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외통궤적 2008. 9. 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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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1.020527 공장

눈부신 태양이 온 땅을 달구고 있다. 이웃한 솔밭은 태양을 떠받들고, 솔잎사이로 바람을 불러서 시원하게 식히고 있다. 솔밭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벽돌 만드는 일에 익숙해지면서 내 생활도 점점 그 외양을 갖추어가고 있다. 작업복이 그렇고 작업화가 그렇고 널따란 밀짚모자가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던 어색함도 말끔히 살아졌다. 건설현장에 한번 나가면 며칠씩 들어오지 못하는 나그네 생활도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벽돌에서, 이때까지 보이지 않던 모양과 여덟 귀가 바르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젠 예쁜 모양으로 사랑스럽게 까지 느껴지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나도 모르게 달라지는 내 모습이 이상하다.  절망하면서도 그 속에서 무언가를 건지려고 애쓰고 있구나, 하는 자위(自慰)와 벽돌에서 풍기는 육 면의 반듯한 정형(整形)감에 사로잡힘도 안다.

 

오히려 내가 벽돌에 끌리고 있다. 벽돌조각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의 기운조차 느끼면서 굳어진 육모자비 돌덩이에서 풀 향을 맡게 되고, 지긋하게 이어오던 중노동이 오히려 내 마음을 파헤치는 활력조차 느낀다.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거꾸로 돈이 생겨서인지도 모른다. 어찌했던 나는 얼른 외면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 기회는 왔다.

 

일이 없을 때를 생각하여 수시로 만들고 쟁이고 굳히는, 장소가 필요했고 그러려면 일정공간과 도구가 필요했다.  이때 ‘에이꼬’의 이모부가 이를 도와서 터를 빌리고 자재를 조달하는 일까지 맡았다.  나는 수시로 만들어서 재놓으면 되는 것이다. 일은 힘들지 않았다.  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료는 모래와 시멘트와 물뿐이니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나갔다. 지극히 단순한 노동집약 공장(?)이다.

 

며칠 동안 같이 일하든 꼬마는 벽돌 일의 분량이 신통치 않고 팔려나갈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까 장래를 밝게 보지 않았는지 홀로 다른 짝을 구하여 별도로 뛰고 있다.  헌데 이 벽돌은 누군가에 의해서 보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상당수의 건설업자는 수요자가 재료를 부담하고 직접 제작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내게는 가정에서 소요되는 작은 분량의 수요만 있는 꼴이다. 그나마 가물에 콩 나듯 띄엄띄엄 찾는 것이 갈증 나게 한다.

 

세월과 씨름하는 한가한 장사다.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알지 못했던 것을 알고 체험하고 내 삶에 도움이 되려고 갖은 일 다 하면서도 이렇다 하게 똑 떨어진, 참다운 것을 찾지 못했었는데 이제 놀라운(?) 것을 찾아냈다. 그것은 상품(제품)의 효용가치에서 이 벽돌처럼 효용체증(遞增)의 물건도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점이다.

 

모든 상품은 지나면서 유행에 뒤져서 값어치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부패하거나 훼손되거나 더 쓸모 있게 만들어진 상품이 출하되면서 그 가치가 점점 체감되는데 반하여 이 시멘트 벽돌은 시간이 갈수록 굳어지고 단단해지므로 가치가 점점 높아지니 아무리 안 팔려도 걱정할 것이 전혀 없는, 땅 짚고 헤엄치는 편안한 장사다. 게다가 다른 상품은 취급 중 파(破)치가 나면 버려지고 마는데 이 벽돌은 반쪽이 되어도 또 그 반쪽이 되어도 아무런 상관없이 요긴하게 쓰이고 있으니 별 일이다.  아주 부서져서 가루가 된들 모아서 시멘트를 더 붓고 물과 함께 비비면 또 다른 모습의 벽돌이 되는데, 이렇게 몽땅 다 챙기는 장사인데도 나는 이즈음 시들하다.  물건이 싸이고만 있기 때문이다.

 

과연 내 삶이 이 벽돌처럼 단단하고 이 벽돌처럼 시간이 더해질수록 알찬 물건(?)이 되어 가는지 의심스럽다. 한낱 미물에게서조차 사람이 배울 것이 있거니와 무생물인 이 벽돌에서 주는 교훈은 만고의 진리인 듯싶어서 숙연해진다.  내가 만들고 가꾸고 시집(?)보내는 이 돌덩이에서 터득한 값있는 배움이 얼마나 내 앞날에 보탬이 될지 아직은 모른다.

 

사실 나는 또 불안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상호 보완적이고 교류되는 것인가?! 나무를 심고 물을 주듯이 벽돌을 뽑아 깔아놓고 물을 주고 있다. 나는 벽돌을 가꾸고 있다. 물뿌리개의 색은 벽돌과 어울리는 회색이건만 햇볕에 그을려서 벽돌과 전혀 다른 색조를 이룬 내 팔을 보면서, 자랄 때 아버지께서 내 체격조건의 약점을 들어 하신 말씀을 생각한다.

 

과연 나는 이일을 끝까지 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의 징후를 가늠하는 것, 움직이지 않는 벽돌의 이치와 이색(異色)지는 내 요동의 심사가 얽혀서, 잠시 벽돌더미에 어깨를 나란하고 서서 갈등하는 심기를 잠재우려 엇갈려 뇌다가 공장의 철조망 출입문을 닫아건다. 솔밭에서 시원한 소슬바람이 분다. 어둠은 벌써 발밑에 밀려와 있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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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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