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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궤적 2008. 8. 26.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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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모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힘도 솟는 것인지,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바라보고 끌려오고 있다. 밝은 웃음으로 맞고 있다.

십일월 삼십일일. 이날의 날씨가 어떻든 이날의 인심이 어떻든 내 앞에는 운명의 갈림길, 그 날이니 비록 엄동의 칼바람이 귓불을 저미고 한파의 전극(電極)이 손끝을 자를지라도 내 마음은 지구를 안아 녹일 열정으로 가득하다.

초록으로 깔았든 합수의 둑길은 앙상한 검불로 덮어가며 긴 겨울채비에 들고 있는데, 우리는 향기로운 봄의 꽃을 피우고 검불 밑에 구르는 모래알이 물기하나 없이 알알이 부서져도 잡은 우리의 손바닥은 뜨거운 열기로 촉촉하다.

추울수록 봄은 가까워 오는 것일진대 우리의 겨울은 벌써 고비를 넘기고 엄동 속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이여 우리를 축복해다오!

둑길의 검불이여 흙의 소리를 들어 우리를 위해서 어서 움을 틔워다오!

내 걷는 길이 점점 화사한 봄날의 꽃길로 변하더니 어느새 푹신한 융단 위를 걸으면서 환호와 갈채와 함성이 뒤섞인 축복의 문을 들어서고 있다.

나는 ‘에이꼬’의 손을 꼭 잡았다.

내 홀로 돌아오는 길은 울퉁불퉁한 신작로임에도 어김없이 융단이 까려있다.마음은 마냥 부풀어있다.

아무것도 없음은 전부를 가진 것과 진배없다고, 굳이 끌어내서 내 삶의 방식으로 확대함은 노상 내 뇌까림이다. 

아니다.

있는 것을 버리고서야 이런 소리를 할 수 있거늘 처음부터 없는 주제에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싶어서 다시 움츠리면서도 나를 인정하고 내가 우선돼야 된다고 생각해본다.

내가 나조차 외면하고 자학한다면, 그것이 바로 자살의 이유로 유도될 수박에 없다.

어려운 현실에서나마 내 몸을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아의 발견인 것이다. 숨 쉬고 있는 이 순간, 이 사실이 나를 있게 하는 증거요 당위인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는 미친 사람같이 보일망정 내가 활보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내가 걸맞게 행동하자면 넝마를 걸치고 짚신을 신고 머리를 기르고 깡통을 들어야 할 것이로되 나는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머리를 단정히 이발하고 언제나 권연(卷煙)을 물고 라이터를 번쩍이는 사람으로 위장하여 살고 있으니 속 빈 강정이 따로 없다.

내가 제대하고 방랑하면서부터 경북대구 화투공장에도 괴나리봇짐 한 개, 신원 면 ‘신 아무개 친구네 집에도 괴나리봇짐 한 개, 또 여기 술도가에도 괴나리봇짐 한 개, 이렇게 세 개의 봇짐을 남겼다.

이것은 나의 발자국의 뚜렷한 구실밖에 아무것도 아닌, 속 빈 괴나리봇짐이다.

세 개의 봇짐은 말 그대로 짐일 따름이다.

그 짐 속에는 내 체취가 밴 옷가지가 있고 내 혼이 담긴 필적(筆跡)이 있는데도 영 수습하지 않고 있음은 일과시간을 빗댄 구실이다.

아니다. 거추장스런 허물일 따름이기에 벗어 던졌는지도 딱히 모르겠다.

이렇듯, 나는 잠자는 술도가의 숙직실 방에 양복 두 벌과 속옷 두벌, 구두 한 켤레뿐인 초간편(超簡便) 괴나리봇짐을 풀었고, 벽에 못을 박아 횃대를 만들어서 늘어뜨려 걸었다.

사무실에서 보기에, 정강이 높이에 달린 미닫이문을 열면 누렇게 찌들은 흙 장판이 우선 눈에 들어오고 두어 평 남짓한 방의 맞은편에 양복 한 벌이 온 방을 지키듯이 달랑 걸려있다.

그 벽면 옆엔 나무로 짠 단출한  서류함이 놓여있고, 그 위에 아무리 때가 끼어도 드러나지 않을 진녹색 이불 한 채와 누런 담요 한 장이 가지런하게 개켜 얹혀있을 뿐이다.

목침 세 개가 나란히 윗목을 가리킨다.

지극히 단조로운 방이다. 벽지는 한지초벽으로 두텁게 발려있어서 방바닥과 썩 잘 어울리는 전통 사랑방 풍의 방이다.

보지 못한 곳은 언제나 허공일 뿐, 보이는 곳은 먼데 있고,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언제나 내게 가장 가까운 중심인 것, 내 방 또한 우주의 중심에 다름 아닌데, 천하의 중심인 이 방이 그만 불시에 공개되었다.

보는 이, 이제까지의 복잡했던 머릿속의 상상을 일순에 하 얗게 씻어주는 허무, 그런 방이었다.

술 받으러 오는 손님 중 더러는 난로를 찾아서 사무실로 들어오는 분이 계신다.

막 주전자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오신 중년 부인의 훤칠한 키가 인상적이다.

마침 밖에 인부가 없는 때라 내가 주전자를 받아들고 작은 창문을 열고 인부를 부르고 있을 때다. 무엇인가 꽝하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리니, 부인은 숙직실 문을 열어보고 있었다.

늘 열려있는 방이니 문이 열린들 별 것이야 없지만 갑작스런 일에 놀라서 고개를 돌리는 내게 부인은 “내가 ‘에이꼬’의 어밉니다.”면서 ‘여기서 기거하시나?’

이어 묻는 데도 나는 남의 밭에서 무 뽑다 들킨 애같이 한 순간 얼굴을 빤히 처다 보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깊숙이 숙이면서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인사를 드렸지만 ‘에이꼬’의 어머니는 ‘자네 고생이 많네!’ 한마디를 남기면서 박으로 나가 판매대 위의 주전자를 들고 가셨다.

혼인날을 받고, 애꾸눈이나 절름발이는 아닌지? 
사지는 멀쩡한지?
보고 싶었을 것이다. 

성사되기 어려운 양쪽의 불균형, 승낙은 오로지 사람하나를 본다는 허울 좋은 명분인데, 과연 그럴 수 있는 위인(?)인지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내 또 다른 단면을 확인하고 싶어서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았지만 실마리를 잡을 만한 단서는 없었을 것이다.

딸을 둔 어느 부모가, 알거지나 다름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무엇 때문에 귀한 딸을 맡길 것인가?

가슴이 미어질 것이다. 

더군다나 눈 꼬리가 찢어지고 눈썹이 새까맣고 호리호리하여 어딘가 미덥지 못한 내게 ‘에이꼬’를 내맡긴다함은 아마도 아무것도 없는 것은 전부를 다 가진 것과 진배없는 이치를, 무한의 변수를 인정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걸그쩍거리는 피붙이가 없으니 홀가분하게 새 그림을 그리기에 알맞은 백지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에이꼬’로 인하여 내 방랑의 발길을 제동(制動)할 수 있었다. 잘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앞으로 빤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지만 지금은 그런 앞뒤를 가릴 겨를이 없으니 참으로 사랑 의 위대한 힘을 느낄 뿐이다.

얼어붙은 땅에도 온기를 모아 새싹을 틔우는 힘은 있다.

사랑의 힘이다.

차가운 내 피가 끓고 얼어붙은 내 마음도 녹는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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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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