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같은 하얀 흙벽이 두 폭으로 나뉘어 각기 그 가운데 두 문설주와 문지방이 높이 올라 있다. 그 위에 창호지 붙인 작은 여닫이문이 걸쳐 올라탄 듯, 아귀 틀려 박혀있다. 문풍지 발린 두 문짝과 부엌문이 자르르 흐르는 이엉하고 썩 잘 어울려서 산촌의 오두막집 그림 같다. 팔뚝만 한 통나무 기둥과 문설주와 문지방 그리고 대문이 새까맣게 그을려서 흰 벽과 대조되어 뚜렷한 윤곽으로 지극히 단순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두 문짝의 빗 엮은 대쪽 문살이 다이아몬드형의 수많은 구멍을 낸 그물을 방문에 덧붙인 듯하다.
김 순경이 ‘처제 나, 왔어. 문 좀 열어봐!’ 소리 내어 외쳤다. 기척도 없다. 이번에는 좀 더 큰소리로 ‘문 좀 열어 봐!’ 여전하다.
김 순경은 새까맣게 글은 두 짝 부엌문의 벌어진 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빗장을 조금씩 움직여 열고 있다. 김 순경은 무엇인가 예감한 듯 자신 있게 행동하고 있다.
놀랍다. 그의 선도(先導)에 따를 수밖에 없다. 약속된 시간이다. 선을 보자는 김 순경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체하고 따라나섰으니 돌이킬 수도, 방 안에 있을 누군가의 앞에서 소리 지를 수도 없이 입 다물고 그냥 하자는 대로 움직이지만, 억지 같아서 껄끄럽다. 이렇게 보는 선도 있는가 싶고, 처음 당하는 일이고, 내 고향 정서와는 완연히 다른 방식에 놀란다.
김 순경은 이 집 자매의 맏사위로 홀로 계신 장모를 돕고자 팔을 걷어붙이고 신랑감을 구하는 참이다. 해서 모종의 특사(?)로 위임받아 행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짙게 풍기며 날 회유하려고 온갖 방법을 썼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난 더욱 외면할 수가 없다.
부엌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문을 젖히고 들어가는 김 순경을 따라 들어가는 내가 서글퍼진다. 이렇게 해야 하나? 이미 각오라도 한 듯, 방안은 말끔하게 치워져 있고 모든 집기를 윗방에 옮겨 놓았는지, 구질구질 할 것 같았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말끔하고 깨끗하다.
사방의 벽이 분통같이 희고 상쾌하다. 방 한가운데 흰 이불 덩치가 덩그렇게 솟아 있음을 보고 처녀의 철옹성(?) 요새(要塞)임을 알 수 있다.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게 이불을 돌돌 감아서 쓰고는, 달팽이처럼 옹크려 막무가내로 요지부동 버티고 있다.
김 순경이 손으로 이불을 잡아 제치려고 하지만 달팽이는 점점 이불을 감싸서 속으로 움츠린다. 내가 김 순경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지못한 김 순경은 난처한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다. 다시 그의 소매를 끌었다. 죄지은 마음 가득히, 역순(逆順)으로 밖에 나왔다. 뒤돌아보지 않는 것만이 처자(處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고 하늘만 올려보고 있다.
내가 오히려 경솔했을까? 좀 더 시간을 갖고 대화를 시도해 볼 걸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무례를 더하는 것 같아서 마음을 돌렸다.
‘난리 통’에도 곁눈질 없이 어머니를 도와 일하면서도 티끌 하나 묻히지 않고 고이 간직했을 그 처자, 때 묻은 이 세상 남자의 그림자도 보기 싫은 새뜻한 마음, 아무리 좋아도 들어낼 수 없는 마음을 이불로 감싸서 표현하는 눈송이같이 하얀 짓, 이 모든 걸로 이미 그의 심성은 드러났다.
어머니와 함께 오늘을 준비하여 성심을 다했을 정성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아침까지 치우고 닦고 매만졌을 집안 구석, 구석이 처자의 고운 손을, 그 마음을 그렇게 그리고 있다.
김 순경은 외톨인 나를, 아니 무남 자매의 자기 처가를 알뜰히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적극적 중매쟁이로 나선 이유는 또 달리, 그의 외로움을 나로 하여 보상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평안도에서 해방 후에 넘어온 사람인 것 같았다.
김 순경은 어느 날 내게 접근하더니 자기의 처제 이야기를 하면서 운을 떼었다. 그런 그가 나를 누가 채갈세라 급하게 주선했으니 그렇겠지만 매끄럽지는 못했다. 모름지기 그의 처를 보여 주었더라면 더 쉽게 내 마음을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난 앞으로 어떤 바람이 불어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유랑자를 자처하고 있는 마당에 모녀의 부양책임을 몽땅 지고 눌러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도저히 마음을 정할 수가 없다. 나와 함께 의기투합하여 팔 걷어붙이고 바지 걷어 올리고 나설 사람이 내게는 필요하다. 그건 자신 없는 비겁한 생각임을 반성해 보지만 결코 무리 없는 발상임을 여러 사람을 통해서 듣고 있다.
따로 설 수 있는 한 방법이기도 한 것이기에 부끄럼 없다. 난 김 순경에게 가부를 전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너무나 순박한 그 처자의 말 없는 행동이 날 더는 제자리에 머물지 못하게 흔들고 있다. 처자는 내 마음을 흔들어, 정체한 이성(異性)의 기름통에 불꽃을 던졌다. 그리하여 난 눈뜨기 시작했다.
귀가 열려서, 횡행하든 내 얘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건이 성숙 된 것도 아님에도 주위에서는 내 귀가 근질이도록 혼담을 쏘아대고 있었지만 내겐 흘러가는 바람이었다. 그런데 그 처자의 일로 인해서 눈 귀가 뜨이고 열렸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찾지 못하고 있음은 내 주변의 미성숙 여건 탓도 있겠지만, 내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로 더욱 그렇다고 여긴다.
모두 서울로 떠나간 이즈음엔 단지 술도가에 관여하는 일에만 매달리니 조금은 시간이 남는 터라,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주어진다.
두붓집 딸 얘기도 누군가가 슬쩍 귀띔해 준다. 그들 가족은 조석으로 날 지켜보고 마침내 다리를 놓고 있다. 나 또한 당사자와 그 부모를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에 없으니 메아리 칠 리가 없다. 그쪽 일방으로 ‘야호’다.
또 음식점영업을 하는 집의 딸도 들먹이는 것 같다. 나의 취약한 조건이 상응하는 조건의 절름발이 가정의 규수들이 물망에 오르는데, 나름의 균형을 이룬다고 그들은 생각할 것이지만 난 나대로 조건을 달고 있으니, 접점은 늘 멀리 벌어져 있다.
어떤 여유 있는 집에서는 미모를 갖춘 딸이지만 거를 때 알게 모르게 저는 한쪽 다리 때문에 많은 재산을 달아서 보낸다며 청하기도 하니, 곤혹스러운 내 마음을 어디다 비길 데가 없다.
그만해도 알릴 만큼 알려진 마당에 아무렇게나 처신할 수도 없고 갖추어서 추진하자니 디딜 발판도 없으려니와 더욱이 비빌 언덕 없는 허공이니 나는 애만 태우고 있다. 아무도 거들어 줄 수 없는 안개 속에 갇힌 유령의 혼담이다.
잎에는 이슬이 남아 싱싱하다. 터질 듯이 잘 익은 수박을 가득 짊은 바지게가 한길 건너편에 땅이 꺼질 듯 무겁게 바쳐져 있다. 받침 작대기 밑을 설렁거리는 강아지를 쫓아내든 수박 장수가 한길을 오가는 행인을 쳐다보고 외친다. ‘달고 시원하고 물이 넘치오! 들이시오!’
힘 받은 바지게 작대기를 기대어 스치는 강아지의 몸무게를 느끼며 아찔하다. 아직은 받쳐져 있는 저 바지게가 내 혼담인 것 같아서 또 한 번 자지러진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서 성사만 되면 작수성례(酌水成禮)로라도 맞으리라!/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