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편지

외통궤적 2008. 8. 2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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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38.020401 친구의 편지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고향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던 나는 생각과 말, 행동조차 점점 경상도 토박이가 되어간다. 말마다 사투리가 진하게 배인 나는 꿈의 고향 향기가 밴 한 통의 편지를 받고 있다. 고향 땅을 밟는 것처럼 가슴 설렌다. 5438.020401 친구의 편지‘진동협’. 얼굴이 하얗고 유달리 우람한 체구였던 친구, 깨끗한 인상의 그는 오늘 이 한 통의 편지를 보내서 나를 단숨에 ‘고저’읍의 학교로 끌고 간다. 모든 것이 낯설고 흥미롭던 시골뜨기 나의 학교생활이라서 그랬겠지만 내가 보아도 시골 때를 벗지 못했던, 그때의 현장으로 생생하게 나를 끌어가고 있다.

한 반에서 공부한 그 많은 친구의 이름을 다 잊고 있었으면서도 그의 이름이 남달리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그의 형의 후광이었지 않나 싶다. 형이 있는 ‘동협’이가 그렇게 부럽던 그때의 생각이 다시금 또렷이 떠오른다. 그런 그도 이젠 갈 수 없는 저쪽 하늘에 그 형을 두고, 나하고 같은 경로의 세파를 헤쳤고, 지금도 힘겨운 삶의 짐을 지고 허덕이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 편지를 돌려가며 읽었으랴! 그리고 그들의 아픈 상처를 또 얼마나 도려냈으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그들의 입맛을 쓰게 했는지가 그의 편지에 잘 드러나고 있다.

내 편지를 받았을 때, 편지는 군데군데 글자가 알아볼 수 없도록 해졌으며 너덜거리고 있었다는 친구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그들 틈에 끼어서 낯모르는 사람의 같은 처지를 공감하며 절규하는, 착각에 빠져서 함께 슬퍼졌다.

그리고 나의 호소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가슴을 치게 했고 그들의 심금을 울렸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들의 아문 상처를 헤쳐서 소금을 뿌린 것만은 틀림없을 것 같아 한편 죄스럽다. 지금의 나도 그들의 눈물만큼이나 흘리고 있다. 나는 그대로 오지(奧地) 경상도 고도(孤島)에서 받아보는 소식이기에 한층 그 눈물의 소금기가 진했고 끈적인다. 어쩌면 얼마 후에 이 편지도 얼룩져서 알아볼 수 없는 글자가 수두룩할지도 모른다.

‘진동협’은 성격대로 자신의 지난 일을 또박또박 적어가며 역시 고달팠던 일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군에서 제대하고 줄곧 서울에서 맴돌면서 청계천 개울가에서 손수레 노점상도 했고 노동판에 뛰어들어서 날품도 팔아보았고 지금은 어느 교회에서 일하며 지내고 있다면서 기막힌 사연을 절절히 적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내 편지를 접해보고 즉시 편지를 쓰고 있다고 하는 대목에선 글씨도 힘을 잃고 삐뚤어졌고 줄도 좁았다가 넓어졌다가 하면서 우리의 공간적 거리를 좁히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나 또한 격의 없이 그와 대화하면서 지나가 버린 먼 그리움에 함께 달려가고 있다. 이 그리움은 단지 편지 한 장이 손에 들려짐으로써 비로써 내가 고향에 현실적으로 들어갔고, 고향 사람과 의사를 교통하고 있다.

고향 사람 하나 없는 이곳 섬 같은 경상도 오지에서 벗어나는구나 생각되어서, 앉은뱅이 용쓰는 격이지만, 장래의 희망을 가꾸는 계기로 삼고 싶다.

오늘은 참으로 기분 좋은 날이다. 하늘에서 보낸 내 친구여 살아남아라!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자! 그리고 그때까지 서로의 위치를 좌표에서 지워지지 않게 또렷이 그리도록 연락하자! 친구여 다음 소식 때까지 건강하길 빈다.

괘지의 줄을 메워나가며 나는 끝날 줄 모르는, 하고 싶은, 보고 싶은 심경을 털어서 배어 절이게 적고 있었다. 그리고 두툼한 편지를 보내는 기쁨은 고향 가는 기쁨에 못지않다. 숨통이 트이고 빛이 들고 있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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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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