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외통궤적 2008. 8. 2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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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3.020214 직업

날마다 하는 일이 있으면 직업이 있다고 할 수 있고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 있다면 또한 직업이 있다고 할 수 있다는데, 나는 도무지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직업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저 일시적으로 도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뿐이어서 때때로 맥이 빠지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그다지 신명나는 일이 없는 나날을 보낸다.

 

 

서울로 올라간 의원의 뒤를 이어 이 지역의 많은 젊은이들이 올라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끈이 없는 나는 아무나 붙들고 구체적으로 물어 볼 수도 없고 매달릴 수도 없는 형편이라서 애만 태우고 있다.

 

서울은커녕 이 지역의 어느 공공기관의 임시직이라도 넣어준다면 금방 내 능력으로 승승장구할 것 같은 생각이다. 그리고 서울로 향해 올라갈 것 같다.

 

취업의 문에 발을 딛고 문턱을 넘자면 꼭 필요한 거처와 호적등본과 신원보증, 좁은 문을 뚫는 후견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즈음의 취업 실태이니 조이는 마음을 누그러뜨릴 길이 막막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내 위치를 가볍게 해서 언제든지 어디든지 움직일 수 있도록 배려함인지, 아니면 뿌리가 없으니 어느 날 몽땅 가지고 줄행랑을 친다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가 있었던지, 그것도 아니면 아직 나이 어린 총각에게 술도가의 운영을 맡겼다가 낭패라도 보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가 있었던지, 그도 저도 아니면 새로 오는 노인의 생계가 어려워 뿌리박은 일족(一族)의 여론에 못 이겨서 채용하는 것이지, 적당한 견제장치를 만들어 놓는 것인지 나로선 다양한 풀이가 있을법한, 술도가의 기구조정이 있은 뒤로는 더욱 내 마음이 산란하다.

 

 

당선자의 입장에서 보면 일자리는 극히 적은데 언제 그 많은 사람들은 적소에 심어줄 수 있을까 고민도 될 것이다. 그 대상에 내 서열은 아마도 맨 끝머리 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이르러서는 두말할 나위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지만, 아직 사 년이란 임기가 남아있으니 두고 볼 일이라고 내 생각을 또 뒤집는다.

 

이래서 나는 우유부단(優柔不斷)한가? 대답이 빤한 물음을 구차하게 하느니 무언으로 일관하여 깨닫게 함도 한 방법이려니 생각하며 오늘을 보내고 있다.

 

연세가 육십을 넘은 단구(短軀)의 노인의 건강은 검은머리가 웅변하듯 정정하다. 오랫동안 일본사람이 경영하는 술 회사에 있었던 경력으로 해서 어려운 복식부기도 척척하고 있으니 아직 나는 병아리의 걸음인데도 나를 모르고 덤볐구나 하는 생각으로 움칠하고 자성한다.

 

그렇다. 나는 아직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러고 나서 넘보아야한다. 내가 아무리 잘 한다 해도 그것은 내가 아는 한계와 범위에서 가능할 것이니 내가 아는 범위를 되도록 넓이는 것이 우선할 일인 것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마음이 평온해진다.

 

 

못 배운 것, 배울 기회를 점점 잃고 있는 것, 이것은 시골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의 애 닳는 몸부림은 내적일 뿐 외적으로는 전혀 변함이 없는 일상으로 있을 따름이고, 보는 사람마다는 취직이 된 것으로 간주하고 야단이니 또한 그런 면에서도 내 애가 끓는다.

 

나는 도시로 가야 한다. 그리고 더 배워야 한다. 그러니 무작정 도시로 가서 배움의 길이 열린다는 보장이 없는 마당에 망설임은 당연하다며 주저앉는다.

 

 

훗날, 자성의 선반 위에 과거를 오려놓고 관조하며 지난 삶이 옳고 떳떳했다며 바라볼 수 있도록 나를 조정하는 슬기를 발휘해야할 텐데, 그것이 뜻 같지 않으니 주먹으로 애꿎게 긴 나무의자의 두꺼운 판자만 내리치고 있다.

 

 

노인은 자기 집에서 가져온 책상을 사무실 한쪽구석에 차려놓고 그 앞에서 두꺼운 장부의 장장에다 손잡이 띠지를 붙이며 자기일과 내 일을 갈라놓았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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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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