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은 넉넉히 자랐을 아름드리 전나무가 가지 친 자리 흉터에서 하얀 송진(松津)을 뿜어내고 있다.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 위에 덧칠하는 눈물, 송진은 말 못 하는 나무의 표현 수단인 듯하여, 나를 잠시 생각하게 한다. 머리를 쓰다듬듯 드리운 가지는 마음을 어루만지며 나직이 어깨 위에 닿을 듯하다.
나무는 청사와 더불어서 있어 내림의 갖가지 사연들을 내려 보고 증언하려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나무 아래서 가슴을 쓰려 내렸으며, 얼마나 많은 백성의 한이 이 나무에 서렸는지 껍질을 터뜨려서라도 토해내려 한다.
손이 없어 어깨를 내리치지 못하고 입이 없어서 말하지 못하는 청지기 전나무는 청사 옆문 앞에서 숱한 일을 빠짐없이 들고 보았으니 청사 안에서는 못 할 말을, 나무 아래에서 눈 찔끔, 마음 맞추는 꼴을 모두 다 보았을 것이다.
아무도 이 나무의 꼭대기 순을 본 사람은 없다. 나무는 어디서 보든지 그 중간에서 지붕 끝에 가리 우고, 물러서 보자니 담장에 등이 부닥쳐서 역시 허리밖엔 보이지 않는다. 청사 밖으로 나가서 보면 어디서나 청사에 가려서 끝이 보이지 않는다.
청사 안의 천장이 어떻게,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서장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 하물며 일반 납세자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야 머리를 들 수 없는, 이름한 죄인들이니 그럴 만도 하다.
전나무의 끝은 이런 서장(署長)도 보지 못한다. 교묘히 가려진 전나무의 운명이 기구하다.
'김 아무개'는 직원들이 출장지에서 돌아오면 복명(復命)도 하기 전에 눈독을 들인 직원을 전나무 밑에 은밀히 불러내어서 무엇인가를 속삭인다.
출장지에서 있었던 허물을 숨기려고 김 아무개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차에 이렇게 찍히고 말았으니 필연코 무언가 일이 꾸며지고 있음이 틀림없는 것으로 알지만 대놓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허물이 그들에게 늘 따라다니는, 그런 직종이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그들, 직무의 일환이기 때문에 언제나 먼지는 묻어 있고, 그 먼지를 노리고 먼지떨이 총채를 잡는 ‘김 아무개’니 틀림없이 무언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 짓은 으레 신출내기에게 해대는 해묵은 ‘털이’고 얼마쯤인가 있다가 보면 그 정체를 알아차리고 나서는 미리 술자리를 마련하여 선수를 치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다. 워낙 술을 좋아하는 ‘김 아무개’라, 술이면 ‘만사가 여의형통’하는 나름의 처세술을 구사하는 그에게 오늘 걸려든 사람은 그 통과의례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 형사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너를 찾고 있는데 무슨 일이 있느냐?’ 오히려 반문하면서 시치미를 떼고 그 중재를 자청하고 나선다. 그러면 으레 있게 마련인 '제발 절이기'가 시동(始動), 적극적으로 ‘김 아무개’에게 붙어서 모든 비밀을 털어놓고 중재를 의뢰한다. 그러면 ‘김 아무개’는 아무 정보도 없는 형사를 불러서 정보를 전해주고 나서는 가운데서 술자리를 주선하고 흥정을 붙인다.
이렇게 해서 녹아내린 돈이 손해 아닌 손해고 그보다 본 살을 깎아서 체면의 땜질을 함으로써 잃는 것이 마음의 상처요 ‘뭉칫돈’ 잃음이다. 그래서 그 직원은 용케도 위기를 모면한다.
일단 태풍이 지나간 다음 의문이 제기되고, 상처의 크기를 위로하는 선임자들의 눈길을 보아 짐작이 가고, 그리하여 전말(顚末)은 파악하게 되지만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은 없다.
악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악의 구렁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리라. 그 직원은 아마도 한참 동안은 그 흠집을 메우려고 더 큰 함정에 빠질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전나무는 오늘도 말없이 이 사실을 보고 듣고 있다. 눈이 시어 송진(松津)을 내고 귀가 따가워 잎이 마르고 손이 근질거려서 못 참아 잎을 줄이고 위로만 뻗어서 외면한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전나무의 속내를 모르지만, 비로써 오늘 나는 알 것 같다.
모든 일은 있는 그대로다. 그래서 그대로 두고 그대로 바라보면 거기에 담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나는 전나무의 소리를 듣고 있다. 전나무는 너무나 친근히 우리와 함께 있다. 우리가 모르는 심령의 세계에서 나무는 제 주위에서 일어나는 것과 함께함으로써, 비로써 죽지 않고 살아 있지 않겠나 생각해 본다.
전나무는 이미 우리 성황당(城隍堂) 구실을 하고 는 것이다. 바라고 빌고 원망하고 저주하는 대상인 것이다.
변화무쌍한 인간의 마음을 아로새긴 전나무의 연륜을 우러르며 아무리 그 끝을 보려 해도 볼 수 없으니 이 전나무야말로 신비의 나무다. 어떻게 이렇게 교묘히 자기머리를 들어내지 않게 자리했는지 그 심은 이의 뜻이 바로 오늘 내가 생각하는 바를 예측했나 싶어서 더욱 신비의 경지로 이끌린다.
무엇인가를 헤아리고 싶다. 처음엔 나무의 끝이 보였을 것이지만 나무는 참아볼 수 없는 일들을 외면하려 한사코 위로만 뻗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귀를 털고 눈을 가리고 입을 봉하려 무진 애를 썼을 것이다. 전나무는 나무 밑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연을 머금고 자라니, 나무의 명은 이런 사연과 더불어 그 수(壽)를 다할 것이다.
만약 청사가 옮겨진다면 그때 이 전나무의 영욕도 함께 할 것이지만 나무 혼자는 영영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 청사를 지키면서 숱한 비밀을 빨아들이고 하늘로 날려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행여 다시 돌아올 때 전나무를 보고 전나무만큼 인간으로 성장하길 바라고 묵묵부답(黙黙不答)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곳을 떠난다. 나 또한 언제 이곳에서 이 나무를 올려보며 내 인간 성숙을 가늠해 볼지 아련하다. 그리고 내 투시력으로 이 나무의 꼭대기 순을 보고 ‘ 나는 탈출 했다 ’ 말할 것이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