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얼마나 기쁠까? 누구이건 간에 일단 주는 즐거움을 맛보고 받는 이의 흐뭇한 얼굴과 귀에 닿도록 올라가는 입가의 미소를 상상하며 이름을 쓰는 그 즐거움, 난 겪어보지 못했지만 신나고 즐거운 일일 것 같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문서가 증오심으로 쌓인 나뭇가리 위에 불씨가 되어 던져지리라고 생각하니 펜대가 손에서 흘러 흔들거린다. 이 편지를 받는 이의 가슴엔 분노의 불길이 일 것이다. 내가 직접 검거하진 않았지만 내 손으로 작성하여 보내는 ‘범칙 통고서’를 받아보는 당사자는 관련된 모든 직원에게 저주의 화살을 퍼부을 것이고 그 속에 나 또한 포함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부부간의 원성이 천둥 치며, 모자 모녀간의 한숨이 땅 꺼뜨리는 상상에, 그만 눈 귀에 생생히 우리 어머니 할머니가 떠오른다.
그들보다 먼저 내가 긴 한숨을 몰아쉰다.
누군들 궂은일 하기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만, 나도 남에게 폐 되는 일은 일상에서 되도록 멀리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선택의 기회를 놓치고 고민하는 것이다.
유약함을 보이면서도 물려받은 조상의 덕을 이어받고자 노력함이 오히려 날 이날까지 살아남게 하는 다른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법의 이름을 빌려 일하는 모든 이가 나처럼 자책한다면 세상이 한시인들 버티어 나갈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묘하게 분업화하여 자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검거한 직원의 심경은 현장에서의 책임을 벗고 서장과 지명(指命)한 검사에게 핑계 대고 검거한 다음에는 심정적으로 판사의 재량에다 떠넘기고 자기는 ‘나는 몰라’라 양심의 울타리 속으로 숨어든다.
마치 사형장의 사수(射手)들이 저마다 한발의 무실(無實) 공포탄이 자기가 쏘는 총에 장전(裝塡)되었으리라는 실낱같은 희망과 돌파구의 위로를 받듯 한다.
하지만 난 이런 고뇌의 울에서 한발 물러나 있으면서도, 내 손으로 주소와 이름과 범법(犯法) 사실을 적시(摘示)하고 통고하니 가책의 테두리를 벗어남직 한데도 그렇지 못하고, 범칙자의 이름을 쓰는 게 적지 않게 부담된다.
도장 찍는 사람은 기계적으로 찍고 우표 붙이는 사람은 그냥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하는 대로 할 뿐이니 꺼림이 없다.
남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도 옛사람은 조심했으련만 내 손으로 박아 써서 가슴에 앙금을 앉히는 일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군다나 벌금을 내지 않아서 검찰에 고발할 때 또 한 번 이들의 이름을 박아 써야 하니 영 일이 신나지 않는다.
그래서 난 한 방법을 택하면 싶어서 고민한다. 무작위로 일부의 범법 혐의자를 통고 처리에서 누락시킨다면 그는 나로 하여 뜻밖의 혜택을 받을 것이니 나도 이 굴레를 벗어나고 그도 모르는 은덕을 의아해하면서도 자기 선덕(善德)의 결과이려니 여겨서 더욱 선행의 길로 나갈 것이란 생각까지 미쳤으나 나의 그런 행위가 새로운 범법행위로 된다는 생각에 미쳐서는 다시 머리가 띵하여 맥이 빠지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창밖에 먼 하늘, 흘러가는 구름에 세월을 실어 날아본다.
팔월의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 피울 때 난 어린 ‘황국신민’으로 되어있었고 해방을 갓 맞은 우리 어린이들은 모든 가치가 혼란에 빠져있음을 작은 눈을 통해서 비쳐 보고 있었다.
법질서는 ‘대동아 공영권’의 미명으로 둔갑하여 전쟁의 틀에 갇히고 이 틀에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었다. 어린이들은 학교가 생의 터전이고 전부였으니 ‘수신(修身)’하나가 어른들의 그 모든 데 겉칠하고 있어서 범법이나 변칙이나 요령은 그 어휘조차 가늠 짓지 못했다.
매일 아침, 조회 때마다 동쪽의 ‘궁성(宮城)’을 향해서 허리를 깊이 숙여 절할 때도 아무런 거부감이나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일본’화 되었다.
총동원령은 작은 마을에서도 현실로 나타났고 전황(戰況)은 우리에게 천황에 대한 맹세로 이어졌다. 각반(脚絆)을 한 유지나 청년들은 우리를 설레도록 적극적 활동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말씀이 법이고 순사(巡査)의 말과 행동이 영이고 잔소리꾼 ‘애국반장(あいこくはんちょう愛國班長)’이 집달관이었다. 법은 아주 먼 곳에 있었다. 전쟁 탓이리라.
우리 어린이들의 세상은 광활(廣闊)했으나 반면(半面) 어른들 세상은 좁게만 보이든 시절이고, 어른들의 하는 일이 우습게만 느껴지던 때여서 그랬겠지만 난 재판소의 이름조차 몰랐고 개념조차 없었다. 분쟁이 내게 비치지 않았고 거역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해방의 소용돌이에서 새 질서를 찾아야 하는 우리 어린이들은 각자의 상상으로 그 질서를 생각할 때였다.
‘노동당’의 주관으로 치르는 최고위원 선거에서 지역의 ‘노동당’ 간부가 우리 집 여인숙에서 ‘외상 침식’을 하고는 선거가 끝 난지 육 개월이 되어도 돈을 주는 사람이 없어서 이를 ‘노동당’ 지역위원장을 상대로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든 가보다.
재봉틀과 벽걸이 시계와 또 잡다한 물건들이 집안으로 들이닥침으로써 이 사실을 어림하여 알게 되었다. 분명히 떼어먹은 사람들에게 벌이 내려졌고 그 대가로 경매가 이루어졌고 유찰(流札)이 거듭되지 않았나 싶은데, 어떻게 우리 집까지 들어온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끼어들지 않는 내 성정으로 인하여 끝까지 어른들에게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 그 실상을 정확히 모르고 있다. 아마도 아버지의 억울한 호소가 시퍼런 법을 쥔 높은 분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대대로 어질게 농사만 짓는 우리의 집안에서 법을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막상 내가 법의 이름으로 남의 이름을 쓰게 되니 이 굴레에서 하루빨리 멀리 달아나고 싶을 뿐이다.
역부족이다. 가만히 남의 이름을 쓸 때는 자꾸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법정에 섰을 때 아버지의 용모가 틀림없이 판사의 마음을 흔들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외모와 어눌한 말씀에서 판사는 하얀색을 보았을 것이다.
난 희고 부드러운 재질이 되고 싶다.
호구(糊口)의 절박함이 나를 잠식하는 이 칼날이 되어 내 마음을 헤집어 놓으니, 정신과 육신의 접점조차 찾을 수 없는 이 심경을 어디에다 하소연하랴?
창밖의 먼 하늘 흰 구름은 그대로 가볍다.
흐르니.
턱 바친 손에 납덩이처럼 가라앉는 내 생각을 너조차 걷을 수가 없구나!/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