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객

외통궤적 2008. 8. 2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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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형편에 비추어서 나를 따라갈 친구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 친구는 날 위해서 멀리 부산까지 가 주기로 작정하고 의원댁을 왕래하면서 일을 주선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고마울 일인지 모르겠다.  그 실, 나는 무리인줄 알면서 혼인을 강행하고 있으니 나나 의원 댁이나 서먹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례를 무릅쓰고 고집하고 있었으니 역시 이런 것이 나의 특질인 것인즉, 나는 곧 내가 생각하고 정하면 그대로 정하는, 단출하고 명료한 언행을 구사할 수 있는 단독가구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에이꼬’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일을 당하는 이즈음의 나로선 내 이런 환경 때문에 오히려 쓸쓸하고 외롭기만 하다.

 

이런 때, 먼 지평을 바라보며 움직이듯 멈추듯, 빗대볼 데 없이 허허한 벌판을 미동(微動)하는 나를 부축하는 친구의 뜻이 고맙고 또 고맙다. 아무에게도 알릴 곳 없는 내 결혼식은 이렇게 용기 있는 내침으로, 내 쪽 두 발이 우선 출발하고 있다.

 

부산행 길은 순탄치 않다. 이 좋은날에, 꼭두새벽에 버스종점으로 나가서 좌석을 차지해야하는 내 형편, 그 까닭인즉 자칫 늦게 나와 자리를 잡지 못해서 그 먼 길을 서서 가야하는 맥 빠진 출발이 될 지도 모르기 때문에 형편에 맞출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큼직큼직하게 버텨선 건물이 어깨를 붙여 맞춘 듯 가지런한 여느 대도시 같은 도시도 아니고, 흘러내릴 것 같은 이엉을 인 초가집이 넓은 마당과 텃밭을 거느리며 듬성듬성 널린 시골도 아닌, 도시도 아니요 시골도 아닌 ‘읍’이다.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달리는 차들로 해서 거리는 온통 부옇게 흙먼지를 덮어쓴 종점, 한겨울로 접어드는 새벽바람이 바짓가랑이를 휘감고 횅하게 하늘을 날을 때 함께 엔진의 폭발음이 하늘을 넓고 높게 치키고 있다.

 

곧 쓰러질 허름한 건물을 근거지로 마련된 종점 차부(車部)는 유령을 부르는 집, 내일이 없는 집 같다.  바람에 굴러온 종이부스러기와 낙엽이랑이 구석마다 수복이 쌓였고 폐기름과 오물이 발 디딜 곳을 못 찾게 한다.  맑아야 할 내 마음을 어지간히 어지럽힌다. 내게 이 좋은날의 새벽이 이렇게 스산하게 출발되고 있는 것조차도 내 숙명인지도 모른다.

 

이런 새벽이 융단을 깐 식장으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느 이름 없는 절간에서 냉수를 떠놓고 올리는 고고(苦苦)의 혼례와 걸맞음을 내게 일러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마당 한 귀퉁이에 우뚝 선 전봇대에 높이 매달린 외등이 얼어붙은 한겨울의 이른 새벽을 환하게 비추며 내 발길을 밝히고 있어 얼어붙은 내 마음 한 구석을 비출 뿐이다. 전봇대의 배웅을 받으면서 먼 길을 떠나고 있다.

 

차 창문을 뚫고 들어온 불빛은 겨우 버스 안의 통로를 분간 할 수 있게 하지만 버스 안은 여전히 냉기만 서려서 어름 위에 앉아 있는 것 같고, 엉성한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코를 얼린다. 늘 보아오는 버스이지만 오늘은 유달리 허름해 보인다.

 

 

매끄럽지 못한 철판 위에 덕지덕지 철한 거친 솜씨의 색칠, 겨우 엉덩이를 붙일만한 의자와 오금조차 집어넣을 수 없도록 좁은 공간, 각가지 철 붙임이 튀어나와 그나마 발 놓을 자리를 삐뚤게 한다.

 

듣자니 이 버스는 머리와 뼈대는 미군의 군용차엔진이고 겉은 군에서 방어용 철조망 치는데 쓰는 철주란다.  드럼통철판을 망치로 두들겨서 덮어씌운 수공품이니 이렇게 움직이는 것만도 다행이랄 수 있는 이 차처럼. 나도 비슷이, 억지로 꿰어 맞추고 구르려한다.

 

모든 것이 억지로 꾸려 가는 어려운 세태에서 나만 반듯하게 뚫고 나갈 생각을 하는 것부터가 그릇됨을 알아차린다 치더라도 인생의 먼 길, 안개 속을 내 딛는 나는 밑바닥을 기는 지렁이와 같을진대 언제 발 달고 언제 날개 달아서 남들과 뒤섞여서 인생을 구가한단 말인가?

 

옆에 앉아있는 친구는 내 생각 속으로 들어오지 안했으니 묵묵히 차창만을 내다보고 있을 뿐이다.  내게 무슨 할 말이 있으랴! 자기의 경험을 상기시켜본들, 지금 나의 거취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호사였음을 입 밖에 낼 수 없을 터이다. 너무나 기우는 나의 출발에 빗대어 자기의 경험을 말 할 수도 없어서, 그래서 함구하고 있으리라!

 

태양은 언제 떠올라서 내가 타고 가는 버스 안을 녹일는지, 지금은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힐 따스한 물 한 컵이 그립다.  이직은 겨울, 뜬 해마저 언제까지 남쪽 하늘에만 매달려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태양을 안고 돌 것이다.  샛별을 달고 떠나는 버스의 소음이 바람을 갈라 날을 세우고 끝을 갈아 송곳을 만들어서, 내 마음을 도려내고 무참하게 찌른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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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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