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전령이 헐떡이며 전한다. 꼬마 전령의 말은 한마디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즈음의 들뜬 내 마음의 한 가닥을 쥐고 있는 꼬마의 손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 가닥을 물고 있는 꼬마의 입조차 내 거동을 통제할 줄은 미처 몰랐다. 여기에 머물러 있느냐 아니면 멀리 떠나느냐는 것조차도 꼬마 전령의 손과 입을 통해서 풀려나가기 때문이리라.
언제나 어둠이 깔려야 가욋일이랄 수 있는 사적(私的) 활동이 가능한 내 처지다.
낮 동안은 여러 사업장과 요로(要路)를 찾아다니지 않으면 안 되는 일가 어른네 집이나 마찬가지로, 나도 밤이라야 한가한 시간을 낼 수 있는 형편이라서 이렇게 마련되고 있나 보다.
대문을 들어선 나를 방으로 안내한 ‘에이꼬’의 이모는 과일을 한 접시 내놓더니 잠시 양해를 구하고는 건넛방으로 들어갔다. 방에서 나오더니 커다란 한지(韓紙) 봉투를 내어주며
‘마땅히 주고받을 데가 없어서 우리 집에서 이렇게 하고, 택일은 이쪽에서 하였으니 전할 데가 있으면 이것을 전하고 그렇지 못하면 그대로 갖고 있어도 되는데, 날짜만은 변경할 수 없으니 명심하고 준비하시게’
하면서 천장을 올려본다. 무언가 할 말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데도 말이 없다. 방안은 터질 것 같은 팽팽한 기류다.
말씀은 한마디, '날을 기억하고 준비'하라는 것이다.
느닷없는 일에 난 당황하고 있다. 꼴인즉 내가 혼자 신랑 집 주인이 되고 내가 바로 신랑이 되고 내가 바로 중매쟁이가 되고 또 내가 바로 상객(上客)이 돼야 하는 판국이다.
돌아오면서, 호주머니에 집어넣을 수도 없는 큰 봉투를 손에 들고 하늘의 별을 보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이 봉투의 의미를 참되게 풀어줄 이가 어디에 있건 안달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도록 해야지! 소중한 것을 그대로 간직할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절반으로 접어서 책갈피에 푹 꽂아 놓고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 무슨 염치로 이 봉투를 내밀며 일방 행동을 통고할 수 있겠나 싶어서 선뜻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세상을 사는데 손발과 입만 있으면 다 되는 것으로 알고 지내는 내게 내 손발이 아무 쓸모 없는 고깃덩어리로 되어버린 이 순간, 난 비로써 가족의 소중함을 티끌만큼 알게 되었다.
경박한 내 생각은 여기까지밖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더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지금 닥치는 이 상황에서도 또 흘러가는 대로 볼밖에 없다. 이러고 보니 세상을 내가 혼자 내 멋대로 산다고 고집하는 아집(我執)이 참으로 무모하다.
갑작스레 택일한 배경이 궁금하다. 추측한다. 얼마 전에 우리 신문 사회면에 보도된 야행성 엽색(獵色) 객의 소문이 고을에 퍼지면서, 신변에 위협을 느낀 ‘에이꼬’와 함께 동숙하든 여동생이 언니가 불안하여 이모에게 알렸고 이모는 ‘에이꼬’의 집안에 두루 알려서 ‘긴급 송달 출가(?)’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나로선 비할 데 없는 호기(好期)인 셈이다.
모름지기 의원의 여동생에게 탄식(歎息)을 곁들인 타령이 주위 모두의 심금을 울렸고 여기에 ‘에이꼬’의 여동생이 성냥을 그어 기폭(起爆)제 구실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때 사주나 택일단자를 들고 천 리든 만 리든 달려가서 떠들썩하게 일을 벌이고 밀고 나가야 하련만 멍하게 서 있을 뿐, 한 치도 움직일 수 없는 답답한 마음, 하소연할 데가 어디에 있겠는가 싶어서 또 한 번 망연자실 한다.
축하해 줄 이가 없는 결혼이 과연 의미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언제 통일의 그날을 기다릴 것인가. 눈뜨면 반길 분은 없어도 눈감으면 에워싸는 내 고향 부모 형제 친지들, 난 눈감고 내 방식의 축하를 받으리라!
그날부터 모든 일정을 결혼 날에 맞추고, 그날을 위해서 정성을 기울였다. 그동안에 모았든 돈을 ‘에이꼬’를 통해서 보냈고 어설픈 생활설계도 그려보았다. 그것도 연차적으로 구상했다.
마음은 가장 부드럽고 높이, 깃털처럼 하늘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그날부터 ‘에이꼬’의 대문 이는 언제나 하얗게 드러났고, 검은 눈동자 속으로 날 깊숙이 빨아들였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