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벽돌

외통궤적 2008. 9. 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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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2.020528 흙벽돌

두려움, 없다. 체면 찾을 처지도 아니다. 닥치는 것 모두 차례로 굴비 엮듯이 엮어나가자.

생명의 발원인 흙, 그 냄새를 들이키는 한 난 살아남을 것이다. 흙은 내 앞에 전개되는 모두의 우선이다. 이렇듯 흙이 직접으로 나와 인연이 있다고 굳게 믿어 서슴없이 맞아들이고 내 앞에 깔아서 밟고 주물러서 차근차근 꿰어 나가야 한다.

흙은 툇돌 밑에 조용히 숨어 자라는 손톱만 한 푸성귀의 어머니다. 눈 맞추며 손가락으로 그 언저리를 긁어 후비니 하늘거리는 풀잎이 그렇게 예뻐서 떠 옮긴다며 만질 때, 흙이 안기든 촉감 어렴풋하다.

이른 봄에 겨우내 묻어두었든 감자 구덩이를 아버지가 파헤칠 때, 하얗게 돋은 감자 눈을 손끝으로 만지며 흙냄새에 맘껏 취한 내 어린 시절의 감자에 묻은 그 흙냄새가 생생하다.

아버지를 돕는다며 모 쪄서 나르고 논배미에 던질 때 풀 향과 아우른 내 유년 시절의 그 흙냄새가 새삼스럽다.

‘강터 고개’ 초입의 물기 머금은 석비레 흙 언덕에 ‘방공호’를 파든 ‘일제(日帝)’ 때, 소년 시절의 그 비린내 나는 생흙이 역겨웠지만 싫지 않았다.

부모 슬하를 떠난 배움의 길목에서조차 바닷가 방어선 교통호를 파면서, 검은 옷이 하얗게 되도록 덮어쓴 그 운명의 흙먼지가 내 오늘을 열었다.

영욕의 철조망 속의 맨흙 잠자리가 그래도 나를 한자나 키웠다.

실지(失地)를 회복한답시고 으깨진 흙 위를 포복(怖伏)할 때 ‘불내 나는 어머니의 앞치마에 내 얼굴을 묻었고’ 난 거기서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흙은 나의 전부이고 나는 흙의 지극히 작은 먼지니 흙을 떠나려는 내 생각은 가히 백치의 발상이었다.

평소에 난 흙을 멀리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흙은 언제나 내 곁에서 떠나지 않는다. 흙과 더불어 사는 것이 내 진솔한 삶일진댄 난 흙을 외면할 수가 없지 않겠는가? 싶어서 담담히 오늘을 맞고 있다.



시냇가 제방 둑에 부려진 붉은 진흙이 적당히 물먹어서 차지고 탐스럽다. 흙은 수북이 쌓여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무엇이든 부닥치고 보는 성정인 난 지체치 않고 작업에 착수했다.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아도 몇 번의 시행착오만 거치면 될 수 있는 방편을 생활 속에서 익힌 터라 어려운 것은 없다.

지레를 이용한 압축형 벽돌 틀인데, 한 번에 한 장씩밖에 만들 수 없다는 것이 흠이다. 그러나 집 안의 보온이나 방한을 목적으로 쓴다면 이상 더 좋을 것이 없을 성싶어서 그대로 위안이 된다.

적어도 지금은 흙의 예찬일 수밖에 없다. 난 흙을 팔아먹는 ‘서 선달’이니 내 생각부터 흙을 생각해야 하겠기에 내 아가리에 남몰래 너스레 놓아본다. 투박한 질그릇이 어느 것이나 모나지 않고 미끄러지듯이 흐르는 선을 갖는 것은 부드러운 우리 마음을 손길에 담아내어 그렇고, 진흙에다 짚을 썰어 섞어 이겨서 흙집을 지으면 사시로 아늑하고 평온하여 우리도 도인의 경지에 이름은 우리의 발길이 진흙 속에 녹아서 그렇고, 하다못해 없는 이 등치는 고래 등 기와집일지라도 시주 바랑에 알곡 채움은 지붕을 이을 때 흙과 함께 주인의 혼이 지붕에 스며서 그렇다. 흙은 사람의 혼을 부른다.

난 시멘트 벽돌을 만들면서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았다. 비가 오면 섞어놓은 시멘트 모래가 비를 맞아서 묽어지니 만든 벽돌이 힘없이 부서지나 하루 전에 만든 물건은 오히려 물을 좋아하고 더욱 굳어지는 것이므로 비 오기를 바라는, 두 가지 바람이 수시로 바뀌어 변덕을 부리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쳤다. 그런데 요놈의 흙벽돌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할 때나 안 할 때나 줄곧 비 걱정이다.

한데다 벌인 일터이니 비 가리개를 하기는 해야 할 텐데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만들어 놓은 흙벽돌 더미를 겨우 짚으로 싸고 그 위에 판자 몇 개를 올려놓는 걸로 가름하는 데 여간 마음 쓰이는 게 아니다. 워낙 습기에 약하고 열기엔 강한 성질이니 비와는 상극이라서

‘소금 장수’ 어머니의 심경이다. 다른 한쪽에 시멘트 벽돌이 있어서 상쇄되는 이득은 있어도 내 손에 혼을 담아 만든 물건이 비 때문에 물러 터지는 꼴을 상상하면 질겁할 일이다.

숨 못 쉬는 돌 흙덩어리를 놓고도 이렇게 애태우는데 생 때 같은 아들을 어느 날 갑자기 잃은 우리 부모의 애절한 마음을 털끝만치도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나마 흙으로 얻는 작은 보람이 무슨 소용 닿으랴!

기울어 가는 해를 바라보노라니 어느새 북녘은 회색의 먼 하늘 아래 산등성이로 멀어져 간다.

잠시 가서 뵙고 싶어 눈을 감는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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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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