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에 따른 애환이 유달리 많았던 것은 아마도 내 활동범위가 그만큼 좁아서 일상의 자잘한 일들이 크게 매듭지고 충격적으로 기억되는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유년시절부터 있었든 신발기억과 함께 별나게 점철되는 신발 사건이 오늘도 그 한 매듭을 또 맺고 있다.
며칠간의 휴가 내어서 구미 공업 단지 취수장 공사 현장을 빠져나온 나는 대구의 중심 번화가에서 큰 마음 먹고 아내에게 줄 맞춤구두 주문 표를 샀다. 아내를 어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나 홀로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길을 상쾌했다. 아내에게 수 십 번을 권유한 맞춤 신, 시골의 읍, 여기에서 허다한 구둣방을 다 외어도 거절하던 ‘에이꼬’, 구두는 도시에서 맞춰야 한다며 막무가내든 아내, 그런 아내의 성화를 못 이겨서가 아니라 내게 맺힌 사연이 있어서, 나는 이번만은 아내의 의견을 존중했다.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만족하는 기색이다. 그러나 아직은 구두의 허상일 뿐 실물은 아내가 그 곳에 가서 발을 재고 얼만가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기뻐하는 아내를 본 내 눈에 물기가 어린다. 언젠가 홀몸일 때의 한 겨울에, 서울을 다녀 온 뒤부터 내 모르는 겨울구두가 내 눈에 띄었다. 구두에 민감한 나는 아내 몰래 밝은 햇빛 아래에서 그 구두를 자세히 보았더니 누군가 신던 헌 구두인 것을 확인하는 순간 모멸감에 머리를 쥐어뜯고 기둥에 박고 싶은, 그런 강한 충동을 느꼈다. 정말로 미칠 것 같았다. 도둑이 되는 심정을 적이 헤아릴만 하다. 이후, 나는 이를 악다물고 세월을 깎아서 구두를 짓기로 했다. 내 특유의 냉정한 본심에 호소해서 눈물을 삼키고 주먹을 바라보며 빈손을 확인이라도 하듯 털어 뿌리쳤다. 나는 아직 구두와는 먼 관계다! 애써서 외어본다. 그리고 살며시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아내는 서울을 다녀오면서도 여느 때와 다르게 행동하지 않았다. 모름지기, 일념으로 일하는 내 모습이 아내에게 믿음의 싹을 틔우고 있었으리라. 이 믿음이 헌 구두를 얻어신고도 덤덤히 이겨내는 인동초로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쪽마루 한 쪽 모서리에 얌전하게 모셔진 부츠의 흰 속 털이 내 가슴을 검게 태우고, 솔기가 닳아 회흑색으로 된 검은색 거죽은 내 살가죽을 하얗게 긋는 칼자국이 되어 나를 고문하고 있었다. 부츠는 철 아닌 철에도 그 자리에 있건만 나는 그 부츠의 자리를 옮길 생각을 털끝만치도 하지 않았다. 이 부츠는 내 마음을 곧게 다지는 인생행로의 이정표였기 때문이다.
한 철이 지나고 나서, 넌지시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자기에게 부츠를 준 언니의 고생모습을 되살리더니 수정 같은 눈에 눈물을 괴며 말하였다. ‘언니가 불쌍해!’ 아내는 고생하는 언니의 모습으로 부츠를 바라보고 늘 언니에 대한 기도로 지샜지만, 나는 아내에게 만금의 빚을 진 양, 부츠 속에 갇히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낡은 부츠 속에서 내가 헤어 나오는 날이다. 재고 신고 다듬고 신골 치는, 몇 번의 대구왕래 끝에 아내에 대한 무거운 짐을 벗었다. 아내는 하얀 이를 한동안 감추지 않았다. 살기가 한결 부드러워진 탓이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