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철이 지났는데도 계절을 거슬러서 긴 팔의 칙칙한 군복 윗도리와 군복 바지로 차리고 손수레를 끌면서도 나는 도무지 남을 의식하지 않는다. 봄은 벌써 지났다.
초여름의 햇살을 피해서 그늘을 찾아 걷는 아낙들이 길 한쪽을 완연(完然)히 메우고 장바닥으로 물 흐르듯이 흘러간다. 해가 어디에 더 있는지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하게 강렬한 열기를 뿜어 꽂는 한낮이다.
밀짚모자 위에 해를 올려놓고도 나와 무슨 상관, 나 몰라 도리질하고, 제동장치를 생각지 않고 고봉으로 실은 손수레가 하수구 어느 쪽에 처박히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배포는 저항을 뚫으려는 잠재적 의식이며 내 밑에 자리 잡은 격돌의지(激突意志)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난 이미 취직되어 있고 일에 걸맞은 보수도 받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피한다는 것, 그것이 마음을 짓누르고 한낮의 팔베개를 떨치게 한다.
처음 끄는 손수레지만 겁내지 않고 달려들 수 있는 것은 일하고 싶은 충동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두 발이 달린 수레이고 내 발 두 개를 보태어 네 개의 발이 있으니 평형 유지는 할 것 같아서다. 딴은 내 처지에 맞는 마땅한 운송 수단을 마련할 수 없어서다. 거름을 실어 나르는데 차를 낸다는 것은 정서도 채산도 안 맞지만, 애초부터 내 마음도 없다. 지게가 마땅하련만 발 채 달린 바지게를 구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우니 부득불 개화된 세상의 이기(利器)를 굳이 외면할 이유야 있겠나 싶어서, 아니 딱히는 다른 방도가 없어서 이 길을 택했는데 도무지 몸에 찰싹 붙지 않아 겉돌고, 마음대로 힘을 쓸 수가 없어서 어눌하게 구르는 대로 딸려 간다. 업혀서 산에 오르는 기분, 널조각 타고 헤엄치는, 장갑 끼고 밥 먹는, 그런 기분을 하루 내내 느낄 뿐이다. 온몸으로, 힘을 다하여 짊어지고 간다면 아마도 짐을 부렸을 때 한결 뿌듯하고 개운한 맛을 볼 것이련만, 겉 가는 기분일 뿐이다.
장날의 장터 길을 가로지르는, 내 거름 짊은 수레와 몰골은 누가 보아도 어줍다. 팔방에서 모여드는 사람, 사람이 하나같이 갈음옷 차림으로 오는데 유독 나만이 모지다 못해 송곳같이 뾰족한 짓을 하고 다니니 유심한 사람은 이상하게 보았을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이고 내가 정한 날이고 내가 하는 일이니 나무랄 이 뉘고? 내 아무것도 없이 남의 것을 갖고 남의 성가신 물건을 치어주는 것으로 나를 위안하는 심리를 뉘 알리오! 다만 내 땀이 밴 조각 밭의 우엉만이 땅 밑에서 내 향기와 저들 양식인 거름 향을 즐길 것이라는 생각에 가득 차, 나 흥에 겨울 뿐이다.
그래서 복잡한 장터를 누비고 또 누벼 지나갈 수 있다.
시장바닥 한가운데서 나를 불러 세우는 동료 ‘박형’은 그 짧은 머리의 동그란 얼굴에 어울리게 두 눈을 똥그랗게 뜨며 내 복장과 내 모자와 내가 끄는 손수레와 넘치도록 담긴 걸음을 눈알을 휘 굴리며 번갈아 보다가 제정신을 차린 듯 말문을 연다.
‘서주사 어떻게 된 거요?!’ 난 길을 막고 이야기하기엔 너무나 이야기가 길다. ‘이것이 나다!!’ 한마디 던지곤 ‘내일 만나서 이야기하자!?’ 그도 나도 사람에 휩쓸려서 스치고 만다. 그는 날 이상히 생각했다. 단출한 식구인데 맞벌이에다가 막노동? 격무(激務)의 출장 후 모처럼 쉬는 날에 중노동을 하는 내 거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나를 두고, 이른 봄에 봄을 이고도 봄을 갈구하는 슬픈 종다리 울음을 연상하며 땅을 내려 보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지 모른다.
‘이것이 나다?!’
종다리는 아직 우짖고 있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