 내 발에 딱 들어맞는 신발을 맞추어 신을 수 있을지 까마득하다. 내 발로 걸어가 맞춘 신이나 의원이 내려보낸 고급 신이나 함께 네겐 딱 들어맞는 신일 수 없을 바에야 아무려면 어떻겠는가 싶어서 위안이 된다.
몸과 옷, 발과 신, 머리와 모자, 다 같이 제 것이어야 할 테고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평생을 찾고 가꾸어도 현실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은 별수 없이 제 몸만의 나상(裸像)으로 살아가던 시대의 사람보다 불행할 것이란 생각에 이르러 허전하다.
그러나 난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이물(異物)감을 극복하며 살 수밖에 없다. 마음만은 틀에서, 골에서 벗어나리라./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