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근무

외통궤적 2008. 9. 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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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7.020610 조조(早朝) 근무

극비리에 추진되든 합동단속이 드디어 다가왔다.

전 직원이 운동화를 신고 일제히 약속된 지점에 모여 자타의 기동성을 확인하고 있다. 새벽공기가 싸늘하다. 부스스 일어나는 팔뚝의 솜털을 쓸면서 편성된 조에 합류하여 어둠을 뚫는다. 골목을 누벼가면서도 어쩔 줄 모르는 내 거동에 불만인 내 자신이다. 이런 때, 되든 안 되든 설치고 떨쳐야만 무언가 그 결과를 얻을 텐데 뒷짐 지고 남의 꽁무니만 따라다니고 있으니 민망하다. 오랫동안 외근을 하면서 겪고 닳은 선배들은 발달한 후각의 즉각적 반응으로 돌진해서 덮친다.

이름하여 범법이지 그 실상은 살기 위한 몸부림의 한 단면일 뿐이다. 판매처와 연계하여 공급하는 주류밀조(密造)자는 발각되면 일단 물건을 놓고 도망가기 일쑤다. 그것은 그들의 판매용 밀조주가 자가용 밀조주보다 훨씬 무거운 벌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범, 아니 초심자는 물건이 아깝고 아쉬워서 우물거리거나 술동이를 들고 움직이다 퇴로를 봉쇄한 단속직 원과 마주치면 그대로 응대해서 물건을 압수당하고 전말(顚末)을 밝히게 된다. 나 혼자만 같았으면 방면하고 싶다.

일행 모두는 나 같은 마음이겠지만 가련한 환경에서 불우(不遇)한 날을 보내는 이 어머니에게 아무도 도울 수 있는 운을 뗄 수 없도록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계획적으로 합동 단속하는 것이니 눈을 지그시 감고 입을 한일(一)자로 그을 뿐이다. 누구의 어머니인지, 어머니는 꼼짝없이 당하고 마는데, 듣자니 분을 못 삭인 이는 압류(押留)물을 파괴 훼손하면서 거칠게 항의하는 이도 있는 모양이다.

오늘, 난 생계를 어렵게 꾸리는 빈민가를 여러 집 드나들면서 많은 것을 생각한다. 국가는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할 책무가 있건만 공권의 힘으로 이들의 생계 수단을 차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분명히 안 되는 것은, 굶주림을 면할 별도의 식량 거리를 들고 다니면서 이런 단속을 하는 일일 것이다. 이렇게 하면 얼마나 좋겠나 싶은 어린아이 같은 생각도 해본다. 아니면 적당한 일자리를 마련해서 그 취업(就業) 표를 주면서 단속한다면 그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을 선무(宣撫)의 효과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리하지 못하고 그들의 연명 수단을 일방적으로 차단만 한다면 우리의 체통은 그들에게 한낱 귀찮은 깡패의 집단으로 비칠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손바닥만 한 행주치마 위에서 한 나라의 공권과 한 인간의 살 권리가 충돌함을 목격할 때 적이 자괴감을 떨칠 수 없는, 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처음이니까 뒷짐 지고 따라만 다녀도 어영부영 넘어가겠지만 별도의 특명을 받는다면 나도 어쩔 수 없는, 비정한 사람으로 변모할 것이란 생각을 하니 내 성정과 동떨어진 이런 직종에 굴종하느니 다시 흙과 씨름을 하는 편이 낫지 않겠나 하고 후회하는 순간도 있다. 고개를 일부러 돌려서 내 앞에 벌어지는 범법의 현장을 애써서 외면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난 이제 못 볼 것을 보고 있는, 그런 기분이다.

깨진 단지 조각을 들어 땅에 후려 던지고 그 위에 치마폭을 깔고 앉아서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곱게 빗은 쪽 머리가 풀어질 듯 흔들리더니 부르르 떨며 부엌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내 머리가 아찔하다.

내 증조할아버지를 모신 우리 선산에서 집 지을 재목을 아버지가 베었다고 해서 찾아온 일본인 살림 간수(看守)에게 비는 할머니의 애절한 호소를 떠올리며, 이것은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니라 이(異)민족 간의 처절한 생존의 싸움 같아서, 숙연해지기도 한다. 우리는 같은 핏줄을 이어받았는데!



우리 어머니가 자식 공부시키겠다고 여인숙 영업을 할 때, 어머니 혼자서 경황이 없으셔서 숙박계(宿泊屆)를 내지 못해 ‘분주(分註)소’ ‘내무서 직원’ 한테 호통 맞는 어머니를 떠올린다.

거꾸로 내가 분노할 것 같은 야릇한 의협심마저 일고 있다. 우리는 같은 하늘을 쓰고 있는 사람일 텐데!

상념은 일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면서 나를 괴롭히고 있다. 역시 난 이 일의 적격자가 아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길이다. 최선을 다하자.



골목마다 아침 연기가 피어오른다. 해는 동녘을 훤히 밝히고 있다. 매캐한 아침 연기가 술 냄새를 실어서 널리 흩고 있다.
냄새야 숨어라! 잦아라!
그래서 내 앞에서 몹쓸 일들을 숨겨버려라!
그리고 태양아, 어서 솟아서 우리를 되돌려라! 그래서 평화를 심어라! 혼자 뇌여 본다./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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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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