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털이 ‘시발’ 택시가 산허리를 힘겹게 오르며 한여름의 열기를 더하여 불이라도 낼 것처럼 뜨겁게 닳아 있다.
게다가 마주 오는 차조차 빠듯이 비낄, 좁은 자갈길을 달리는 택시는 우리 모두의 신경회로 마찰열을 보태어 받는 듯 열기에 차 허덕인다. 양쪽 문을 꿰뚫고 빠지는 뜨거운 바람이 있어 그나마 불기운을 누그러뜨리고 있다. 난 택시 뒷자리 오른쪽에 앉아서 손바닥처럼 작아지는 마을과 그 속에 깨알처럼 작아지는 지붕을 내려 보며 잠시 하늘로 오르는, 이루지 못한 꿈의 신혼 길을 생각하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자지러진다. 내 왼쪽에 앉은 동료도 맞은편 높은 산마루를 건너보고는 입을 악다물고 고개를 아예 왼쪽으로 돌려서, 산 깎인 자국이 볼품없이 뒤로 흘러가는 황토의 띠로 외면한다.
그는 잠시 흘러가는 황색 띠와 따라오는 먼지만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허리를 앞으로 당겨본다.
발 벗고 바지 걷어 올리고 웃통 벗은 앞자리의 운전기사에게 눈총을 쏘고는 체념한 듯 몸을 내맡기며 털썩 의자에 엉덩이를 던지더니 천장을 올려보다가 눈을 감아 버린다.
휑하게 던져질 것 같아서 몸을 사리며 계곡을 내려 보는 난 공포를 모른 채 앉아있는 옆자리 동료가 부럽기만 하다. 무언가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나마 앞에 앉은 동료 하나가 나보다 더 시야(視野) 트인 조수 자리에 앉았으니, 나로선 그것으로 위안이다. 그는 기절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내가 앞에 타지 않은 것을 요행으로 여기고 있으니 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택시가 뒤집히면 함께 변을 당할 텐데, 마치 눈으로 상태를 보는 사람만이 보는 그만큼 더 당할 것 같이 생각함은 어림없는 일인데, 이 또한 위안을 얻고자 애쓰는 절박함이다. 앞에 앉은 동료는 연신 운전사의 거동을 보며 못마땅한 듯 ‘천천히 갑시다!’만을 뇐다.
자갈이 튀겨서 차의 밑바닥을 치는지, 부러지고 깨지는 소리가 나는데도 기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날아가고만 싶은 듯이 듣는 척 만 척, ‘귀머거리’ 행세로 제 할 짓만 할 뿐이다. 급경사의 굽은 길을 돌 때마다 흙먼지가 차를 에워싸면서 눈을 뜰 수 없도록 만든다.
하루를 앞당기기 위해서, 하루를 벌기 위해서 영원의 길로 들어설 것 같은 후회가 번개같이 일지만, 지금은 다 소용없는 일이다. ‘함양’읍에 안착하길 눈감고 조용히 빌 뿐이다.
차는 구비, 구비 계속 오르고만 있다.
앞이 훤하게 트이더니 들판이 내려다보이고, 무섭게 달려오든 건너편 산이 멀리 오른쪽으로 비껴나 사라지면서 차는 갑자기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아마도 큰 산을 넘었나 보다. 흙먼지가 말끔히 빠져나가고 시원한 산바람이 머리칼을 날린다. 옷자락도 펄럭인다.
앞에 앉은 동료가 비명을 지른다. ‘어!? 어?!, ‘스톱!’ ‘스톱!’ 짤막한 네 마디와 함께 택시는 심한 마찰음을 내더니 기우뚱하며 멎었다.
정작 죽을 순간엔 죽음을 느끼지 못했다. 인간 두뇌의 한계인 것을 참으로 실감한다. 문을 여니 차는 공중에 매달린 듯 발을 디딜 수가 없다.
난 고함쳤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 좀 하고 내리자! 자칫 한쪽으로 쏠려서 전복될 수도 있으니 오른쪽 한 사람이 내려서 상황을 보고 행동하자!’ 그대로 앞자리에 앉았던 동료가 허리를 굽히고 발을 뒤로 드리우는 사이에 우리는 되도록 왼쪽으로 치우쳐 앉고는 땅에 발을 내리도록 일렀다.
죽음의 순간을 맛본 우리는 그대로 한쪽에 모여서 천 길, 만 길 내려다보이는 골짝에 눈을 멈추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분명 살아있다. 어지러워 이마에 손을 대고서 한참을 돌처럼 굳어 서 있었다. 조심스레 주위를 살폈다. 차는 네 바퀴로 자갈길을 깊게 파며 오른쪽으로 치우치고, 오른쪽 앞바퀴가 길 밑에 빠져 있다.
‘그까짓 휘발유 몇 방울 아끼려고 기어를 빼고 가느냐!!’ 앞에 앉았든 동료의 입이 터졌다. 이 말에 새파랗게 질리는 운전기사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됐는지 모르는 우리에게는 앞자리 동료와 운전기사의 말이 딴 나라말로만 들릴 뿐이다. 도대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겠다.
아무튼 목숨은 모두 건졌다.
읍으로 가는 막차 버스를 놓친 우리는 해가 아직 많이 남은 여름날의 긴 저녁 시간을 허송하게 되었다. 아쉬워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에 무언가 의기가 상통했다. 묘수를 내서 시간을 살리기로 했다. 지금 무슨 수를 써서 읍에 나간다면 출장거점인 ‘함양읍’에서 근무처가 있는 ‘거창읍’으로 가는 버스는 얼마든지 탈 수 있겠고 쉬이 집에 갈 수 있으니 어떻게 하든지 ‘함양읍’으로 가자는 것이다. 그러면 하루를 벌게 된다.
숙박을 단념하고 택시를 불렀다.
‘휴천’면과 ‘함양’음 사이에 지리산의 한줄기가 가로놓였으니, 버스는 큰 산을 우회하며 고개를 넘고 고지의 펑퍼짐한 길을 빙빙 돌며 골짝의 물길을 따라 하루에 두 번밖에 왕복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오지에서 막차를 놓쳤기에 무모하게 먼 거리를 택시로 가기로 했다. 택시가 다니는 산판(山坂) 지름길이 이렇게 험한 길인 줄은 미처 몰랐고, 기어이 이 길에서 사고를 당한 것이다.
앞에 앉은 ‘박종렬’은 외아들이다.
난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운명적 미천아(微賤兒),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용하게 살아남는 내 목숨에 특별한 의미를 새긴다.
모든 건 신의 계획된 질서의 한 부분이고 결과이면서 미래의 시작인, 오묘한 다스림을 느끼고 있다. 오늘 내가 고비를 넘기는 것도 당연한 내 명줄의 이음인가? 아니면 앞에 앉아있는 동료? 그도 아니면 옆에 앉았던 동료? 그 누구의 사주팔자에 의해서 도움받았다고 해도 결국은 내 운명의 한 지탱 부분으로 그도 불가분(不可分)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죽음길에서 살아난 지난날 모두가 꿰인 구슬처럼 차례로 떠 오른다.
아직도 명치끝에 커다랗게 남아있는 뜸을 뜬 자국은 철부지 때 나를 죽음에서 건져낸 증표임을 어머니께 들어서 알았고,
철들어서는 어른들 몰래 큰 뽕나무에 올라 오디를 따먹다가 휘어잡은 가지가 부러지면서 떨어졌지만 아래 가지에 걸려서 손끝 하나 다친 데 없이 멀쩡히 다른 가지를 붙잡았던 짓을 어른들께 숨긴 일,
또 어느 해인가 동무들하고 버찌 따러 산에 올라서 낭떠러지벼랑에 가로 뻗은 벚나무에 올라가 입이 시퍼렇도록 실컷 따먹은 뒤에 내려오다 미끄러져서 떨어졌지만, 바위 턱에 걸쳐서 목숨을 부지한 일,
이른 봄에 ‘쌍가마’네 집에서 동무들과 어울려 소꿉장난하다가 온 동네를 태웠으면서 다치지 않았던 일,
파열하는 폭탄 속에서도 생생한 나,
많은 사람이 죽어 가는 수용소 안에서의 이질(痢疾) 앓으면서 뼈와 거죽만 남아 사십 킬로그램의 체중으로까지 되는 탈수증에도 살아남은 일,
퍼붓는 총탄을 뚫고 무사히 수용소에서 탈출한 일,
일시적 오기로 얻은 몹쓸 병으로도 망가지지 않는 내 강인한 체력,
이런 지난 일과 함께 오늘의 명줄 이음이 예사롭지 않아서, 신께 감사하고 있다.
분명, 한 인간의 보존 가치와 살려둘 이유가 있음을 알아야 할 텐데 아직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다.
웬일인지 엄숙해지고 두려움이 인다. 나의 수호신을 망각하고 작은 일상에만 열심인 것이 죄스러운 느낌이다.
집에서 일어났던 일을 어른들은 감쪽같이 모르셨다. 아셨더라도 미친 듯이 쏘다니는 날 제지할 길은 없었을 것이지만 할머니와 부모님은 그 어딘가에 간절히 빌었을 것이다. 모든 짓이 신들린 사람같이 혼자 이루어졌지만, 난 늘 부모님의 눈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그래서 보호받았는지도 모른다.
명은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어딘가 멀리서 나를 조정하며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어놓아 죽을 위험에 처할 때 당겨 건져내는 것 같은 강한 줄, 그 줄에 매달려 있는 나를 보고 있다.
이렇게 내 모든 생각과 행동을 꿰뚫어 보는 힘을 느끼면서 겸허해진다.
아주 천천히 굴러가는 택시 속의 네 명은 어느, 누구의 염력으로 무사한 것인지를 따지지 않고 묵묵히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뜨거운 여름날 오후인데도 소름 끼치는 냉기를 느끼며 내려가고 있다.
시간에 얽힌 아쉬운 것, 공간에 흩어져 있는 사물, 어느 것 하나 사람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치를 어렴풋이 깨치면서도 곧 내일을 위해 마음 돌리는 무지한 나를 수호신은 어떻게 책망할는지, 그것이 또한 두렵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