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뻗어 누우면 문지방에 닿아 발끝을 오므려야 하고 팔을 뻗어 올리면 바람벽에 부딪어 팔꿈치를 ‘접어야’ 한다. 터질 것 같이 부풀어 오른 두꺼운 요와 주체 못 할 크기의 이불이 깔린 방은 침구로 가득하여 앉아있는 내가 구름 위에 얹힌 듯하다. 그러다가 위를 올려보니 천장은 어느새 나와 맞닿을 듯 낮아져서 아늑한 태반 속에 들어있는 듯 황홀해진다.
옆방에선 아직도 젓가락 장단이 그치지 않고 왁자하다.
기쁘다. 하지만 한편으로 친구에게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 그지없는 일인데, 무슨 말 한마디 할 기회도 없이 어떻게 보냈는지 짐작이 안 가고, 옆방에서 들리는 노랫가락도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취기를 앗아가고 있다. 친구는 어떻게 갔는지, 내 편에 하나밖에 없는 친구는 이 꼴을 숨김없이 의원 댁에 전할 것이고 그 댁에선 ‘몹쓸 것, 그렇게도 몸부림치더니 고작 그렇게 하느냐’는 비웃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서 또한 정신이 바짝 든다.
난 또 부질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는 ‘곽목’ 친구가 멀리 ‘북상’에서 늦게나마 찾아와서 고맙기 그지없다.
산 중턱에 있는 삼 칸 ‘류핑’ 지붕의 바라크 집은 그 터전만으로도 나로선 부러운 집이다. 하나, 내 지난 발자취와 정서로는 대견할지라도, 생각하며 몸부림쳐도 넘볼 수 없는 고향 집과 부모 형제와 일가친척에 대한 그리움의 크기에 눌려 한없이 초라한 집으로 작아진다. 이 초라하고 작은 집의 한 방이 내 일생 첫날의 신방이 될 것을 우리 부모는 상상이나 하셨을까? 또다시 정신이 초롱초롱해지며 눈물이 고인다.
‘에이꼬’는 말이 없다. 그는 그 나름대로 장모님께 섭섭하다. 무엇 때문인지 난 아직 모른다. 아마도 혼수의 미흡함이리라. 내가 ‘에이꼬’에게 준 돈의 기준에도 못 미침을 눈치채고 가슴을 앓는지 모르겠다.
노랫소리는 처남과 그 친구들의 소리다. 이미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 술에 약한 내 얼굴이 쉬 붉어짐을 핑계로 술자리를 빠져나와 이렇게 독백함이 오히려 내 처지에 걸맞다.
얼떨결에 보낸 오늘 하루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결혼식이 여기 ‘염주동’ 산 중턱의 삼 칸 절간에서 이루어졌다. 신랑 신부 양쪽 친구 둘씩과 신부의 형제가 고작인 결혼식을 올렸으니, 천지신명은 굽어살피셨을 테다. 정화수를 가운데 두고 상견하는 둘의 사이에 버텨 앉은 ‘본존’의 이마에 아침햇살이 비치고 그 황금빛이 우리 둘의 볼을 달구고 있었다. 서양 문물이 밀려든 남도(南都)에서 유행을 뛰어넘는 이 파격적 혼례식은 온전히 순수의 극치인 것을 자부해도 될 성싶다.
지난날에도, 지금도, 앞날에도 볼 수 없는 진귀한 결혼식의 주인공이 여기 있다. 난 양복을 입고 ‘에이꼬’는 현대식 예복을 입고, 본존(本尊) 이마의 반사광과 아우른 우리 둘의 이마를 튀기는 아침 햇살이 찍힌 혼례 사진은 영원의 새김이기에 과거의 내 모든 걸 말하리라!
얼어붙은 개숫물이 사람의 때를 깨끗하게 씻은 듯 반짝이며 눈을 부신다. 성냥갑 같은 집들이 눈 아래 펼쳐지고, 가득 차오른 바닷물이 섬 같은 화물선을 떠받치고 태양을 맞고 있다.
세상 모두가 이제 시작인가 싶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