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수정수

외통궤적 2008. 9. 14.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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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1.020813 취수정수

낙동강줄기가 발밑에서 좁아지다가 다시 치마폭처럼 넓어지며 멎은 듯 흐르는 듯 남쪽으로 뻗다 다시 좁아지며 굽어서 멀리 하늘과 산이 맞닿은 사이로 숨어버린다. 발아래 강물은 병풍처럼 두른 절벽바위를 파고들어 짙푸르고, 강폭은 뛰어 건너오라는 듯 바짝 다가와 좁아져있다.

 

바래려는 무명 필(疋)을 하얗게 깔아놓은 듯 모래사장이 이어 뻗어 활처럼 휘어 굽은 강 맞은편에 백로 한 쌍이 한가로이 노는 풍광을 바라볼 수 있었던 이곳에 어느새 암반폭파의 폭음과 착암기(鑿巖機)소리와 굴착기(掘鑿機)소리에 바위와 언덕이 깎였으니 조망대(?)는 사라졌다.

 

망치소리와 고함소리가 드세더니 그새 산이 절반으로 줄면서 강바닥이 보이고 강 건너 버드나무가 눈썹에 와 닿도록 산자락 절벽이 수면 위까지 깎였다. 이제부터 다시 강바닥 밑으로 파 들어가기 시작하는 한 참의 공정(工程)이니 마을은 마치 공사를 위해서 태초부터 생긴 듯 활기차고 온통 공사와 관련된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이들은 내남없이 돈줄을 잡아 움켜쥐려는 듯 기세 등등하다.  한결같은 작업복 차림이다. 밥집, 술집, 잡화가게, 고물상, 옷가게, 투전꾼, 셀 수 없는 재간꾼들이 모여서 난리를 피우고 있다.

 

이 틈바구니에서 나를 지킨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일 것 같아서 마음이 쓰인다. 마음이 흔들려 부정의 함정에 빠질까 두려워서 그 바탕을 뛰쳐나온 나, 다시는 물들지 않을 맑은 물에서 놀려고 어려움도 마다 않고 옮겨 디뎠지만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 내 마음을 채워 줄 깨끗한 물만은 아닌 것을 요즈음 뼈저리게 느낀다. 유혹은 언제나 어디서나 인간사회에서 싹 터 자라는지?

 

가족을 떠난 외로움은 그만한 대가가 기대되어 참지만 어떻게 생활하느냐가 또한 외로움에 버금가는 고통으로 남는다. 마을은 환락의 도시로 바뀌어가고 있다. 문밖은 유혹의 붉은 등뿐이다. 비록 각자의 권리로 행동하는 자유를 어느 누구도 방해 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경영자는 그 대로, 각 공사의 책임자는 그 대로, 그 소임중의 하나는 구성원들이 함께 건전히 발전하게 하는 것임을 알아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것은 공사(工事)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 됨됨이를 벼리는 것이어서 소임을 맡은 사람마다 가외로 나름의 불문율을 정하고 지키게 하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취침과 기상시간을 어기지 않는 군영(軍營)식 운영은 구성원들에게는 필요한 방법이다.

 

이를 수행하는데 내가 속한 공구(工 區)의 소장은 솔선하였고 참으로 좋은 본이기에 모두는 외면하질 못한다. ‘한산(閑散)인부’를 숱하게 거느리고 다녀도 꼭 이런 자기절제의 규칙만은 심중에 굳히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일을 아무리 잘 하더라도 외면한다.

 

사생활이 삐뚤어졌다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제 잘못을 뉘우칠 때까지는 배제하는 철칙을 고수하는 것이 마음에 와 고개가 끄덕여진다. 비록 그가 배운 것이 적고 고집스러워도 나는 그의 지침을 환영하고 동조했다. ‘왜 나는 일을 할 수 없느냐’의 공박에 대꾸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것은 사생활의 간섭이기 때문에, 더욱 대놓고 말을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어떤 경로를 통하던지 스스로 반성하고 시정하는 기색을 발견하고서야 채용하는 세심한 일면도 있다.

 

아마도 소장은 자신의 선험적 뼈아픔을 통해서 어떻게 해야 어려운 처지를 벗어날 수 있는지를 터득한게 아닌가싶다. 그는 투박하여 다듬은 말을 할 줄 몰랐다. 어릴 때부터 공사판을 따라다녔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는 질박하니 숨김이 없고 꾀를 부릴 줄 몰랐으니 수틀리면 고작 사장을 만나서 외마디로 ‘안 나온다’는 말을 던지고 그대로 실천하는 외골수인 사람이다. 그런 그의 행동은 공사판에서나 통하는 무지렁이 짓 외에는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이해되는 점이다.

 

이와는 달리, 제2공사구역인 정수(淨水)장 공사의 소장은 상반되는 점이 있어서 가끔은 나를 당혹케 한다. 그는 지성인답게 사람을 꿰뚫고 그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지만 그만큼 지능적인 기교로 사익에 공익의 탈을 씌우고 위장한다. 알아차릴 만한 모든 이들을 포섭하고 에워싼다. 나도 그 대상의 예외는 아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단호하다. 유혹에서 벗어나야 나를 찾는 것이고 그 길만이 내 앞날을 보장받기 때문인 것을 2공구(工區)소장에게 설명할 이유는 없었기에 그는 늘 이상한 사람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여러 방법으로 타진해 왔다. 그러면서 그의 태도를 확연하게 드러내지를 못하고 연막만을 치고 있다. 이렇다보니 앞서의 무식한 책임자가 하듯이 개인의 장래걱정은 아랑곳없이 직원들과 인부들을 한 식구로 대하질 않고 격조 높게 행동함으로서 또 다른 면을 보여주었다.

 

같은 일을 하면서 일에 임하는 자세가 서로 다른 두 사람을 보면서 1공구소장은 평생으로 함께 할 사람으로 대했고 2공구 소장은 이 공사만 한정적으로 책임질 것을 생각하고 있음을 내가 읽을 수 있었다. 하면서, 사람의 됨됨이를 가늠하는 내 나름의 지혜도 터득했다고 할 수가 있다.

 

천장높이 매달린 어두운 백열등 밑에서 무릎을 꿇고 허기진 지적 갈증을 추기는 젊은 한산인부를 자식같이 끼고 도는 1공구소장의 면모가 늘 겹쳐지며 내 외출을 발 묶는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내게 이런 그림자의 속박인들 없었으면 또다시 유혹의 구렁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배움은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쫓는 길임을 아야 함이 옳은 듯하다.

 

집채 같은 물을 물길을 만들어 끌어올리는 공사장 소장인 무학(無學)의 진솔함과 수정같이 투명한 맑은 물을 만들어서 돌리는 정수장의 지식인 소장의 투명한, 비닐로 포장한 예리한 지식인의 교활(狡猾)이 내 머릿속을 혼합 교차하면서 인간사의 교묘한 균형과 어울림을 새겨도 본다.

 

농촌의 산야가 허물어지며 변모되면서, 그동안 그나마 고향의 정경을 이끌어내던 내 마음을 사납게 만들었고, 사람 사람의 성격을 읽어보느라 이래저래 황폐한 불모지로, 나조차 이끌려 만들어가고 있는 듯싶어 서글프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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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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