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는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내(川)밖에 사시는 ‘에이꼬’의 외가에서 묵은 처숙부는 장인을 모시는 일정이 움직일 수 없는 큰일이기에 이튿날 아침 억수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처 외숙 삼 형제 내외와 같이 우리 집에 오셨으나, 듣던 바대로 넉넉지 않은 우리 살림에 덧붙은 부끄러운 현장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간밤을 뜬 눈으로 보냈다.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져도 집주인인들 당장 무슨 대책이 있을 수 없으니 내가 이 물난리를 수습해야 할 형편이다. 딱히 피할 곳도 없으나 유해를 모시고 있으니 비울 수 없는 우리 방, 그렇게 밤새 동동거리며 지새면서도 뾰족한 묘안 또한 없다.
형님이 부쳐준 군용 작업복을 집에서 늘 입고 지내는 내게 갑자기 궁한 티가 하나 덧붙게 생겼으니 난감하다. 참으로, 궁한 티를 더는 내지 않으려 했는데, 또 하나의 녹색 군용품이 방 천장에 팔을 벌리고 매달리게 됐다. 해서 자그만 우리 방은 녹색의 푸른 군수품의 전시장이 되었다. 긴소매 달린 비옷을 쇠가죽 느려 펴듯이 늘리고, 네 귀퉁이에 끈을 매어서 천장에 올린 모양은 참아 그대로 보아 넘길 수 없는, 괴기(怪奇)한 모양새가 되었다. 빗물은 비옷의 솔기를 타고 흐르면서 방바닥 외진 한 귀퉁이에 놓아둔 양푼 위에 청량(淸亮)한 쇠 소리를 내면서 떨어진다.
하얀 보자기에 싸인 장인어른은 그 흰 빛으로 천장의 허수아비를 처량하게 바라보며 초 눈물을 소리 없이 흘린다. 장인 어르신은 피어오르는 향을 감싸 안고 가라앉은 빗소리 사이로 ‘장단 고저’ 맞추어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들으시며 고향에서의 첫 밤을 지내고 계신다.
혼령은 외관을 탓하지 않았고 홀로 초를 태워 눈물로 밤을 보내셨다.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영원히 묻힐 곳 고향에서만은 오직 가장 가까이 있는 한 딸자식으로써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당당한 처지에서 포근히 지내시도록 해야 하는데, 괴기한 모양을 바라보며 어수선한 하룻밤을 보내셨을 영령께는 말할 나위 없이 죄스럽다. 그 위에 내 사는 모습을 보는 살아 계신 이들의 애절한 마음을 생각하니 내 처지가 무색하여 쥐구멍을 찾는다.
들이닥친 처가 식구들은 허수아비의 천장 부상(浮上)에 억지로 눈을 피하며 말없이 분향하고서 처마 밑에 줄 섰다. 정좌하신 처숙은 작은 보따리 속에서 호미 모양으로 생긴 작은 면도칼 몇 개를 내놓으면서 고개만 끄덕인다. 아마도 미안하다는 뜻인가 보다. 처숙은 벌써 우리말을 잃고 있었다.
간간이 뿌리든 비가 멎더니 산허리를 띠 돌린 운무(雲霧)가 짙푸른 산을 성큼 우리 앞에 떠다 놓았다. 고개를 들어 봉우리가 보이는 턱 밑에 ‘에이꼬’의 고모네 밭이 있고, 그 언저리에 장인의 유해를 모신 일행은 우리 집에서 마지막 술잔을 나누고 모두 헤어졌다.
다들 떠나고, 허수아비는 그대로 천장에 매달려 있다. 장마철 날씨에 언제 또 내릴지 모르는 비를 저 비옷 허수아비가 우리를 지켜내고 있으니 난 허수아비 껍질의 보호를 받는 꼴이다.
허수아비 껍질은 천장에서 책상 위에 달랑 놓인 일회용 면도날을 내려다보며, 면도날 한 뭉치는 매달린 비옷 허수아비 껍질을 올려보며 ‘놀이마당 잘 찾아서 용케도 어울리네!’ 깔깔댄다. 비옷은 미국에서 왔고 면도칼은 일본에서 왔으니, 둘은 다 같이 '하꾸라이(はくらい舶來)'지만 앉은뱅이책상과 걸맞지 않게 한방에 놓여있다. 이 셋은 이승을 떠난 영령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귀를 막고 미닫이 쌍 문을 힘껏 닫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뚫렸다. 그 사이로 마음을 날린다.
한 시점의 사물, 허수아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바라보는 이의 내적 정서이다. 난 미래의 궁전을 꿈꾸면서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허수아비인 나로 보았고, 어쩌면 처숙은 당장(當場) 가난을 이기며 아버지를 모시는 ‘에이꼬’를 비긴 천사로 보았을 것이고, 세 형제 처 외숙 내외는 아직 태기가 없는 ‘에이꼬’에게 내리는 삼신의 형상으로 보였을 것이다.
고향에 계신 영령들이여 반드시 찾아뵈오리다.
그리고 훗날 이 모든 일을 토하면서 내 삶을 반추하리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