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형편에 비추어서 나를 따라갈 친구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
친구는 날 이해했다. 민의원 의원의 지역구 주재 비서로, 짬짬이 날 챙기면서 나와 의원과의 다리 구실을 하고 있었다. 외람되이 내가 내 말을 할 수 없어서, 오히려 잘된 일이긴 해도 어딘가 힘이 쓰이지 않고 헐겁다. 이 또한 살얼음 위를 걷는 내 입지 탓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친구는 서울로 올라가다가 자동차 전복 사고로 생사의 고비를 넘길 때 의원 동생의 집에서 장기간 치료 중 나와 한솥밥을 먹은 적도 있는 친구다. 내가 참다운 취업을 갈망하고 있을 때 이 친구도 함께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기다리다 못해서 서울로 올라가던 길이었다.
지식인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하물며 내 차례까지야 오겠나 싶어서, 늘 나에게 상대적 위안을 주는 친구다. 의원의 서울 집으로라도 올라가서 어정거릴 참이었는지, 아니면 들어갈 자리가 마련되어서 불려 가는 것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친구로선 희망찬 서울행이었다.
그러나 타고 가든 의원의 승용차가 ‘충주시’를 못 미친 어디에선가 굴러 처박히는 바람에 운전기사와 함께 부상하고 입원했었다. 의원의 심부름으로 기사 혼자 끌고 내려왔든 차다.
친구는 딸이 하나 있는 아버지지만 한 달 거의 여기에서 소일하면서 각가지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러던 친구는 날 위해서 멀리 부산까지 가 주기로 작정하고 의원 댁을 왕래하면서 일을 주선하고 있었다.
그 실, 난 무리인 줄 알면서 혼인을 강행하고 있으니 나나 의원 댁이나 서먹할 수밖에 없다. 난 고집과 무례를 무릅쓰고 있다. 역시 이런 것이 내 유별난 성품이긴 하다. 곧 내가 생각하고 정하면 그대로 정하는, 단출하고 명료한 언행을 구사할 수 있는 단독가구이기 때문에 ‘에이고’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도 모르지만 일을 당하는 이즈음엔 이런 환경 때문에 오히려 쓸쓸하고 외롭다.
이런 때, 먼 지평을 바라보며 움직이듯 멈추듯, 빗대볼 데 없이 허허한 벌판을 미동(微動)하는 나를 부축하는 친구의 뜻이 고맙다. 아무에게도 알릴 곳 없는 내 결혼식은 이렇게 용기 있는 내침으로 내 쪽 두 발이 우선 출발하고 있다.
꼭두새벽에 버스 종점으로 나가서 좌석을 차지한다. 이 좋은 날에, 자칫 늦게 나와 자리 잡지 못해서 그 먼 길을 서서 가야 하는 맥 빠진 출발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큼직큼직하게 버텨선 건물이 어깨를 붙여 맞춘 듯 가지런한 도시도 아니고, 흘러내릴 것 같은 이엉을 인 초가집이 넓은 마당과 텃밭을 거느리며 듬성듬성 널린 시골도 아닌, 정이 가지 않는 ‘읍’이다.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달리는 차들로 거리는 온통 부옇게 흙먼지를 덮어쓰고 있다. 한겨울로 접어드는 새벽바람이 바짓가랑이를 휘감고 횅하게 하늘을 날 때 함께 엔진의 폭발음이 바람과 함께 넓고 높게 펴 나간다.
곧 쓰러질 것 같은 허름한 건물을 근거로 마련된 종점 차부(車部)는 유령을 부르는 집, 내일이 없는 집 같다. 바람에 굴러온 종이 부스러기랑 낙엽이랑 구석마다 수북이 쌓였고 폐기름과 오물이 발 디딜 곳을 못 찾게 한다.
맑아야 할 내 마음을 어지간히 어지럽힌다.
내 좋은 날의 새벽이 이렇게 스산하게 출발하는 것조차도 숙명인지도 모른다.
새벽 바닷바람. 이 새벽에 융단을 깐 식장으로 가는 게 아니라 이름도 없는 어느 절간에서 냉수를 떠 놓고 올리는 고고(苦苦)의 혼례와 걸맞음을 내게 일러주고 말한다.
다만 마당 한 귀퉁이에 우뚝 선 전봇대에 높이 매달린 외등이 얼어붙은 한겨울의 이른 새벽을 환하게 비추며 내 발길을 밝히고 있어 내 마음 한구석을 비출 뿐이다.
전봇대의 배웅을 받으면서 먼 길을 떠나고 있다. 차 창문을 뚫고 들어온 불빛은 겨우 버스 안의 통로를 분간할 수 있게 하지만 버스 안은 여전히 냉기만 서려서 얼음장 위에 앉아있는 것 같다. 엉성한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코를 얼린다. 늘 보아오는 버스이지만 오늘은 유달리 허름해 보인다.
매끄럽지 못한 철판 위에 덕지덕지 철한 거친 솜씨의 색칠, 겨우 궁둥이 붙일만한 의자와 오금조차 집어넣을 수 없도록 좁은 공간, 각가지 철 붙임이 튀어나와 그나마 발 놓을 자리를 삐뚤게 한다.
듣자니 이런 버스는 머리와 뼈대는 미군의 군용차와 엔진이고 겉은 군에서 방어용 철조망 치는데 쓰는 철주란다. 드럼통 철판을 망치로 두들겨서 덮어씌운 수공품이니 이렇게 움직이는 것만도 요행이랄 수 있겠다.
나도 이와 비슷하다. 억지로 꿰어맞추고 ‘구르려’ 한다.
이렇듯 모든 걸 어렵게 꾸려 가는 어려운 세태에서 나만 반듯하게 뚫고 나갈 생각부터가 그릇됨을 알아차린다고 하더라도 인생의 먼 길, 안개 속을 내딛는 난 밑바닥을 기는 지렁이와 같을진대, 언제 다리와 발 달고, 언제 날개 달아서 남들과 뒤섞여서 인생을 구가한단 말인가?
옆에 앉아있는 친구는 내 생각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으니 묵묵히 차창만을 내다보고 있다. 내게 무슨 할 말이 있으랴! 자기의 경험을 상기시켜 본들 지금 나의 거취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호사였음을 입 밖에 낼 수 없을 터이다. 너무나 기우는 나의 출발에 빗대어 자기의 경험을 말할 수도 없고, 그래서 함구하고 있으리라.
태양은 언제 떠올라서 내가 타고 가는 버스 안을 녹일는지,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힐 따스한 물 한 컵이 그립다. 아직은 겨울, 뜬 해조차 언제까지 남쪽 하늘에만 매달려 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태양을 안고 돌 것이다.
샛별을 달고 떠나는 버스의 소음이 바람을 갈라 날을 세우고 끝을 말아 송곳을 만들어서 내 마음을 도려내고 무참하게 찌른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