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게만 고집하는 육중한 금고는 먼발치에서 보아도 무섭게 생겼다. 우리네 가재도구는 나무색 그대로 되어있거나 간혹 색을 입히더라도 자연에 묻혀 사는 우리 정서와 아우르게끔 한다. 흙이나 풀이나 나무에서 색을 빼내어 칠해서 담황색(淡黃色)으로 칠하거나 좀 멋을 부린대도 진한 갈색의 정도를 넘지 않는다. 우리네 생활 도구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금고의 색, 그 색은 지금도 유지되고,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어릴 때 본 그 금고의 색이다.
시꺼먼 얼굴에 양 눈이 튀어나와 아래로 쳐지고 코는 동글납작하여 한쪽 볼에 붙어있고 그 아래 입은 젓가락 하나도 들어가지 못할 만큼 작고 길게 내리 찢어지고 이마엔 번쩍이는 반짝 종이를 붙이고 근엄하게 버텨있는 쇳덩이는 얼굴과 몸통과 다리가 한데 뭉쳐진 모양새가 도깨비같이 생겼던, 어릴 때 내가 본 금고의 기억이다. 저 속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있을까 싶어서 늘 궁금하게 보냈다. 한 번도 그 속을 들여다보지 못한 내가 우여곡절 끝에 그 안을 속속들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니, 그로부터 이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관서(官署)에서였다.
납세 증지를 관리하며 넣고 내는 일에 매여 있을 적에 보았는데, 덩치에 비하면, 속은 너무나 좁아터지고 볼품없는, 허깨비 같은 흰 오동나무 칸막이가 두어 칸 질러 있는 것뿐이다. 그 위용(偉容)에 비해서 너무나 왜소하다. 천근의 무게와 달리 가볍디가벼운 오동나무 상자가 들어있으니, 실망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내용 상자 보다 포장이 미련하게 두텁고 무게 또한 엄청나다. 일러서 도둑도 못 가져가고 불로도 못 태우는, 안전 우선의 이 금고가 옛적에는 무섭기도 했지만 그렇게 돋아 보일 수가 없었다.
속이 비어있어도 금고는 만인의 추앙을 한 몸에 지니고 으스대고 있으니 어쩌면 태어난 그 순간부터 돈과 권력을 배태하여 포화(飽和)하는 주술적인 존재임을 제가 알아 자만에 차 있는지도 모른다. 금고와 부(富)는 상호 보완 공생하여 금고의 크기가 부의 척도로 되었던 것처럼 느낀, 옛 기억에서 벗어나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았다.
그러면서 작은 금고의 주인조차 되지도 못하고 금고지기가 되어 수전노(?守錢奴)의 입지를 벗지 못한 이즈음, 내 본연(本然)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또 다른 금고의 무게를 느낀다.
난 지금 공포에 휘말려 있다. 남의 돈이지만 늘 많은 돈에 눌려서 고민하고 있다. 이런데 그 보관기간이 허용되지 않는, 일의 성격으로 하루를 넘기는 일이 드물지만, 지폐의 노출이 불안하고 알 돈이 뭇사람의 유혹을 부르는 것 같아서 서성인다.
꾀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어릴 때 받은 그 인상을 거꾸로 이용하여 많은 사람이 덤터기를 쓸 위험을 자각하게 하는 것이다.
철제금고는 그 자체가 자기를 보호하지만 내가 만들고자 하는 금고는 그 자체가 허점을 보여서 남이 자기를 보호해야 하고 허깨비처럼 건드리면 허물어지면서 소리도 나는, 그런 보기조차 역겨운 것을 만들려고 한다.
실상은 보수(報酬)를 나누어주고 나면 내 보수만 남는 지극히 단순하니까 금고를 보급할 리가 없다. 돈이 남아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 또한 당연하다. 해서 기기(器機) 청구는 애초부터 염두에 두지 않는 회사의 입장을 아는지라 내가 구상(構想)할 수밖에 없다.
목수에게 부탁해서 되도록 얇은 판자로 누구든지 들고 갈 수 있는 크기의 작은 상자를 짜고 그 한쪽에 판자문을 달되 양 끝에 홈을 파서 그 홈에 판자문이 오르내리도록 꽂게 했다. ‘키로틴’ 작두처럼 했다. 그 목수는 임무가 완료됐고, 이번에는 기공(機工)을 불러서 문의 개폐장치와 밑바닥에 접촉 금속 장치를 하고 속에다 벨과 건전지를 장착하게 했다. 문을 뽑아 올려 열어도 벨이 울리고 통째 들어 옮겨도 벨이 울리도록, 일종의 나무상자 손금고를 만들어 놓고 이를 책상 위에 놓았다. 모름지기 소문은 현장의 전 직원들에게 퍼졌고, 모두는 그 나무상자를 신주처럼 무서워 피해 다녔다.
행여 잘못 건드리기라도 해서 벨이 울리면 진상이야 어찌 됐든 무척 난처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철저히 보호되는, 나무상자 금고가 내 활동공간을 오히려 넓혔다. 나무상자를 놓아두고 그 더운 여름날 낙동강에서 목욕도 하고 가까운 동네로 구경도 다닐 수 있었다.
가장 불안정한 것이 가장 안전하게 되었으니 이런 일을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겠는지, 심리학자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다.
금고에 대한 고정적 관념이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금고와 나와 좀 더 가까워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은 나도 돈하고 친숙해지며 그 언저리에서 돌고 있음을 느끼면서 잠시 눈을 감는다.
그 옛날 큰물에 떠내려간 제방을 새로 쌓는 공사장에 나가셔서 흙을 파서 제방 될 곳에 마련된 ‘하꼬(箱)’에 수십 번에 걸쳐서 지게와 함지로 날라서 채워놓고 전표 한 장을 얻는 일에 농한기 한여름을 틈타서 애써가며 돈을 모으신 부모님의 피나는 성가(成家)의 꽃을 난 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벌거숭이를 뙤약볕에 놓아두고 행보를 옮기는 ‘어버이’의 가슴에다 나는 희망을 안겨드렸다.
슬하를 떠나 한참 자라서야 내가 생각해 본다. ‘어버이’는 금고의 꿈인들 참아 꾸셨을까 싶어서 대를 물려서 이제 내가 그 꿈을 꾸어본들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 싶은, 엄숙한 한순간을 맞는다. 어머니의 손에 받아 쥔 전표 한 장은 크게 증식(增殖)되어서 집도 짓고 논밭도 사고 우리 공부도 시켰으니, 그때의 우리 집 금고는 나무상자 금고도 아니고 도깨비 같은 쇠뭉치 금고도 아닌 얇은 옷가지 금고였을 것이다.
위용으로 사람을 몰아내는 쇠뭉치 금고는 포도와 순라군의 힘을 빌려서 그나마 제 몸을 지키고, 엄살을 부려 엉성한 거푸집을 엮은 나무상자 금고는 보는 이의 발을 저리게 하여 제 몸을 지켰고, 허름한 옷 갈피 금고는 뭇사람의 선망(羨望)으로 근접(近接)할 수가 없었다.
금고의 크기가 작을수록, 허름할수록, 나아가서는 없을수록 인성 회복에 접근할 것이다./외통-