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일상의 마지막이 될 수 없는 노릇, 나만 여전히 술도가를 맴돌아야 할 테지만 때를 맞은 술도가의 운영은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운동원들이나 당선된 의원도, 그리고 가족 구성원도, 모두 하나같이 지금이 시작일 수밖에 없다. 당선자를 통한 이권의 경합에서 모두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저마다 먼저 출발하여 목표지점에 도달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니 몇 번이고 되돌아와 출발 총소리를 다시 들어야 하는, 그런 명확한 ‘규칙’도 없는 터에 그저 눈치껏, 배포로 밀고 나갈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표를 모아 쥔 힘으로 다음 기회를 담보하여 들이대는, 선거 후유증이 여기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다만 아직 드러날 시기가 되지 않은, 바로 어제의 일이니 그 기회가 오지 않았을 따름이다.
각자의 뜻이 이룩될 것이란 보장은 아직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 오직 상황을 분석하고 대처할, 머지않은 장래를 깡그리 잊고 흥분에 휩싸여만 있다. 어제의 흥분을 자축의 열기로 불사르기 위해 며칠 후에 있을 군내의 운동원 전원이 모이는 날을 받고 있음에도, 이날을 차마 기다릴 수 없는 읍내 젊은 운동원들은 사물(四物)을 챙겨 들고 오늘 아침 일찍부터 의원 댁으로 몰려들었다. 술도가에 있는 나를 당연한 것처럼 부르고, 집안에서 술판이 벌어지더니 이어 춤판이 벌어졌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내게도 한 바가지가 떡 차례 왔다. 술을 들고 쩔쩔매다가 적당히 마시고는 얼버무려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술의 힘을 빌려서 흥겨웠는지, 어제까지 숨죽이고 지내던 한풀이라도 하려는지, 대청마루 가득히 올라선 장정들의 발 굴림에 마루가 꺼지고 집이 무너질 것만 같다. 집안에 들어가지 못한 한패는 마당에서 길길이 뛰고 있다. 마루에서 뛰고 있던 의원의 처남이, 울리는 마루를 걱정하여 만류하자 의원은 ‘걱정을 마시오! 내가 이 집을 지을 때 마루 밑에 수백 개의 바침 목을 넣었으니 얼마든지 뛰놀아’도 된다고 하니 청년들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의원은 집을 지을 때 이미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고 오늘을 예견하여 설계와 시공을 한 것처럼 보였다.
뚜렷한 목표 의식이 오늘을 있게 했을 것이다.
징 소리, 꽹과리 소리, 북소리, 장구 소리가 ‘죽전리’ 온 동네를 울리며 멀리 읍내까지 퍼졌다. 어울리는 사물의 화음엔 신명을 바친 당선의원의 패기 어린 숨결이 느리고 깊은 징 소리에 올라탔고, 발이 닳도록 뛰어다닌 운동원의 욕구가 임계(臨界)치 넘어 자지러지듯이 꽹과리 소리에 매달려 팔락이며, 사업가의 뱃속에 울리는 법고 소리가 징과 꽹과리 소리에 숨어서 조율하고, 남편의 사업, 아들의 취업을 갈망하여 비비는 아낙들의 합장 소리가 장구 가락에 스며서 펴져 나간다.
신명 나는 사물놀이에도 몫을 시새워 튀기는 마찰음이 끼이고 친척들의 남모르게 뿌린 씨앗 트는 소리도 수줍어 숨어서, 넓게 퍼지는 것이다. 저 사물(四物) 여운(餘韻)에 내 작고 보잘것없는 바람(希望), 호구(糊口)의 ‘잠꼬대’도 담아 보내고 싶다.
나도 기뻤다.
때때로, 분출구를 차고 올라간 물줄기가 힘을 다한 끄트머리에서 다시 수면 위로 내동댕이쳐지는 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수면에서 빙빙 돌고만 있으면서 다시는 분출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환각에 빠진다.
이틀이 지났다.
예고된 날이고 장소이기에 아침부터 명승지인 ‘위천면’의 ‘수승대’, 반석이 넓게 깔리고 정각이 널려있는 명소에 모이고 있다. 트럭으로 술을 실어 나를 만치 면면촌촌에서 운집한 무리지만 내 존재는 용도를 다한 포장 종이가 되었는지 지극히 미미해졌다. 그러나 날 끌고 가는 젊은 패거리는 마치 내가 중재인이라도 되는 듯 약방의 감초를 만들고 있다.
이런 축제에 불참함은 외곬의 표 내기 같기도 하고 또 오늘만은 나도 취하고 싶은 생각에서 함께 왔다.
자갈 박힌 먼지 길을 털털이 버스로, 푸른 들판이 열린 골짝을 한 시간쯤 달려서 ‘위천면’ 소재지를 막 지났다. 다시 한참을 더 달려서 숲이 우거진 너럭바위 위로 구슬 같은 물이 모아 떨어져서 작은 소(沼)를 이루면서 자잘한 자갈 물길을 만들어 양쪽에 넓은 놀이마당이 저절로 생성된, 그림 같은 곳에 왔다.
크고 작은 정각이 여기저기에 단청(丹靑)을 입고, 곳곳에는 아름드리나무가 긴 가지를 넓게 펼쳐서 그늘을 지우고 있다. 너럭바위는 절로 시원한 청마루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따가운 불가마가 되기도 한다. 철철이, 시간 따라 달라지는 너럭바위의 손짓에 홀려서 언제나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만사를 잊으려 허리띠를 끄르고 마음껏 마셨다. 취하고 싶었다. 점심 후엔 한마당 굿이 벌어지고, 삼삼오오 패를 지어 나름의 앞일을 짜고 있을 때도 날 기다리는 사람이나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은 어느 곳에도 없음을 알아차리면서 고독이 엄습했다. 윗도리를 벗어 가슴과 머리를 가리고는 고의춤에 네 손가락을 끼고 몽롱한 나를 즐기고 있다.
징 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왁자지껄, 왁자지껄 떠들던 사람들의 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가슴을 떡메로 내리치듯 쿵쿵 들썩거리고, 터지도록 부푼 숨길이 하늘에 차고, 바위를 녹일 단내가 코를 달구고 있다.
햇빛이 개울 언덕 동쪽 들판 한가운데로 물러갔다.
부축받는 나의 풀린 다리가 자국을 내지 못한다. 반은 내가 딛고 반은 끌리면서 높은 트럭 앞자리에 간신히 올라 앉혔다.
인사불성의 내가 울고 있었나 보다. 트럭 앞자리에 같이 탄 누군가가 자꾸 내 등을 쓰다듬는 것만을 느꼈을 뿐이다.
집을 떠나서 이때까지 난 울지 않고 버텼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술이 마술해서 내 의지(意志)에 구멍을 뚫었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보인 이 눈물은 감격의 눈물이 아니다. 통한의 눈물은 더욱 아니다. 단지 나와 함께 진정으로 기뻐할 이가 아무도 없기에 점점 고독의 늪에 빠져들어 갔을 뿐이다. 기쁨도 혼자로선 덧없는 것, 갑자기 잊어야 할 고향의 어른들과 형제자매, 정겹든 이웃과 산천이 잇달아 망막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아련한 어제의 기억이다. 어제의 일, 술김에 들어가서야 비로써 내 속을 드러낸 부끄러운 몸가짐이었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