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책상만 평평히 깔린 청사엔 담 넘어 들판의 벼 이삭 패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데, 64분 음 박자 주산 알 소리가 정적 속에 이어진다. 소리는 이따금 32분 음 박자로 숨 고르면서 부드럽게 이어진다. 한동안 계속됐다. 갑자기 다른 한편의 주산 알 소리와 부닥치며 내 신경이 곤두선다. 불협화음이다. 일정한 방향으로만 부는 순풍이 좋다. 장단고저(長短高低)가 얽혀 음계와 박자가 물기를 미처 흡착하지 못하고 넘치듯, 산채와 육류와 부드러운 참기름이 밥그릇에 얹혀 한데 비벼지지만 씹으며 맛보기 구실을 하는 이가 부실해서 제대로 그 맛을 보지도 못하고 소화불량마저 걸리듯, 넘쳐 내 귓등으로 흐르는 소리다. 그 소린 조금 전까지의 주산 알 소리와 관목 잎 새를 쓸 듯이 새어든 바람이 아우러지던, 익숙했던 소리와 완연히 달라서 내 관자놀이를 움직였다.
일상에서 나를 깨워 깊은 못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주산을 다시 놓으려 훑는 소리는, 숨을 몰아붙이며 판소리를 뽑아내다 잠깐 숨 고르듯 절박하고, 주산 알 숨 골라 훑는, 소리는 소리꾼의 부채 손바닥처럼 고비 넘기듯 불안에 차 있다.
여느 날과 달리 주산 알 소리의 숲이 날 거부하고 있다. 소리는 각각(刻刻)으로 나를 조여, 조용히 길게 훑는 내 생의 주산 알 소리를 점점 크게 들리게 한다.
주산 알 소리는 모두 멎었다. 탕. 탕. 탕. 주판을 세로로 놓는 소리가 군상의 지루한 삶에서 짧게 한 토막 쉼표를 찍었다. 손을 저어 신호를 묵시한 나는 그들과 함께 나가지 않았다.
홀로 있는 청사에 고요가 밀려들더니 사무실은 공허(空虛)로 가득하다. 벽에 매달린 시계가 땅덩이를 들어 올리는 힘으로 초침을 위로 치키고 소리를 점점 크게 토하여 내 마음과 뼈를 깎고 있다.
순간, 소리는 귀를 통해서 내 깊숙이 자리 잡은 사색(思索)의 바다에 바람의 파장을 일으키고, 이윽고 그 파장이 폭풍으로 커가고 있다. 덮고 또 덮고 가두고 또 가둔 복개의 중후(重厚)함도 소용없이 벗겨지고, 스스로 찬 억지(抑止)의 차꼬도 망가지고 부서지며 거센 돌풍에 휘말리고 있다.
난 어떻게 해야 하나? 이대로 끌고 갈까!? 아니면 털고 새 출발점에 다시 설가?! 시각과 청각을 온통 틀어막고 있어도 폭풍은 그치지 않는다.
가라앉혀 놓은 것들은 내 마음의 조정이나 갈등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외적 것임에도 내면에 가두고, 덮고 억눌렀던 것이니 이것이 묵어서 폭풍을 일으키게 하는 게다. 적막이 오히려 무한의 힘을 내는 폭풍으로 변하여 내 마음의 조정 능력을 잃게 하고 있다.
애원(哀願)의 눈물에 얼룩진 지폐를 맡기면서 가정의 안녕(安寧)을 호소했을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라 직원의 간청을 거절할 수 없었고, 나름의 딱한 사정을 외면하는 옹졸한 동료가 되기 싫어서 맡아 놓았다.
일련의 절차를 밟아서 통고 처분이 되고 배달증명이 도착하면 그 사건번호로 범법자 이름으로의 납부 행위는 겉으로 보기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이미 현장에서 암묵적으로 결과를 앞당기는 그런 것들은 검거(檢擧)자와 범칙(犯則)자만이 알뿐,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형량의 최소단위로 형식화할 수 있고, 이 과정에 내가 끼이는 것을 알지만, 나도 아무런 부담이 없이 단순히 직원들의 편의를 도와 봉사의 의미를 찾는 것이지만, 범칙금을 일시 보관한다는 것은 개인의 처지에서는 추호도 용납되지 않는 것이기에, 깊숙이 덮어놓을 수밖에 없다.
섭리에 순응하는 열매의 씨앗은 봄기운을 맞아 부드러운 새싹으로 껍질마저 뚫고 돋아날 수 있지만, 순리를 거스른 내 안에 숨은 순수의 싹은 언제나 움을 틔우지 못하고 있다. 잠자는 내 안의 씨앗은 이때까지 사철을 몇 번이나 넘겼어도 두꺼운 껍질을 뚫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비로써 주산 알의 불협화음이 날 폭풍의 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리고 폭풍의 소용돌이에 말려 들어가고 있다. 폭풍에 부서질 것은 부서지고 날아갈 것은 날아가고 깎일 것은 깎이며 고뇌의 쐐기 틀에서 뒤틀리며 짜이고 있다. 불협화음이 ‘이온’의 융합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한동안, 청사는 적막으로 휩싸였다.
그리고 난 머리를 흔들어 비로써 육체의 반응을 일으켰다. 휘말리는 마음과 가슴속의 쓰라림도 마침내 폭풍과 함께 잦아들어 갔다. 그리고 난 물고 물리는 먹이 사슬 같은 해괴한 대열에서 벗어나려 내근(內勤)을 자청한 아무런 보람도 없이 또다시 그 먹이 사슬에 얽혀있는 것을 깨닫고 조여드는 사슬을 끊어서 공포의 사슬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마음을 정했다. 난 이 청사를 버리기로 했다. 청사에 얽혀있는 보이지 않는 거미줄과 사슬과 창살과 화살에서 탈출하기로 했다. 먹고 먹히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스스로 명실(名實) 불부합의 차꼬를 차고 있을 것이란 자각의 과정이 이렇듯 고요 속에서 주산 알 불협화음으로 그 진앙이 촉발된 것에 나도 놀라고 그 미래의 파장에 몸서리쳤다.
마음은 깃털같이 가볍다. 늘 홀로 정하고 행동하는 내 처지가 오늘 또한 허전하면서도 요행인가 싶다./외통-
시계의 분침이 한결 가볍게 움직인다.
주산 알 소리가 다시 적막을 깬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