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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궤적 2008. 8. 2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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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선보기, 김순경의 무모한 행동을 따라 움직였음에도 끝내 얼굴을 보이지 않은 처자의 모습을 죄스럽게 그리면서도, 그 불씨로 붙은 열정이 꺼지질 않는다.

여과(濾過)장치나 야로(冶爐) 시설을 두어 거르고 녹여서 걸맞게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마치 외로이 서 있는 어린 접목(接木)을 싹 잘라서 아무 대목(臺木)에나 접붙여 보자는 듯이, 종국엔 살거나 말거나 나 몰라랄 것 같아, 두려운 심사(心思)를 조용히 가라앉히고 있다.

벌판에 홀로선 접목(接木) 깜을 먼저 자르려는 혼란에 휘말려, 나는 더욱 내가 접 붙을 그 대목(臺木)을 가리기 어렵다. 내가 고향을 떠났으니, 대목의 자리는 아닌 것 같다. 결코 타산일 수 없는 것이 정(情)일 것 같은데, 세상은 그렇지 않음을 어렴풋이 알려주고 있기에 망설인다. 그러면서 흔들리고 휘청거리고 있다.

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지 되새긴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 젓지만 내 생활에서 언제나 있었던 짝을 이성으로 바꾸고 싶어서, 내 마음 기울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김순경을 따라나서기 전에 어느새 나의 이성 추구욕이 일렁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호구(糊口)의 위급함을 면한 그 순간부터 인간 본성으로 되돌아감이 마땅한 일일 수 있다고, 부끄럽지만 스스로 위안한다.

 

잦은 모임이 있던 의원의 당선 전 모임 장소인 다방의 3층은 다락방같이 좁고 길다. 남서쪽에, 없는 듯이 달린 투명한 유리문에서 햇빛이 고스란히 떨어지며 ‘다다미’의 날실을 튀겨서 알알이 드러내는, 밝은 방이다.

이 방에서 다짐은 무엇이든 햇빛을 타고 곧바로 하늘로 향해 나갈 것 같다. 하늘 행 출항(出航)장인 듯 읍내의 모든 집이 눈 아래로 보이고 파란 하늘은 바짝 다가와 눈앞에 있다. 집기(什器) 하나 없는 ‘다다미[tatami疊]’ 방 안에 양다리를 꼬아 둘러앉은 면면은 세상살이에 찌든 중년의 유지들이지만 의원 입후보자만은 부리부리한 눈매에 구레나룻이 새파랗게 이색(異色)지는 호걸 형 젊은이로, 햇빛이 잘 그려준다.

둘러앉은 당직자들은 선거 전략을 숙의(熟議)하기에 우선하여 차를 주문했다.

여종업원이 차 쟁반을 들고 나무계단을 조심스레 올라온다. 그의 머리는 햇빛을 받아 가락가락이 반짝인다. 윤곽이 눈에 들어온다.

짙은 눈썹은 누굴 부르는 듯 날개치고, 검고 긴 속눈썹을 붙인 얇은 눈시울은 비가(悲歌)로 호소하듯 여닫는다. 눈물 어려 반짝이는 눈시울 속 눈망울은 세상을 몽땅 담는다. 미소 짓는 입술엔 순수의 살갗이 드러나 목젖마저 보일 듯하다. 건강미 넘치는 얼굴에 보석같이 달린 눈과 입과 귀가 오뚝한 코에 통제(統制)돼 매달린 듯 조화롭다. 머리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귀조차 균형 잡혀 아름답게 그려준다.

내 눈 아래 놓인 그녀의 작은 두 발이 투명 양말 속에서 순수의 표준으로 고물거리며, 아름다운 원형(原型)을 간직하려 팽만하게 흐르는 정강이를 바치고 있다.

이 모두는 나만이 느끼는 청춘 특권이다. 젊음의 눈길에 불꽃을 예고하는 징후다.

신의 조화로, 어쩌면 환각으로, 미(美)의 세계를 여행했는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느꼈다. 창을 뚫어 쏟는 햇빛을 타고 흩어지는 짙은 커피 향에 상큼한 그녀의 냄새가 뒤섞여, 방안에 자욱한 담배 연기를 희석한다.  

며칠은 공중에 뜬 듯이 지났다. 인상이 또렷이 남는다.

참아, 대놓고 말할 수 없어서, 쪽지 글을 써 사무실 꼬마를 시켜 그녀에게 전하도록 심부름을 시켰지만, 꼬마는 그 내용을 모른다. 서툰 내 실력이 꼬부랑글씨를 썼기 때문이다.

잠시 뒤, 돌아온 꼬마의 손에 들린 쪽지의 내용에 기가 질린 나는 그에게 내 정체를 드러내질 못했다. 그녀의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과 현명한 처신이 서로를 되돌아보도록 일깨운 경고(?)였기 때문이다.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연약한 한 여자를 조롱하기에 지극히 수고하셨소! 보잘것없는 미천한 여인에게 거절당함을 심히 슬퍼하시라.’ 나는 망설였다.

반응은 정반대의 해석으로 응해서 마땅하다. 그것은 꼬마가 읽을 수 있기에 그렇다. 안개 낀 내 앞길이긴 해도, 이 여자로 하여 내 앞날이 불투명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지금 물 첨벙 불 첨벙 할 때가 아님을 일깨운 그녀의 혜안에 탄복하며 쓴잔을 마신다.

불은 여전히 꺼지지 않는다. 나도 계산하는 삶을 살고 있기는 한가? 아니다.  최소한의 자존(自尊)이라고 억지 변명을 하고 있다.  또 며칠이 지났고 그녀는 떠났다. 일언반구의 대화도 없이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말은 골수를 파고들어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유혹은 나날이 계속된다.

의원의 친구가 경영하는 다방에는 나를 아는 그 집식구들이 외톨이 내게 관심을 두는 것은 자연스럽긴 하지만 모두가 무책임하고 즉흥적인 놀이의 틀을 벗지 못한다. 그럴법하다.  내가 감지하지는 못하는 기류가 있다.  좁은 지역에 돌출적으로 나타난 외지인인 내게 무관심이 오히려 이상하다.

전후의 의식구조는 사람마다 있는 정보망을 동원하여 자기 몸을 보호해야 하는, 이상한 사람을 밀고해야 하는 분위기조차 있는 마당에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결과는, 도토리의 껍질을 벗지 못하여서 남아 처진 형편을 그들이 알고, 그 사고의 출발이 기인 되어 그들은 늘 가벼운 마음으로 나를 대할 것이기에 내 눈은 점점 커지고 더 멀리, 더 자세히, 더 오래 관찰하고, 음미하는 혜안(慧眼)으로 되어야 함을 나도 알고 있다.  

다시 한 사람이 보충되어서 먼 길, 대구에선가 부산에선가 예의 그 다방으로 왔단다.

못다 한 배움의 한을 독서로 채우려는 나의 욕구가 충족되는 계기가 된 다방 아래층 서점, 주인의 염려로 토막시간을 내어 책을 빌리러 서점에 들르는 버릇마저 생겼다.

그 어느 날 오후 서점으로 가고 있었다. 마주 보이는 다방건물 아래층으로 갈 참으로 술도가 창문을 열고 나섰다.

자전거 페달을 한 바퀴만 돌려도 저절로 내려가는 평지 같은 내림 길이다. 무릎에 탄력을 보태며 빤히 보이는 네거리의 다방 아래 서점을 향해서 가는데, 맞은편 건물의 계단을 내려온 두 여자가 이쪽을 마주 보고 걸어온다.

지상의 모든 여자를 추녀로 만들려는 듯, 추미(醜美)의 양극을 극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 바로 여기 있다는 듯이 내 눈앞으로 다가왔다. 내 눈에 비친 보통 여자의 용모는 한국적 용모로 얼마 후에 이 지방의 신망 있는 젊은이와 결혼하기로 약혼한 처자였지만, 오늘만은 초라해 보인다. 그것은 나란히 걸어오는 낯선 여자가 등진 아침 햇빛조차 가려서 이길 듯한 발광(發光?) 자태에 가려졌기 때문이다.

내게 비친 두 사람은 마치 천사와 악마가 함께 걸어오는 것 같았다. 키는 비견(比肩)키 가당찮은 도토리와 흰 무 같았고 윤곽은 이지러진 달과 만월인 것, 차라리 두 모양 달은 나란히 뜨지 않으니 따로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거늘 어찌하여 이 두 여인은 함께 나란히 걷고 있는지 민망스럽다.  

기회의 상실이 누구보다 많은 내가 인간 접촉의 좁은 범위에서 얻어진 이성관 때문에 이렇게 매혹되는지는 몰라도, 앞으로 영원히 보지 못할 것 같은 절세(絶世)의 미인이다.

우윳빛 피부에 복사꽃 빛 양 볼이 넓은 이마에서 흐르듯 빠져내려 매끄러운 턱으로 편안하게 머물고, 흐르는 꿀이 맺혀 올랐듯 흠 없이 매끄럽다.

눈두덩은 깊어서 미간을 돋아 사람의 손길을 모르는 바닷가 사구(砂丘)같이 유연하고, 세상을 몽땅 옮겨 심어도 하얗게 될 만큼 흰, 흰자위 위에 구르는 검은 눈동자는 악마가 빠져도 삭일 수 있도록 깊고 또 깊다. 미간에서 내린 코 뿌리가 두 눈을 또렷이 갈라서 오뚝하게 솟아, 내 코를 간질여 온다. 눈감고도 만물을 가릴 것처럼 예리한 콧구멍은 보일 듯 말 듯, 다가오는 코끝은 만인의 초점을 모을 만치 부드러워 보인다. 딸기 송이의 씨알처럼 얇게, 칸칸이 세로로 심어진 입술 문(紋)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그 도톰한 입술이 두 눈과 코의 조화로 보조개를 지으면서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듯, 눈과 함께 움직인다.

가히 신의 걸작으로 일컬을 천사의 아름다움이다. 스치는 순간에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넘치는 생의 보람을 느꼈다. 그녀는 다방종업원에게 안내되어서 숙소로 가는 길이었다. 조석으로 마주치는 그녀의 눈길이 예사롭질 않았다.  

하늘에서 내려왔는지 땅에서 솟았는지 알 수 없는 ‘달덩이’를 찔러보고 만져보고 핥아 보지만 알 수 있는 것 단 한 가지, ‘이름 3자도’ 쓸 줄 모르는 까막눈, 이 사실을 일러주는 사무실 꼬마의 조심한 귀띔이 하늘을 깨는 벼락으로 들렸다.  

악마의 심술인가? 신의 노여움인가?! 

들매 끈 못 매는 철부지와 먼 눈(雪)길을 함께 걸으면서, 따라오는가 싶어 돌아보면 까마득히 뒤처져 주저앉아 들메 매는 시늉만 하고 있다.

한참이나 뒤돌아 다가가서 매어주고, 다시, 자국 소리 없는 눈길을 걷는다. 걸으면서도 눈(雪)에 홀리지 않고 가노라니 앞은 아득히 뽀얀데, 홀연히 사라지고 싶은 마음조차 억제하며 걷고 있건만, 잠시 후 옆 돌아보면 또 저만치 뒤쪽에서 나를 쳐다보며 애소(哀訴)하고 있다.

갈 길은 먼데, 모두 모습도 보이지 않도록 앞서가 버렸는데, 철부지의 누엔 눈먼 천사로 보이더니 점점 구체화 되어 절세(絶世)의 미인 그녀로, 현실로 되어 내 오감을 자극하고 있다.

내가 여유가 있어서 천사를 붙잡아 눈앞에 두고 창조의 미를 환희로 노래함이 마땅하련만 갈 길이 멀어서, 마냥 아름다움만을 감상하고 동반할 시간이 없다.

별도의 보호 장구 눈썰매를 매어 내가 끌고, 들메끈 매는 또 다른 동반자와 함께 셋이 눈길을 가고 싶다.

아니, 어쩌면 미색에 포로가 되어서 나도 함께 눈밭에서 뭉개다가 그대로 하얀 눈 속에 파묻히거나 미의 향연으로 지새다가 마침내 주저앉고도 싶다. 그러나 나는 갈 길이 멀다. 하물며 꽃으로 치장한 눈썰매를 만들 재주도 없고 함께 끌어줄 반려자는 더욱 없을 것이기에 아쉽게 체념하면서 몸부림친다.

경국지색(傾國之色)!  임금조차 현혹되어 나랏일을 그르치는데, 어찌 햇볕 갓 쬔 보이지 않는 잡초의 처지인 나, 필부가 감당할 수 있으랴! 결코 놓기 싫은 이상형이다. 내가 일순(一瞬)해 그녀에게 혼을 바꿔 넣을 수만 있다면?! 모독적(冒瀆的) 생각을 접고, 끈기 있게 이끌어 갈 도량의 부족임을 자탄한다.

또 며칠이 지났다.  유리창을 뚫은 아침 햇빛이 흰 벽을 밝게 칠하고, 물 갓 뿌린 신작로 길의 흙냄새가 코끝에 스며서 상쾌하다. 

길 건너 두 집 위의 감나무 집 아랫방에 세 얻어 숙식하는 다방종업원들은 이미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얼추 다 일하려 내려갔다.

내가 알 바 아닌 그들의 일손을 실없이 챙길 이유가 없으니 그저 눈감을 수 없어서 눈에 드는 정도이다.  차를 나르는 여자 꼬마애가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라며 앞서서 금방 나온 자기 방으로 날 데려다 놓고는 저는 훌쩍 튀어 큰길로 들어서서 네거리 다방 쪽으로 쏜살같이 달아났다.  

난 예감했다.  그러나 침착하지 않으면 봉변이라도 당할 것 같은, 준비 없는 이 상황을 주저하면서도 ‘죄짓지 않은 이 마당에 무슨 겁’이냐고 자문하고 ‘똑똑’ 문을 두드려 인기척을 했다.

대답은 없다. 아니 상기(上氣)되어 못 들었을지 모른다. 대답 없는 방안의 기척을 기다리지 않고 동그란 무쇠 문고리를 잡고 창호지 문을 당겼다. 까맣게 찌든 돗자리 방위에 길이로 길게 엎드려서 나를 올려보며 호수 같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며 앉으라는 것이다.

솔직히는, 같이 나란히 엎드리라는 것이리라. 턱밑에는 하얀 공책이 한 권, 겉장을 펴놓고 그 위에 새 연필 한 자루를 얹어놓고 있다. 가슴이 터질 듯이 숨이 가쁘다. 곧 피가 용솟음쳐서 그녀의 하얗고 긴 다리 위에 뿜어져서 내 얼굴과 함께 홍당무가 될 것 같다.

혼미해서 앉을 수가 없다. 일순에 몽롱해지면서 자제력을 잃을 것 같은 위험수위를 직감하며 냉철해지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삼단 같은 머리가 하얀 겨드랑을 감싸 흘렀다. 하늘색 ‘원피스’의 아래가 댕겨서 터질 듯이 솟은 엉덩이 중심부를 에워 있지만 차마 그녀의 머리맡에 딱 달라붙은 내 양발을 뗄 수가 없다. 담담한 그녀는 나의 다음 반응을 기다리다가 얼굴을 붉히며 ‘글을 가르쳐 주신다지요?’ 높지 않으면서도 갈라지지 않은 곧은 음색이다. 이미 모든 걸 각오하고 죽기보다 더 실은, 어쩌면 그녀의 전부를 내놓는대도 이것만을 밝히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드러낼 만치 나를 신뢰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펼쳐놓은 공책이 허상이고 그녀의 다리가 실상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때가 맞지 않으니 다리는 허상이고 공책이 실상이다. 거꾸로, 한 호흡을 앞당겨서 쉬고 있는 내 실상이 다리고 허상이 공책이다.

둘의 생각은 엇갈려서 마치 지남철의 같은 극을 맞대어 밀어내면서도 다른 극으로 돌아가 잡으려는, 앞뒤의 물림이 서로 다르게 작용하고 있다. 모두를 초월하고, 폭발하는 화약고에서 장약(裝藥)의 앞뒤 순서를 달리하여 잠시 머뭇거리는 형국을 맞고 있다.  

방안은 그녀의 미색으로 흡입된 ‘수소(水素)’와 그녀의 향기가 농축된 ‘산소(酸素)’가 가득하여 불기가 일기만 하면 대 폭발이 일 것만 같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가 각각으로 흐르고 있다.  

‘이렇게 허물을 털어 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내가 시간이 지금은 나지 않아서 차차 같이 배워보도록 합시다.’ 조심스레 입을 떼고, 내심 정중한 사과와 더불어 머리를 숙였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세상이 정지할 것 같은 호흡의 단절을 참고 아찔한 순간을 맞는다.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한다. 만약 일 밀리라도 발을 움직였으면 대폭발이 일었을 것이다.  

누군가 잡지 않으면 앞으로 영원히 앞을 보지 못할지도 모를 이 아름다운 여인을 진정으로 눈뜨게 하려면 나를 통하여서만 가능할 것이라는 나름의 생각에서, 다방 식구들과 그녀가 짜고 일을 벌였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사무실 꼬마가 내게 미인이 내게 글을 배우겠다고 한다며 흘린 말을 기억한다.

어쩌면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의 ‘겉옷’인 공책을 감추지 못해서 선녀를 하늘로 올려보낼지도 모르는데도 돌같이 차게 냉철한 이성으로 내 불을 끄고 그녀의 불도 껐다. 한 치의 움직임이라도 있었으면 터질 듯, 장약을 건드리지 않고 안으로 가둔 채!  

대 폭발은 없었다. 비겁한 구실의 진화이니 마음의 상처가 엄청나게 큰, 아마 이제까지 당해보지 못한 엄청난 충격을 받고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가르쳐주는 척만을 필요로 한 갈망이었을 것이다. 너무나 아쉽고, 애끓은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로부터 또 며칠 후, 아침저녁에 길거리를 아무리 내다보아도 흑갈색의 도로일 뿐, 선녀의 자태로 한길을 밝히던 ‘경국지색’의 그녀는 보이질 않는다.  

듣느니, 그녀는 이웃 고을의 돈 많은 집으로 채여 갔단다.

‘용감한 사람만이 미인을 얻는다’. 그 말이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서 더욱 초라해진다. 차라리 환시(幻視)고 환각(幻覺)이었으면 미련이야 없겠지만, 발돋움해서 그녀가 갔다는 쪽, 먼 산을 바라본다. 이즈음 내 젊음의 노래가 마냥 그림으로 곱게 색칠해 그려진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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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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