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외통궤적 2008. 9. 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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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8.020613 출장

출장을 기피할 수는 없다. 일선 근무의 대부분은 출장을 그 본연으로 삼아야 할 정도로 잦다. 간접세 업무란 탈세 방지를 위한 술도가에서 제조과정을 입회 또는 조사해야하고, 술집에 나가거나 점포를 수색하며 밀조주를 찾아 내야하고, 버스회사에 나가 버스를 타고서 승객 수를 세며 탑승객수의 실사를 하고, 극장에 나가 관객 수를 세며 입회조사를 하는 것이 주 임무이니 이런 일을 외면한다면 파면 당해야 할 판이다. 그래도 모두들 천연스럽게 잘도 해낸다.

 

처음출장은 고참(古參)과 한 조를 이루는데, 차츰 책무가 내게로 다가오며 내가 떨쳐 낼 수 없도록 보이지 않게 조여들면서 어깨에 지게 되는, 야릇한 형태다. 두 셋이서 사오일간에 일정 구역을 조사하는데, 줄곧 선배 고참에게만 실적이 있게 되면 결국 나는 무능력자로 될 수밖에 없게 되니 내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고, 그렇다고 철저히 직무본위로 행동한다면 그때마다 고향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나타나셔서 가로막고…, 그대로 어디론가 증발하고 싶다. 이런 심경이 나를 진종일 짓누르고 있다.

 

한곳을 두를 때는 그런 대로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두 번 세 번 계속 될 때는 같이 일하는 선배의 얼굴을 자꾸 처다 보게 된다. 이것이 인지상정인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할 바를 모르겠다.  마치 전장에서 자기 의사와는 관계없이 살상해야하는 전사와 같은 압박으로, 사람의 마음을 두들겨 예리하게 벼리는 것이다.

 

여기에 담금질까지 하도록 편성된 조의 내밀한 지령이 경찰견 훈련하듯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의 집 뒤지는 일이란 참으로 견뎌내기 힘들다. 당한 쪽은 죄책감 없이 조상 대대로 하던 숭조(崇祖)의 예(禮)로 술을 빚어 넣었건만 현실은 범법자로 단정하고 몰아붙이니 내가 오히려 죄짓는 심경일 뿐이다. 당하는 쪽의 죄책감일랑 황우일모(黃牛一毛)도 없을 것을 생각하면 무언가 자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서적 관행과 현행법의 충돌이다. 이는 내 소관의 먼 밖, 아주 아물거리는 곳에 있을 뿐이니 내가 끼일 틈은 없다. 일제통치가 남긴 악폐중의 하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관할 양조장에 들르기 전에 그 구역을 답사하여 시위(?)하고 양조장에 들르는 방법과 양조장부터 들렀다가 제공받은 정보에 의해서 출동하는 두 가지 방법 중하나를 택하지만 어떤 경우엔 이 두 가지가 다 적용될 때도 있다. 양조장 경영자의 성격이 그대로 잘 드러난다.

 

내가 보기에, 어떻게 하든지 시간을 끌어서 자기의 관할지역에서는 불상사가 없도록 하려고 온갖 술수를 써가면서 다음 지역으로 내몰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마을을 지키는 보수적인 양조장 겨영자가 있는가하면, 자기의 제품은 법적 규격을 지키지 않으면서 자세한 약도까지 그려주며 정보를 제공하는 지극히 상업적이고 현실적인 양조업자도 있으니 참으로 인간백태(百態)이다.  그들 나름으로 그 지역 유지라고 하는 사람들의 실상이 나로 하여금 이 세상의 특수 인간군(人間群)을 한층 더 깔아 보게 한다.

 

사오일간의 출장기간 중 첫 하루를 보내면서 내 마음을 온전히 다스리지 못하고 갈등과 후회 속에 어정쩡하게 보내고 저녁에 숙소에 들러서 고참 짝에게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며 위로하고 있다.  그도 처음에는 남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괴롭고 주저되어서 한 번의 출장을 그냥 백지 복명서를 냈었다고 하며 위로한다.

 

하다가보면 일의 맥과 요령을 터득하게 된다면서 내일을 위해서 오늘의 일을 잊자고 한다.  그렇다고 남의 일을 내가 가로채서 위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난감하다. 담금질은 이렇게 되나보다. 혼자 생각하면서 다짐한다.

 

'나는 생존해야 한다.' 취체(取締)대상은 일시거나 간헐(間歇)적이지만 나는 영속적 호구지책(糊口之策)이고 나의 본분인 것이다. 그러니 나와 인연 지어지는 모든 이여! 눈감고 한번만 나를 보아 넘겨주시오! 오히려 나를 도와주시오! 그러면 당신들의 후손 누군가가 반드시 잘 될 것이외다. 주제 넘는 상상으로 내일을 다짐하면서 스스로 담금질 하고 있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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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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